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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자루, 임부 몰래 밥상 아래 두면 딸이 아들로? (서울신문 2013-07-06)

도끼자루, 임부 몰래 밥상 아래 두면 딸이 아들로?

[실용서로 읽는 조선]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376쪽/2만 1800원

 

‘호랑이에게 물리면 참기름 3~4홉을 마시고 상처를 기름으로 씻은 다음 백반을 가루로 만들어 상처에 붙이면 통증이 멈추고 곧 효과가 난다. (중략) 못 먹는 버섯은 털이 있는 것, 아래 무늬가 없는 것, 밤에 빛이 나는 것, 삶아도 익지 않는 것, 요리를 해도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 봄이나 여름에 악충이나 독사가 지나간 것 등이니, 이들 버섯은 먹으면 모두 사람을 죽게 한다.’

▲ 숙종과 경종의 어의였던 이시필(1657~1724)이 지은 ‘소문사설’(?聞事說)은 당시의 최신 지식과 기술에 대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었다. 중국을 견문하고 돌아온 그가 그린 외다리 방아(왼쪽부터)와 그물, 온돌 설계도.
글항아리 제공

 

조선 시대 관료들의 행정 편람서였던 ‘고사촬요’(攷事撮要)의 일부다. ‘일을 살핌에 필요한 지식을 요령 있게 추려 엮은 책’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책에서 독자들은 당시 호랑이에게 물리는 사람과 독버섯을 먹고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음을 자연스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형벌에 대한 규정이나 좋은 주거지를 고르는 법, 벼룩 없애는 법 등 책에 실린 다양한 내용들을 보고 있으면 조선의 사회상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실용서로 읽는 조선’은 당시 쓰인 실용서를 통해 조선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와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긍식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2명이 조선시대 실용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색했다. 머리말을 쓴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는 “미시의 관찰 속에서, 포착하기 쉽지 않은 조선 사람들의 땀내 나는 일상을 확인하자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책이 소개하는 실용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사송유취’(詞訟類聚)나 ‘결송유취보’(決訟類聚補) 등의 법서는 공자의 이상에 따라 소송 없는 사회(無訟社會)를 추구했지만 사법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현실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1527년에 간행된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조금씩 한자의 자리를 대체해 가는 한글의 모습이 드러나고, 어의 이시필이 저술한 ‘소문사설’(?聞事說)에서는 명·청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실용적인 지식을 발전시키려 한 중인들의 단면이 엿보인다. ‘남편이 장날에 새 도끼 자루를 만들어서 임부 몰래 상 아래 두면 여자 태아가 남자 태아로 바뀐다’ 등의 내용을 담은 ‘규합총서’(閨閤叢書)나 ‘태교신기’(胎敎新記) 같은 책에서는 조선 후기 여성들의 출산 문화를 읽어낼 수 있다.

꽃과 나무를 키우는 방법을 기록한 ‘양화소록’(養花小錄)과 가야금 악보 ‘졸장만록’(拙庄漫錄)에는 팍팍한 일상에서도 삶의 여유와 풍류를 즐긴 정취가 녹아 있다. 저자에 대한 설명과 함께 풍부한 삽화를 곁들여 이해를 도왔다.

책을 읽다 보면 후세는 실용서를 통해 2013년의 한국을 어떻게 돌아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어 학습서와 자기 계발서의 시대? 몸매 관리와 재테크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