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강남터미널 사제폭탄 설치후 노린건?
요즘 여의도 증권가의 화제는 두 인물의 귀환이다. 1996년 선물·옵션시장이 문을 연 뒤 두 명의 고수(高手)가 탄생했다. 요리조리 위험을 잘 피한다는 ‘압구정동 미꾸라지’ 윤모씨. 윤씨는 펀드매니저·미국 선물시장 연수를 통해 갈고닦은 솜씨로 종잣돈 8000만원을 1300억원으로 불리는 마법을 선보였다. 전남 목포의 ‘목포 세발낙지’ 장모씨도 빼놓을 수 없는 전설이다. 그는 하루 최대 1조원의 선물거래를 주선해 시장을 쥐락펴락한 인물이다. 이 두 지존이 ‘현역 은퇴’ 이후 7~8년의 은둔과 외도를 끝내고 컴백한 것이다.
선물·옵션은 매우 위험한 시장이다. 누가 이익을 보면 반드시 손해를 본 쪽이 생긴다. 전문 지식과 칼 같은 매매기법을 갖추고도 쪽박 차기 일쑤다. 그런데도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대단하다. 기를 쓰고 뛰어든다. 덩달아 국내 선물·옵션의 거래량은 단연 세계 최고다. 지난해 거래금액만 무려 1.64경(단위가 다르다!)이다. 선물·옵션은 위험 회피라는 당초 목적과 거꾸로, 막가는 투기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현물주식이야 투자자금 공급이란 순(順)기능이 있지만 선물·옵션은 그야말로 ‘제로섬’ 게임이다.
두 지존에 얽힌 전설은 많다. 명상과 호흡법을 자유자재로 하고,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으로 정신을 다스린다는 신화까지 더해졌다. 이들은 “파생(상품)을 하는 사람이 레버리지를 풀(full)로 안 쓰면 파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이들이 구사한 전략은 ‘뚝 쌓기(위쪽과 아래쪽에 큰 물량을 걸어놓고 흔드는 기법)’와 스캘핑(초 단타매매), 손절매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보면 매우 단순한 투자기법이다. 오히려 이들의 경이적인 수익률의 뒤편에는 어수룩한 개미들이 있었다. 당시 선물옵션은 개미 비중이 70%나 되는 ‘물 좋은’ 시장이었다. 두 달인의 기세는 2004년부터 꺾어져 자산이 반 토막 났다. ‘홍콩 물고기’ 같은 외국인들이 뛰어들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대형 증권사들이 큰손으로 등장했다. 두 고수마저 큰 손실을 피해가지 못했다.
선물·옵션에서 대박을 냈다는 소문은 많지만, 그 행운이 오래 갔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풀 베팅의 중독성, 레버리지 효과에 대한 환상으로 대개 빈털터리로 끝난다. 선물옵션에 빠지면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다. 현물주식은 하루 평균 네 차례 사고팔지만 선물은 22회, 옵션은 하루 평균 무려 50회나 매매한다. 사건·사고도 꼬리를 물고 있다. 2년 전 불과 10분 만에 도이치증권의 횡포로 시가총액이 30조원이나 증발됐고, 한 개인 투자자는 옵션 만기일을 노려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 사제폭탄을 설치했다가 붙잡혔다.
요즘 선물·옵션 거래세 도입을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다. 필자는 찬성하는 쪽이다. 선물·옵션시장의 개미 비중은 30%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증권 당국은 증시 상황에 따라 기본 예탁금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땜질식 처방만 반복해 왔다. 거래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대만이 유일하다고? 하지만 미국·유럽·일본 등은 파생상품에 이미 자본이득세를 매기고 있다. 정부가 검토 중인 거래세율도 선물(약정금액)의 0.001%, 옵션(거래금액)의 0.01%로 낮다. 여기에다 3년간의 유예조항도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가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폭 손질하고 있지 않은가.
선물·옵션에는 영원한 고수가 없다. 영원한 행운도 없다. 개미들은 증시가 지루한 게걸음을 하면 화끈한 선물·옵션 쪽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최근 두 지존의 귀환도 “돈 잃어줄 신출내기들이 늘어나 선물·옵션에서 돈 벌기 쉬워졌다”는 소문 탓은 아닌지 걱정이다. ‘개미 지옥, 큰손 천국’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얼마 전부터 선물·옵션에 쏟아지는 외국 핫머니에도 은행세를 부과하지만 너무 낮은 방파제다. 요즘 금융 현장에선 “미국·유럽·일본의 양적완화로 외국자본 쓰나미가 도를 넘고 있다”는 비명이 들린다. 토빈세(단기 외환거래에 매기는 세금)를 신설하더라도 핫머니는 들어올 때 막아야지 빠져나갈 때는 소용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대선에 매몰되고, 금융 당국은 자꾸 후행지표인 통계만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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