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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바이오 산업

뛰는 인간 위에 나는 바퀴벌레 (조선일보 2013.05.25 03:01)

뛰는 인간 위에 나는 바퀴벌레

단맛 든 미끼 피하기 위해 단맛을 쓴맛으로 느끼게 진화

 

바퀴벌레가 20여년 전부터 생존을 위해 '단것'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바퀴벌레약에 들어 있는 '달콤한 미끼'를 피하기 위해서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진은 23일 "독일바퀴 중 일부는 최근 체내 화학작용에 변화를 일으켜 포도당 성분을 '쓴맛'으로 느끼도록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독일바퀴는 최대 1.3㎝ 크기의 작은 바퀴벌레 종이다. 국내에서도 서식하며, '집바퀴'로 불린다.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이 뿌리는 형태의 살충제에 이어 독이 든 미끼를 사용하기 시작한 직후인 1993년부터 일부 독일바퀴가 단것을 피하는 현상이 처음으로 관찰됐다. 바퀴벌레는 보통 새 살충제가 등장하면 박테리아처럼 해당 살충제에 내성(耐性)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에 맞서왔다.

그러나 독일바퀴가 선택한 방식은 아예 단것을 피하는 쪽이었다. 바퀴벌레는 몸 여러 곳에 난 수많은 미세한 털을 통해 맛을 느낀다. 이 털에는 단맛에 반응하는 세포와 쓴맛에 반응하는 세포가 따로 있다. 일부 독일바퀴의 경우, 미끼로 자주 사용되는 포도당에 접촉하자 두 세포가 동시에 반응했다. 연구진이 포도당이 든 젤리를 강제로 입에 밀어 넣자 이를 뱉어내기까지 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이 나중에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대(代)를 이어 유전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처음엔 일부 돌연변이만 이런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5년 만에 25세대까지 내려가는 빠른 번식 속도로 인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고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연구에 참여한 코비 샬 박사는 "바퀴벌레는 적응력이 대단히 뛰어나고, 인간과의 '군비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 연구로 밝혀진 바퀴벌레의 비밀이 인간의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24일 발행된 사이언스지(誌)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