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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석가탑 만들어진 742년, 탑 속에 넣은 듯 (조선일보 2013.07.20 02:59)

석가탑 만들어진 742년, 탑 속에 넣은 듯

석가탑 속 4.6㎝ 금동불 발견 "당시 유물 더 나올 가능성"

 

지난 17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의 해체 작업을 하던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의 눈에 사람 형상을 한 작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탑 아랫부분인 기단(基壇) 내부의 적심석(돌무지)을 들춰내던 중이었다. 석가탑 아래쪽에 숨어 있던 금동불(金銅佛) 입상(立像)이 1271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발견 위치는 북측 상층 기단의 면석(面石·세움돌)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48㎝ 지점. 불상은 높이 4.6㎝, 대좌(불상을 올려놓는 받침)의 지름이 2.3㎝인 소형 불상이다.


	1271년 동안 석가탑에 숨어 있던 금동불… 해체 복원 작업 중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의 기단(탑 아래 기초를 이루는 부분) 속에서 높이 4.6㎝의 금동불 입상(立像)을 발견했다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가 19일 밝혔다. 도금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이 불상은 서기 8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석가탑이 조성된 742년 공양품으로 탑 속에 넣은 것으로 보이며, 얼굴과 몸이 훼손된 것은 1036년의 지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지난 17일 발견 당시 모습. /문화재청 제공
1271년 동안 석가탑에 숨어 있던 금동불… 해체 복원 작업 중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의 기단(탑 아래 기초를 이루는 부분) 속에서 높이 4.6㎝의 금동불 입상(立像)을 발견했다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가 19일 밝혔다. 도금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이 불상은 서기 8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석가탑이 조성된 742년 공양품으로 탑 속에 넣은 것으로 보이며, 얼굴과 몸이 훼손된 것은 1036년의 지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지난 17일 발견 당시 모습. /문화재청 제공

 

전문가들은 이 불상이 8세기 중엽에 제작됐으며, 석가탑이 만들어진 742년(신라 경덕왕 원년)에 탑 속에 납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성은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신체 비례가 좋고, 옷 주름과 대좌의 연잎 등으로 볼 때 석가탑과 비슷한 시기의 유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왜 이 불상이 석가탑 기단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문화재청은 진단구(鎭壇具·나쁜 기운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건물의 기단 등에 넣은 물건)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지체 높은 신자들이 평소 자신들이 갖고 있던 귀한 물건을 공양품으로 탑 속에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 미탄사지 삼층석탑 발굴 때도 기단에서 금동불 입상이 나온 예가 있고, 1978년 황룡사 9층 목탑터 발굴 때는 심초석(心礎石·중심 초석) 아래에서 금동제 귀걸이가 나왔다. 강 원장은 "불국사는 나라에서 완성한 큰 절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당시 유물이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석가탑서 8세기 무렵 통일신라 금동불입상 발견

 (연합뉴스  2013/07/19 17:42)

 

기단 내부 돌무지서..중수할 때 재매납한 듯

 

 복원을 위한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인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기단 속에서 8세기 통일신라시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1점이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7일 이 석탑 상층 기단 면석 해체를 위해 기단 내부 적심석(돌무지)을 수습하다가 불상을 발견했다고 19일 말했다.

 

발견 위치는 북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48㎝, 동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100㎝ 지점이다.

이 불상은 하나를 통째로 주조한 통주식(通鑄式)의 소형 금동불입상으로 높이 4.6㎝, 대좌지름 2.3㎝ 크기이며, 도금 흔적이 미세하게 확인된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通肩式)으로 걸쳤다. 두 손은 일부 훼손됐지만 시무외ㆍ여원인(施無畏與願印)이다. 얼굴인 상호(相好) 역시 알아보기 어려우나 동그란 얼굴에 육계(머리 위에 튀어나온 부분)가 우뚝하게 표현됐으며, 등 뒤에는 광배(光背)를 꽂은 흔적이 돌출했다.

불상은 8세기에 제작됐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석탑이 조성된 742년 공양품의 하나로 넣었다가 고려 정종 2년(1036) 지진 여파로 2년 뒤에 중수할 때 재납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발견당시 불상

 

 

 

석가탑서 통일신라 금동불입상 발견

(법보신문 2013.07.19 18:34)

높이 4.6cm 소형불상
적심석 수습 중 발견
8세기 무렵 조성 추정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금동불입상 정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입상이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제21호) 기단 속에서 금동불입상 1점을 발견했다고 7월19일 밝혔다.


이 불상은 7월17일 불국사 삼층석탑 상층기단 면석 해체를 위해 기단 내부 적심석을 수습하던 중 발견됐다. 발견위치는 북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48㎝, 동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100㎝ 지점이다.


수습된 불상은 통주식(通鑄式)으로 주조된 소형 금동불입상으로 높이 4.6㎝, 대좌지름 2.3㎝ 크기이며, 도금 흔적이 미세하게 확인된다.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법의를 착의하고, 양손은 일부 훼손됐으나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부처님 상호 역시 훼손돼 알아보기 어려우나 동그란 얼굴에 머리 윗부분 돌출부분인 육계가 우뚝하게 표현돼 있고, 등 뒤에는 광배를 꽂았던 것으로 보이는 촉이 나와 있다.

 

 

▲금동불 발견 당시의 모습.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불상의 기본형식을 감안할 때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이 조성된 742년 나쁜 기운의 근접을 막는 진단구(鎭壇具)의 성격으로 납입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얼굴과 신체가 훼손된 것은 고려 정종 2년(1036) 지진에 따른 석탑 기단부가 무너지는 강도의 재해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966년 발견된 ‘불국사 서석탑중수형지기’에는 석탑의 보수가 곧 시행되지 않았고, 그 2년 후인 1038년 중수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 불상 역시 이때 재납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