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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다닥다닥 붙은 에어컨 실외기… 무심코 버린 꽁초에 '폭탄' 된다 (조선일보 2014.06.20 04:16)

다닥다닥 붙은 에어컨 실외기… 무심코 버린 꽁초에 '폭탄' 된다

윤활유 들어있어 폭발 위험, 화염방사기처럼 불길 치솟아
10년 넘은 기기 교체해야

 

낮기온이 29도까지 올랐던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유흥가 뒷골목은 에어컨 실외기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건물 외벽 실외기는 많을 땐 10여대씩 50㎝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시커멓게 먼지 쌓인 한 실외기 바로 앞에선 젊은 남녀가 담배를 피웠다. 바닥엔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나뒹굴었다. 서울 중부소방서 이영병 화재조사관은 "화재를 부르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경기도 수원의 5층 상가 건물에서는 담뱃불이 에어컨 실외기에 옮겨붙으며 화재가 났다. 이날 불은 상가 건물 1층 외벽의 에어컨 실외기에서 시작됐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은 건물 4·5층 일부를 태우고 1시간 20여분 만에야 진화됐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2가의 한 골목 안 건물 벽에 에어컨 실외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옆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실외기에 무심코 담배꽁초를 버리면 실외기 내부의 인화 물질과 반응해 화염이 뿜어져 나와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2가의 한 골목 안 건물 벽에 에어컨 실외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옆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실외기에 무심코 담배꽁초를 버리면 실외기 내부의 인화 물질과 반응해 화염이 뿜어져 나와 대형 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성형주 기자
소방서 관계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가 실외기에 옮겨붙은 뒤 주변 쓰레기 더미와 고압 전선을 타고 건물 위층으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물 1층 식당 종업원 최모(56)씨는 "식당 안으로 연기가 들어차고 정전이 돼 아무것도 못 챙기고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방재 전문가들은 "가동 중인 에어컨 실외기는 잠자는 불씨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설마?' 하는 부실한 관리와 안전 불감증이 화재를 낳고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1~2013년 에어컨 실외기로 인한 화재는 53건으로, 그 절반(56%)이 여름철인 6~8월에 집중됐다. 에어컨을 장시간 가동하면서 실외기 모터가 달아오른 상황에서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벗겨진 전선 피복에 따른 합선 등이 화재로 이어졌다.

최돈묵 가천대 교수(소방방재공학)는 "실외기 압축기 안에는 가연성 윤활유가 들어 있어 불길이 급속히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불이 나면 폭발과 함께 화염방사기처럼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게 그 때문이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아파트는 층마다 베란다 난간에 실외기를 종렬로 설치하고, 상가 건물은 실외기 10여대를 한곳에 모아 놓기 때문에 한 실외기에서 시작된 불이 다른 실외기로 매우 빠르게 옮겨붙는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서울 삼성동 18층 건물 화재는 에어컨 실외기 화재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불씨는 건물 1층 외벽 에어컨 실외기 위에 버린 담배꽁초였다. 폭발과 함께 커진 불길은 건물 외장재를 태우며 위층으로 확산, 단 10여분 만에 18층 옥상까지 번졌다.

하지만 실외기 대부분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거의 예외 없이 먼지투성이다. 담배꽁초도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한국화재소방학회는 실외기 내부에 먼지와 유사한 거즈 뭉치를 놓고 불을 붙이는 실험을 했다. 실외기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4분 만에 '펑' 소리와 함께 실외기 압축기와 냉매 배관이 폭발했다. 불길은 최고 5m 위까지 솟구쳤다.

서울 중부소방서 이영병 화재조사관은 "10년 이상 된 노후 실외기는 교체하고 실외기 내부와 주변을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돈묵 교수는 "여름철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던지는 행위는 자칫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나 상가에선 실외기를 일렬이 아닌 지그재그로 설치해 화재가 번질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