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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1가지 개념으로 내려쓴 미학과 미술의 역사 (중앙일보 2013.06.01 00:20)

[책과 지식] 11가지 개념으로 내려쓴 미학과 미술의 역사

진중권의 책 읽는 인간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최초의 아카데미는 조형예술을 지적으로 소화하고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공식 기관 구실을 했다. 알베르티가 1599년 제작한 동판화 ‘로마의 화가 아카데미’. [사진 휴머니스트]

예술이란 무엇인가
볼프강 울리히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휴머니스트, 384쪽, 2만원


 

미학사를 강의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공식적 미학사에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역사적 맥락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논리적 골격뿐. 그것으로 수강자들에게 특정한 시대의 미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제공하는 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씨줄만 있는 미학사에 날줄을 첨가함으로써 미학사를 완전하게 해준다. 미학에 자주 사용되는 11가지 개념의 역사를 담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미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뜻의 ‘알 수 없는 그것(je ne sais quoi)’. 로코코 예술에 자주 사용된 우미(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나타내는)의 사행선(蛇行線). 신고전주의의 모토였던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 회화가 시만큼 위대하다고 주장할 때 즐겨 인용되는 호라티우스의 어구 ‘시는 그림처럼(ut pictura poesis)’. 예술이 오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뜻의 ‘즐거움과 유익함’. 이는 우리에게 이른바 ‘당의정(糖衣錠) 이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세기말에 탐미주의 풍조를 낳은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 개념의 지배를 받지 않는 순수한 지각으로서 ‘천진한 눈’. 예술을 추동하는 두 개의 대립되는 힘으로서 ‘아폴로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 니체는 이를 그리스 비극의 두 기둥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이 제시한 ‘예술의지(Kunstwollen)’. 이 개념은 물론 양식의 변화에는 장인적 솜씨(can)보다 작가의 내적 표현의 의지(will)가 더 결정적이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위에서 열거한 것이 근대미술의 소산이라면, 마지막 두 개념은 주로 현대미술에 관계한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확장된 예술개념’.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으로 가져온 이후 오늘날 일상의 모든 사물은 예술작품으로 변용(變容)될 자격을 얻었다.

 이 미적 엔트로피 상태는 자연스레 ‘예술의 종말’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이미 우리는 ‘무엇이 예술인가’를 묻지 않고 ‘언제 예술인가’를 묻는다. 예술의 조건 자체를 성찰하는 현대예술은 전통적 예술의 지평을 떠나 차라리 철학에 가까워진다.

 예리한 독자라면 이미 짐작했겠지만, 11가지 개념의 역사는 동시에 르네상스에서 출발하여 현대에 닻을 내리는 예술의 여정을 제공한다. 그 덕분에 독자는 이 책에서 미학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과 더불어, 르네상스·고전주의·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 그리고 세기말 유미주의와 세기 초 아방가르드를 거쳐 요셉 보이스의 플럭서스 퍼포먼스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까지 서구미술의 역사에 대해서도 참신한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개념을 통해 미학사와 미술사를 조망하는 서술방식은 최근 역사학에서 유행하는 ‘미시사’ 연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미술사와 미학사를 조망하는 11개의 미시사를 하나로 묶은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학에서 미시사가 그러하듯이, 이런 접근방법의 장점은 거대서사 속에서는 간단히 사라지고 마는 역사의 섬세한 결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는 데에 있다.

 사실 미학사에 대한 이런 접근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예로 블라디슬로프 타타르키비츠가 지은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라는 책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 폴란드 미학자의 책 속의 미학사는 개념의 논리적 자기전개에 치우쳐 있어, 특정 개념을 당대의 사회 및 예술문화 속에 맥락화하는 데에는 다소 한계를 보인다. 게다가 그 책은 쓰인 지 너무 오래됐다. 역사의 본질은 단순한 사실의 집적이 아니라, 변화한 시대의 변화한 눈으로 집적된 사실을 재배열하는 데에 있다.

 내가 꼭 쓰고 싶었던 책이라고 할까. 실제로 내용 중 몇몇 부분은 나 역시 강연이나 저서를 통해 언급한 바 있는 것들이다. 미학사나 미술사를 강의할 때마다 뭔가 부족하다 여겨 매번 스스로 찾아서 채워 넣어야 했던 빈틈이 이 책으로 온전히 메워진 느낌이다.

 번역자인 조이한·김정근은 책을 고르는 ‘선구안’이 좋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마가레타 브룬스의 『눈의 지혜』, 베레나 크레거의 『예술가란 무엇인가』 등, 이 역자들이 고른 책이라면 서점에서 안심하고 집어 들어도 좋다.

 번역은 정확하고 유려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술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원제의 과거형을 번역과정에서 현재형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편의를 위한 결정일 것이다. 원제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해석학적 지평의 차이를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 눈에 익숙해 보이는 개념들이 과거에는 상당히 다른 뜻으로,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사용됐다. 이 책에서 발굴하려는 것이 바로 그 차이다. 하지만 제목이 현재형이 됨으로써 ‘개념의 고고학’의 측면은 사라지고 만다.

 또 한 가지 지적하자면, 미국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쓴 논문의 제목은 ‘새로운(new) 라오콘을 향하여’가 아니라, ‘더 새로운(newer) 라오콘을 향하여’다. 나 자신도 미국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초석을 놓은 이 기념비적 논문에 그린버그가 왜 굳이 ‘새로운’ 대신에 ‘더 새로운’이라는 비교급을 사용했는지 궁금했는데, 그 해답을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린버그에 거의 30년 앞서 어빙 배빗이라는 사람이 이미 ‘새로운 라오콘’(1910)이라는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문화비평가. 미학자.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학과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저서 『생각의 지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