본문 바로가기

역사 바로알기

[오늘의 세상] 목곽庫(고)에 가득찬 유물… 1400년前 백제 '타임캡슐' 열렸다 (조선일보 2014.09.24 02:57)

[오늘의 세상] 목곽庫(고)에 가득찬 유물… 1400년前 백제 '타임캡슐' 열렸다

[충남 공주 공산城에서 백제 멸망 당시 유물 다량 발굴]

- 완전한 형태의 대형 목곽고
씨앗·곡물류·어패류를 비롯, 석제 추·나무망치 등도 출토
새 형태의 토기·철기도 나와 "백제 박물관 따로 꾸밀 정도"

- 羅唐연합군과 전쟁 흔적 생생히
저수시설서 철제 갑옷·馬甲… 전쟁 직전 장수들 결의 다지려 의식용으로 묻었을 것 추정

 

완전한 형태를 갖춘 철제 갑옷과 옻칠이 된 마갑(馬甲·말의 갑옷), 큰 칼과 장식용 칼, 많은 화살촉과 부서진 두개골….

백제 멸망 때 의자왕이 항복한 곳으로 전해지는 충남 공주 공산성에서 당시 나당 연합군과 벌인 전쟁 흔적을 생생히 보여주는 유물이 1400년 만에 대거 쏟아져 나왔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공산성 7차 발굴 조사에서 백제 시대의 나무틀 저장 시설인 대형 목곽고(木槨庫)가 최초로 확인됐고,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재위 641~660) 때 나당 연합군과 치른 전쟁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유물을 다량 발굴했다고 23일 밝혔다.

백제 멸망기 전쟁 흔적 고스란히

이곳 저수 시설에서는 지난 2011년에 서기 645년을 가리키는 '貞觀十九年(정관19년)'이라는 글자가 적힌 옻칠 갑옷 1점과 마갑 등이 수습돼 주목받았다. 그런데 3년 만에 바로 옆에서 또 다른 갑옷 1점과 마갑, 철제 마면주(馬面胄·말 얼굴 부위를 감싸는 도구), 마탁(馬鐸·말갖춤에 매다는 방울), 큰 칼과 장식 칼 등 한 세트가 발굴된 것이다. 글자가 적힌 옻칠 갑옷 조각도 출토됐다. '叅軍事(참군사)' '○作陪戎副(○작배융부)' '○人二行左(○인이행좌)' '近趙○(근조○)' 등 20여 글자가 붉은색(朱漆·주칠)으로 또렷이 적혀 있다(○은 알아볼 수 없는 글자).


	23일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발굴 조사 현장에서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이 공개한 대형 목곽고(木槨庫·사진 위). 복숭아씨·박씨와 곡물·어패류, 칠기, 나무망치 등 백제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사진 가운데)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래 사진은 저수 시설에서 출토된 옻칠 갑옷 조각. ‘?軍事(참군사)’ ‘陪戎副(배융부)’ 등 관직명이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
23일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발굴 조사 현장에서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이 공개한 대형 목곽고(木槨庫·사진 위). 복숭아씨·박씨와 곡물·어패류, 칠기, 나무망치 등 백제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사진 가운데)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래 사진은 저수 시설에서 출토된 옻칠 갑옷 조각. ‘叅軍事(참군사)’ ‘陪戎副(배융부)’ 등 관직명이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이남석 관장은 "2011년과 이번에 두 갑옷 세트가 같은 층위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전쟁 직전 백제 장수들이 결의를 다지고자 의식용으로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총 60~70자에 해당하는 명문의 정확한 판독이 이뤄지면 기록에 없는 백제 멸망 역사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주변 건물지 대부분이 화재로 폐기된 정황을 볼 때 660년을 전후한 백제 멸망기에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이 공산성 안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양옆이 깨진 흔적이 보이는 두개골도 출토돼 주목된다. 이현숙 학예연구사는 "DNA 분석 등을 통해 성별과 연령대, 사망 원인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저수 시설에서는 또 백제 유적지에선 처음으로 깃대꽂이(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 실물이 발견됐다.

1400년 전 백제 시대의 생생한 타임캡슐


	공산성 유물 발굴지 지도

 

 

 

 

 

 

 

 

형태가 완전한 대형 목곽고도 학계가 주목하는 중요 유물이다.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 너비 20~30㎝ 안팎의 판재를 기둥에 맞춰 정교하게 조성했다. 앞서 발굴된 부여 사비도성, 대전 월평동 산성의 백제 목곽고가 심하게 훼손된 것에 비해 상부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첫 사례라 의미가 크다.


목곽고 내부에서는 복숭아씨·박씨와 곡물·어패류 등 식생활 재료를 비롯해 저울용 석제 추, 칠기, 나무망치 등 생활용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남석 관장은 "백제 박물관을 별도로 꾸며도 될 정도의 분량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형태의 토기·철기 등이 많이 나왔다. 백제의 생활·문화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고 했다.

 

 

씨앗·저울추·갑옷 … '백제 타임캡슐' 1350년 만에 열렸다

(중앙일보 2014.09.24 02:01)

진흙에 묻혔던 목곽 창고 발굴
땅속에 만든 일종의 대형 냉장고
저수지 주변엔 다량의 전쟁 도구
26일부터 내달 5일까지 일반 공개

 

충남 공주 공산성에서 발굴된 대형 목곽고. 백제시대 저장고로 쓰였던 일종의 냉장고로 목재 결구방식이 잘 남아있다. [사진 문화재청]


 

백제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형 나무 저장고와 저수 시설이 135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질서정연하게 조성된 건물 집터와 과학적 운용으로 설치된 저수지 등지에서 수백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백제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멸망하기까지 일구고 누린 찬연한 문화가 실물과 정황으로 역사 저편에서 살아 돌아왔다.

 23일 오전 11시, 금강변에 위치한 공북루 안쪽 성안마을. 1980년대 초부터 공주 공산성 유적을 발굴해온 이남석 공주대박물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사적 제12호 공산성 왕궁부속시설 제7차 문화유적 발굴 성과를 이 관장은 “박물관 하나를 따로 만들어도 될 정도 수확”이라고 어림했다.

 백제 시대 아름드리 참나무 결이 살아있는 목곽고(木槨庫)는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 크기로 현대판 대형 냉장고를 연상시켰다. 수분이 충분한 땅 밑 진흙에 묻혀 있어 썩어 없어지지 않고 원형이 살아남았다.

못 없이 나무만으로 껴 맞춘 결구 방식과 점토 맥질로 여러 차례 보강한 흔적이 생생했다.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는 발받침인 말목 구멍이 보였고 배수구 시설도 드러났다. 이 안에서는 복숭아씨·박씨 등 식재료와 무게를 재는 석제 추, 목제 망치와 공이 등 다양한 생활 용품이 수습돼 저장 시설임을 짐작케했다.

위쪽 사진은 이목곽고에서 나온 출토품. 복숭아씨와 박씨, 목제 도구, 철제 추, 토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백제시대 일상을 증언한다. 아래쪽 사진은 저수 시설에서 발견된 옻칠 마갑. [사진 문화재청]

 

이 관장은 “이번 발굴의 핵심이 목곽고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저수지와 거기서 나온 유물에 주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저수 시설 언저리에서는 백제 멸망 시기에 신라·당나라 연합군과의 전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다량의 전쟁 도구들이 발견됐다.

특히 두 세트로 된 갑옷과 칼 일습, 두개골, 대량 화살촉과 철모 등이 나와 660년을 전후한 시기에 공산성에서 항전했던 백제인의 기개를 읽게 한다. 이번 조사에 앞선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즉 645년이라 적힌 옻칠 갑옷과 말 갑옷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참군사(參軍事)’ 등 20여 자 명문이 새겨진 옻칠 갑옷이 출토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던 깃대꽂이가 최초로 발굴돼 백제 기승(騎乘·말을 타는 일과 수레에 오르는 일) 문화를 입증했다.

 발굴지 구석구석을 소개한 이현숙 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축대를 쌓고 배수로와 도로 등을 합리적으로 배치한 점으로 미뤄 백제인의 선택과 집중 정신을 잘 집약한 주거지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발굴단은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설명회도 연다. 041-840-8202.

 

 

백제 멸망의 순간 드러나다… 공주 공산성서 ‘목곽고’ 원형대로 최초 발견

(경향신문 2014-09-23 22:23:47)

ㆍ말안장 깃대 꽂이·2지창 희귀 무기 실물 첫 확인… 화재로 소실, 전쟁 정황
ㆍ씨앗·목기 등 대량 발견, 생활문화상 연구에 도움

 

‘1300여년 전 백제 멸망 시 공산성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백제 의자왕이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항복한 충남 공주의 공산성에서 백제 멸망(660년) 전후 전쟁 정황과 백제 말기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굴됐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23일 백제 웅진(공주)시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공산성(사적 12호)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갑옷과 무기류 등 무장갖춤새, 생활용품이 대량으로 저장된 대형 목곽고, 건물지, 토기·철기·목기류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3일 공개된 공산성 목곽고는 가로, 세로, 높이가 약 3m로 참나무 판재로 만들어졌으며 내부에서 식재료와 도량형기, 칠기, 목제공구 등이 다량 쏟아져 나왔다. | 공주대박물관 제공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건물지들 사이에 자리한 저수시설 안에서는 철제 갑옷, 옻칠을 한 말 갑옷, 말 머리에 씌운 철제 마면주, 큰 칼과 장식칼, 다량의 화살촉 등이 확인됐다. ‘參軍事(참군사)’ ‘○作陪戎副(작배융부)’ ‘○人二行左(인이행좌)’ 등 20여자가 확인되는 옻칠 갑옷편도 나왔다. 2011년 발굴에서 645년을 뜻하는 ‘정관19년’ 등이 적힌 옻칠 갑옷과 말 갑옷 등 유물이 나와 학계를 놀라게 한 이 유적에서 또다시 군사 관련 유물들이 세트로 발굴된 것이다. 갑옷들 사이에선 신체의 다른 유골은 없이 하나의 두개골만 나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남석 관장은 “저수시설 주변 건물지들이 화재로 폐기됐고, 무기류와 무장갖춤새 등이 나온 것으로 미뤄 당시 공산성 내에서 나당 연합군과 백제군의 전쟁 상황이 전개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갑옷 등은 의도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보여 어떤 의례의 증거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특히 백제 유물로는 최초로 말안장 뒤에 깃발을 꽂는 데 사용한 ‘깃대 꽂이’, 두 갈래의 ‘2지창’ 등이 실물로 확인되는 등 희귀한 유물이 많다”며 “7세기대 무기체계를 제대로 알 수 있을 정도의 무기류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기까지 64년간(475~538) 왕성 기능을 한 공산성은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의자왕의 피신처였다. 당시 의자왕은 둘째 왕자인 태(泰)가 사비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버티는 동안 지방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왕자들끼리의 세력 다툼으로 사비성은 함락됐고 웅진성(공산성)에서 태자와 함께 전투 준비를 하던 중 성주 예식의 배신으로 연합군에 항복했다

백제 유물로는 처음 발굴된 말안장 뒤 깃대꽂이. | 공주대박물관 제공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목곽고에서 나온 생활 유물들. | 공주대박물관 제공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발굴에서는 참나무 판재로 정교하게 짠 완형의 대형 목곽고(가로 3.2×세로 3.5m, 깊이 2.6m)도 처음 발견됐다. 목곽고 내부에선 다량의 복숭아·박씨 같은 식재료, 34㎝ 단위의 목제 자와 36g의 석제 추 등 도량형기, 옻칠이 된 칠기들, 나무망치 같은 목제 공구와 가공품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현숙 박사(공주대박물관 학예사)는 “우물보다는 저장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기와편 등이 나와 상부 구조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 최초의 목조건축물로 목재 가공기술 및 건축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 백제 건축구조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건물지 7동을 비롯해 도로, 축대, 배수로 등이 확인돼 당시 공산성 유적이 계획적으로 조성됐음이 드러났다. 문화재청과 공주시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제60회 백제문화제 기간 중 매일 두 차례 시민들에게 발굴조사 현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관장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지역이 20% 정도인데 향후 조사에서 어떤 획기적 유물이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