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취재 인사이드] 서울대 도서관 대출 1위 책의 저자를 만나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2001년 이후 대출이 많이 된 책 목록을 뽑을 수 있습니다. 2001년 1월 1일부터 2013년 8월 5일까지로 기간을 정하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1위는 재레드 다이아몬드(Diamond·77)의 ‘총, 균, 쇠’(710회)가 나옵니다.
1998년에 번역·출간된 인문서로 751쪽이나 되는 이 책은 1998년 미국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했습니다. 인류 문명이 대륙별, 민족별로 불평등해진 원인을 입체적으로 살핀 책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생물학적 차이나 DNA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리적 조건이 1만3000년 동안 세계인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1972년 호주 북쪽의 뉴기니 섬에서 출발합니다. 다이아몬드는 1950년대부터 뉴기니에서 새를 연구했습니다. 2세기 전까지 뉴기니 사람들은 석기 시대에 살고 있었고 정치 체제도 없었습니다.
‘총, 균, 쇠’는 다이아몬드가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등을 연구하고 나서 25년 만에 내놓은 답(1997년 영어 초판 발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태지리학, 진화생물학, 유행병학, 인간유전학, 언어학, 고고학 등을 종횡무진하며 답의 근거를 벽돌장처럼 정교하고 단단하게 쌓아올렸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정복과 지배로 점철돼 있고 그 결과가 각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역사에 과학을 접목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철의 등장은 식량의 생산성을 높였다. 그것이 인구의 밀집을 초래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우월한 힘을 가능케 했다. 한편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제거하는 데는 총의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럽은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병원균도 창궐했다. 이로 인한 전염병이 면역성이 전혀 없던 원주민들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총, 균, 쇠’는 이처럼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을 함축합니다.
- 사진=김영사 제공
◇인류 역사를 갈파한 저자는 지리학과 교수이자 조류학자
다이아몬드의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가 최근 번역돼 나왔습니다. 그를 미국 로스앤젤레스 UCLA 캠퍼스에서 북쪽으로 2.4㎞쯤 떨어진 자택에서 인터뷰했습니다.
그의 응접실에서 인터뷰했는데 새와 관련된 사진과 그림, 조각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직 UCLA 지리학과 교수인 그는 조류(鳥類)학자이기도 합니다. 응접실엔 피아노도 한 대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바흐를 연주했다오”라고 하더군요.
- 이번에 한글로 번역된 신작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또 뉴기니를 다루고 있다. 50년간 그 섬을 연구한 셈이다.
“1964년 뉴기니 땅을 처음 밟았을 땐 새 연구가 목적이었어요. 600종의 새가 거기 삽니다. 뉴기니는 내게 처음부터 이국적이고 궁금하고 신비했어요. 한편으론 겁도 났지. 뉴기니에는 1000개의 부족이 있어요. 언어가 1000가지라는 뜻이지. 그들은 상당 부분 당신과 날 닮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몹시 달라요.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 사이의 닮음과 차이가 바로 이 책입니다.”
- 책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일 텐데, 당신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은?
“글쎄, 뉴기니라는 전통 사회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매력적이라서 쓴 책이지요. 그곳에서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을 독자와 나누고 싶었지. 뉴기니 사람들은 한국인이나 미국인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남편이 죽자마자 그 아내를 목 졸라 죽이는 풍습은 끔찍하고, 노인이 대접받는 것은 부럽고.”
- 이 책에 대해 우호적인 평이 많지만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만약 어떤 책이 상반된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뜻이외다. 논쟁적인 문제를 다뤘는데 천편일률적인 감상만 나오는 책이야말로 비극이지요. 모든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건 쓰지 말았어야 할 책입니다. 내가 쓴 책들은 내 전공 바깥의 주제를 연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들이에요. 책을 쓰려면 누가 그 분야 전문가인지 알아내 나부터 배워야 합니다.”
- 당신의 박사학위는 생리학, 그중에서도 쓸개(gall bladder)였다. 쓸개로부터 뉴기니로 가다니, ‘묻지 마 여정’이다.
“일곱 살 때부터 새 관찰을 좋아했어요. 1987년 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세포와 분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흥미를 싹 잃었습니다. 반대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 ‘전통 사회에는 몇만 년 동안 우리 조상이 살아온 방식이 간직돼 있다’고 썼다.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현대 사회는 어딜 가나 정부(政府)가 있고 닮은꼴이에요. 전통 사회는 마치 수천 개의 다른 실험을 한 모습이라오. 심리학 연구는 대부분 서양이나 서구화된 나라의 심리학 전공생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우리가 인간 행동에 대해 아는 지식은 매우 좁은 다양성에 뿌리박은 것이지요. 이를테면 3%만 보면서 일반화하는 오류라오. 그런 현대 사회를 ‘위어드(WEIRD·기괴한)’라 부릅니다.”
- 위어드?
“서양의(western) 교양있고(educated) 산업화하고(industrialized) 부유하며(rich) 민주적(democratic)인 사회라는 뜻이에요. 뉴기니 등의 전통 사회는 아이를 우리와 다르게 양육하고 노인에 대한 대우가 사뭇 다르며 위험을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우린 방금 처음 만났지만 서로 경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뉴기니에서라면 낯선 사람과 마주한다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
◇ “컴퓨터는 배우지 않을 것...좌절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 이 책은 친구와 적, 전쟁, 양육, 노인, 위험과 대처, 건강 등 11개 주제를 다룬다. 뉴기니가 ‘어제까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窓)’인가?
“(끄덕이며) 미국에도 촌구석엔 그런 특징이 남아 있습니다. 가령 몬태나에 사는 두 농부가 주먹다짐을 했다 쳐요. 그들은 경찰을 부르지 않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고 적당히 합의하지요. 앞으로 수십 년 얼굴 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의 세계’와 ‘총, 균, 쇠’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둘 다 내가 썼소(웃음). 1만3000년의 인간사를 다룬 ‘큰 책’이지요. 어떤 이는 ‘문명의 붕괴’까지 더해 삼부작 아니냐고 묻는데 아닙니다. 내 책들은 다 독립돼 있습니다.”
- 어떤 측면에서 우린 ‘부적응자’로 보이는데.
“다이어트만 해도 그래요. 인간은 굶주림에는 강하지만 배부름에는 취약합니다. 우리 몸은 가끔 포식하고 긴 굶주림을 견딜 수 있게 적응해왔지요. 날마다 세 끼씩 포식하는 바람에 우리는 혈관질환, 암, 당뇨 같은 비전염성 질병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뉴기니 사람들은 그런 질병으로 죽지 않아요. 우리 몸은 현대에도 여전히 과거의 라이프스타일에 적응돼 있는 겁니다.”
- 압축적으로 현대화를 겪은 한국에는 세대 격차가 심각하다. 노인은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고 청년은 노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짧게 답하자면 세대간 소통이 필요해요. 한국의 60~70대는 전쟁을 겪었지만 젊은층은 그 공포를 모릅니다. 전통 사회에 가까운 세대와 현대 사회에서 자란 세대가 상대를 인내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스마트폰이 독서의 가장 큰 적(敵)이라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이 책을 점점 덜 읽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나?
“5400년 동안 문명이 쌓아온 지혜를 내다버리는 것과 같아요. 역사의 지혜, 문학과 예술을 걷어차는 일입니다. 난 컴퓨터, 이메일, 타자기도 쓰지 않아요. 낡은 휴대전화가 하나 있는데 몇 해 전부터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펜을 들어 보이며) 책은 이걸로 씁니다.”
- 당신은 12개 언어를 구사하는데, 컴퓨터도 배워보시라.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안 배울 겁니다. 좌절하고 싶지 않아요.”
- 다음 책의 주제는 뭔가?
“변화(change). 한국도 미국 사회도 모두 변하고 있어요. 사람도 달라집니다. 개인과 국가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어요.”
- 언제 읽을 수 있나?
“2020년. 내 책은 최소 8년 걸린다오.”
다이아몬드는 1937년생입니다. 70대 중반에 8년 잡고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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