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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商朝
국호 상(商)
수도 은허
군주
 -건국군주
 -멸망군주
15왕

성립 기원전 1600년
탕왕하나라를 멸하며 건국.
멸망 기원전 1046년
서주 무왕을 멸함.
China 1.jpg
 상나라의 영역
Shang dynasty.svg
 상나라의 위치

 

 

 

중국상하오천년사

반경이 수도를 옮기다

[ 盤庚遷都 ]

[네이버 지식백과]반경이 수도를 옮기다 [盤庚遷都]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4.25, 신원문화사)

 

 

탕왕은 상나라를 세울 때 호(毫, 하남성 상구시)를 수도로 정했으나, 이후 3백여 년 동안 다섯 차례나 수도를 옮겼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왕권 쟁탈로 인해 내란이 일어나거나, 황하의 범람으로 수재가 빈번한 까닭도 있었다. 한번은 도성이 몽땅 물에 잠겨서 하는 수 없이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수도를 옮기는 것을 천도(遷都)라고 한다.

 

반경(盤庚)은 탕왕에 이어 스무 번째로 왕위에 올랐다. 재능 있는 임금으로 나라의 불안정한 국면을 변혁시키기 위해 도성을 옮길 결심을 했다. 그러나 안일한 생활에 젖은 대다수 귀족들이 반대를 했다. 권세 있는 일부 귀족들은 평민들까지 선동하는 바람에 온 도성이 시끌벅적했다. 반대 세력이 이처럼 강했지만 반경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천도를 반대하는 귀족들을 불러놓고 꾸준히 설득했다.

“도성을 옮기는 것은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요. 이런 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할 것이오. 근거 없는 의심은 버리시오. 과인은 한번 먹은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줄 아시오.”

반경은 결국 반대 세력을 꺾고 평민과 노예들을 데리고 황하를 건너, 수도를 은(殷, 하남성 안양시 소둔촌)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정치에 힘써 쇠락해가던 상나라를 다시 부흥시켰으며, 2백 년이 넘도록 도성을 옮기지 않았다. 그래서 상나라를 은상(殷商)이라고도 한다.

그로부터 3천여 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흐른 지금, 상나라 수도에는 폐허만이 남아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은의 유적지에서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그곳이 원래 상나라의 도읍지였기 때문에 ‘은허(殷墟)’라고 부른다.

은허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진 거북의 등껍질과 동물의 뼈가 10만여 개나 발굴되었는데 이 글자는 고고학자들의 세심한 연구로 인해 해독이 가능해졌다.

당시 상나라의 통치자들은 미신을 믿었기 때문에 제사나 사냥, 전쟁을 할 때면 거북의 등껍질과 동물의 뼈로 길흉화복을 점치곤 했다. 점을 친 다음에는 그때의 상황과 점의 결과를 거북의 등껍질과 동물의 뼈에 새겨놓았다. 이와 같은 글자를 ‘갑골문자(甲骨文字)’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이 갑골문자에서 변화되어 온 것이다.

이밖에도 청동으로 만든 다종다양한 기물들과 무기, 그리고 정교한 공예품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사모무정(司母毋鼎)’이라고 하는 장방형 솥은 무게가 8백75킬로그램, 높이가 1백30센티미터에 달하며, 화려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이것만 봐도 은상시대에 청동 제련 기술과 예술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