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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네이버백과 출처 마노 다카야, 이만옥, 2007.10.26, 도서출판 들녘)

묵자

 

평화 사상의 옹호자, 반전(反戰) 사상가. 묵가의 시조.

[네이버 지식백과] 묵자 [墨子, mozi] (도교의 신들, 2007.10.26, 들녘)

 

 

신선의 자질을 갖고 있었던 병법가

 

묵자(본명은 묵적(墨翟), B.C. 480∼B.C. 420?)는 전국 시대의 사상가이자 병법가(兵法家)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 시대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할 만큼 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해서 제각기 활약을 펼쳤는데, 묵자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겸애(兼愛 : 무차별적인 박애)와 평화주의를 제창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묵자가 송(宋)나라에 봉직하고 있을 때 초(楚)나라의 공수반(公輸般)이라는 병법가가 운제(雲梯)1)라는 성을 공격할 수 있는 병기를 발명해서 송을 공격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묵자는 초나라에 가서 공수반을 만났다.

"당신은 운제라는 병기를 만들어 송을 공격했는데, 과연 송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당신네 초나라는 영토는 넓지만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다지 많지도 않은 사람들을 죽음의 위협에 빠뜨리는 위험한 일을 저지르고, 더구나 남의 나라 토지까지 넘보는 것은 '지(智)'가 아니다. 송에 어떤 죄나 잘못이 없음에도 공격을 하는 것은 '인(仁)'이 아니요, 또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왕에게 간언하지 않는 것은 '충(忠)'이 아니다."

묵자의 말에 대답이 곤궁해진 공수반은 이렇게 둘러댔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직접 저희 초나라 왕에게 아뢰보시지요."

묵자는 초왕을 알현해서 공수반에게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왕은 묵자의 이야기에 납득했지만, 공수반은 결코 동의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둘이 직접 전술론으로 승부를 가리기로 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을 만들고, 모자를 무기로 삼았다. 공수반은 성을 공격하기 위해 매번 다르게 아홉 차례나 작전을 펼쳤지만, 그때마다 묵자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공수반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당신의 작전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묵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작전은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초왕이 그 이유를 묻자 묵자가 대답했다.

"공수반은 저를 죽이면 쉽게 송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제자 3백 명이 이미 제가 만든 방어용 병기를 가지고 초나라 군대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으니, 설사 저를 죽이더라도 송나라를 함락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초는 출병을 중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묵자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최고의 교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열강 사이에 있는 소국인 송나라를 위해 자신의 온몸을 바쳤던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다빈치에 필적할 만한 대발명가

묵자가 남긴 책은 『묵자(墨子)』로 모두 53편이 후대에까지 알려져 있다. 과학 지식에 바탕을 둔 그의 저작 속에는, 지레의 원리를 담고 있는 역학론(力學論)과 핀홀 카메라(pinhole camera :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어둠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은 사진기-옮긴이)의 원리를 밝힌 것 외에도 평면거울, 오목거울, 볼록거울과 물체의 상(像) 관계를 논한 것 등이 있다. 이런 이론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과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묵자는 이런 지식들을 활용해서 투석기와 연노차(連弩車 : 차에 장착된 연발식 대궁(大弓) 발사장치) 같은 무기를 발명했다. 물론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이런 무기들을 모두 방어용으로 생각했다.

 

묵자는 82세가 되자 세속적인 인연을 모두 끊고 주적산(周狄山 : 소재지 불명)에 들어가 도교의 수행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어느 때부터 산 속에서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잠자고 있는 묵자에게 의복을 덮어주곤 하는 자가 있었다. 묵자가 그런 낌새를 알아차리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신은 산의 영(靈)이요, 아니면 신선이오? 그 어느 쪽이든 나에게 도를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신인(神人 : 지위가 높은 신선)이 말했다.

"도를 갈구하는 당신의 높은 뜻은 이미 잘 알고 있소이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시오?"

"할 수만 있다면 천지(天地)처럼 장생을 하고 싶소이다."

신인은 『소서(素書)』 『주영환방(朱英丸方)』 『도영교계(道靈敎戒)』 『오행변화(五行變化)』 등 모두 25권의 책을 묵자에게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선골(仙骨 : 하급 신선)이며, 총명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스승을 기다릴 필요가 없소이다."

마침내 묵자는 지선(地仙 : 하급 신선)이 되어 전란의 세상을 떠나 산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 한(漢)나라 무제가 사람을 보내 묵자를 왕실로 초대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때 묵자는 불과 50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묵자의 사상적 특징은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절도나 살인을 명백한 악으로 보면서도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약탈이나 대량 살상에 대해서는 도리어 의(義)라고 생각하는 중대한 모순을 묵자는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불합리한 사고를 논박하면서 침략 전쟁을 최대의 악으로 간주했다. 또한 기술자 집단의 수장으로서 작은 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묵자의 반전(反戰) 사상은 서민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지식인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신봉과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 비록 열광적인 신자는 없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숭배되는 신선인 것이다.

각주

  1. 1 운제 : 전국 시대의 신병기로 성(城)을 공격할 때 썼던 높은 사다리. 제작자인 공수반에 대해서는 '노반(魯班)' 항목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묵자 [墨子, mozi] (도교의 신들, 2007.10.26,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