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속에 숨어 있는 조류발전의 메카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오전, 일본 수군이 133척의 전투함을 이끌고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돌목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임진왜란 동안 유일하게 일본 수군이 접근하지 못했던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 해류는 벽파진에서 목포 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즉, 일본 함대에서 보면 순방향으로 흘러 아주 유리한 입장이었죠.
이들을 맞이한 조선의 전선은 모두 13척에 불과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수군으로 위장한 어선을 본진 후미에 두고 왜선들을 끌어들이는 유인 작전을 펼쳤습니다. 일본군은 우리 수군의 전선 수가 적고 약한 기세를 보고는 사면을 포위하며 조여 왔습니다.
아군은 싸울 뜻이 없는 양 거짓으로 적의 포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탄 장군선이 순식간에 왜선들에 포위되는 순간, 대장 지휘기가 올라가며 북소리가 울리더니 조선 수군의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울돌목의 물살이 오후가 되자 거꾸로 바뀌어서 빠른 물살에 뒤엉킨 일본 전함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순식간에 왜선 30여 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적장이 사로잡힌 뒤 참수되자 왜선들은 퇴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의 급류 속에 감추어 둔 철쇄에 가로막혀 퇴진도 할 수 없는 낭패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이날의 전투가 바로 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기적의 승리를 낳게 한 명량대첩입니다.
전투선 133척에다 수송선 300여 척의 엄청난 규모인 일본 수군이 13척에 불과한 조선 수군에게 왜 이렇게 엄청난 패배를 당했던 걸까요? 그 이유는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리더십과 조선의 우수한 화포 성능, 학의 날개를 펼친 듯한 학익진 전술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조류의 변화가 심하고 물살이 매우 빠른울돌목>
울돌목의 비밀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명량대첩’의 지명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명량대첩은 명량해협에서 거둔 큰 승리라는 의미입니다. 명량해협은 울 명(鳴)에 징검돌 량(梁), 바다 해(海), 골짜기 협(峽)의 한자어입니다. 즉, 징검돌이 우는 좁고 긴 바다라는 뜻이죠.
명량해협의 한글 이름이 바로 울돌목입니다. 울돌목이라는 이름 역시 조류 변화가 심하고 물살이 빨라 20리나 떨어진 곳에까지 울며 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본 수군은 이같이 빠른 물살이 흐르는 줄 미처 몰랐기 때문에 그처럼 많은 병력과 전선을 가지고도 속수무책으로 패배했던 것입니다.
수로의 폭 294미터, 최대 유속 11.5노트(시속 약 22㎞), 썰물 때의 수심이 최저 1.9미터밖에 되지 않는 이곳 울돌목에 지난 2008년 5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설치되었습니다. 가로 16미터, 세로 36미터, 총 중량 1천여 톤에 달하는 아파트 10층 규모의 철골 구조물은 울돌목의 거친 물살 때문에 앞서 두 번이나 실패한 후 세 번째만에 성공적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그 후 수차가 설치되고 발전기와 전력변환장치 등이 들어섬에 따라 올해 5월 14일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류발전소의 준공식이 울돌목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하루 평균 약 43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1천kW급의 이 시험용 조류발전소는 2013년까지 9만kW급의 상용 조류발전소로 확대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도군 전체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약 3.3배에 이르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울돌목의 조류발전 조감도>
순수 우리 기술로 준공된 조류발전소
조류발전은 울돌목처럼 바닷물의 흐름이 빠른 지역에 수차를 설치해 물의 흐름에 따라 회전하는 수차 터빈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노르웨이ㆍ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만이 시험발전하고 있는 조류발전은 바다 생태환경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으며, 시간에 따른 발전량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 시설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또한 조류발전은 풍력발전처럼 유체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하여 터빈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데, 바닷물의 밀도가 공기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같은 시설용량일 경우 풍력터빈에 비해 조류터빈의 크기가 훨씬 작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울돌목에 설치된 시험 조류발전소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준공되어 더욱 의미가 큽니다. 전라남도는 울돌목 외에도 완도 횡간수도, 신안군 지역 등 도내 섬과 섬 사이에 흐르는 조류를 이용해 전남 서해안을 조류발전의 메카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인천시도 덕적도와 대이작도ㆍ소이작도 일대 바다 속 4곳에 1MW급 조류발전기 200기를 설치해 연간 61만3천MW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한편 자연적인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으로는 조류발전 외에도 조력발전이 있습니다. 조력발전은 밀물과 썰물의 조석현상이 강한 만의 입구나 하구에 방조제를 설치하여 바닷물을 가둘 수 있는 저수지를 만든 후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을 출입시키면서 방조제 안쪽과 바깥쪽의 수위 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즉, 강물을 가두어 큰 댐을 만들어서 발전을 하는 수력발전과 기본원리가 같은 셈이지요.
세계 최초의 조력발전소는 196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건설한 24만kW 규모의 랑스발전소입니다. 그 외에도 러시아의 키슬라야와 캐나다의 아나폴리스, 중국의 지앙시아 등에 조력발전소가 건설되었습니다.
<올해 5월에 준공된 울돌목 시험 조류발전소>
새로운 에너지 개발의 심장부
우리나라도 강화도 일대에 2015년 상업운전 시작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조력발전소는 강화도와 교동도, 석모도, 서검도 등 4개의 섬을 총 연장 7천795m의 방조제로 연결해 25.4MW 수차발전기 32기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그럼 왜 서해안에만 밀물과 썰물을 힘을 이용하는 조류발전소 및 조력발전소가 설치되고 계획되는 걸까요? 밀물과 썰물은 달, 태양 및 기타 여러 천체의 인력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달의 영향이 가장 큰데, 만조는 달에 가장 가까운 부분과 가장 먼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또 태양과 지구, 달이 직선상에 놓이는 보름과 그믐에는 태양의 인력과 달의 인력이 합쳐지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크게 됩니다. 태양과 지구, 달이 직각으로 배열되는 상현과 하현에는 인력이 상쇄되어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작아집니다.
그런데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한 영향과 아울러 해안선 및 해저의 모양ㆍ크기 등에 의해 조차의 범위가 영향을 받습니다. 만이나 해협 등과 같이 막혀 있는 지형의 바다에서는 조차가 그만큼 크며, 조류의 속도도 빨라집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낮고 해안선의 굴곡이 많아 조차가 크지만, 동해안은 수심이 깊고 해안선의 굴곡이 없어므로 밀물과 썰물의 차가 적은 것입니다.
울돌목의 빠른 조류를 이용해 명량대첩이라는 큰 업적을 남긴 이순신 장군처럼 우리나라의 서해안이 조석의 힘을 이용해 새로운 에너지 개발의 심장부로 우뚝 서길 기대해 봅니다.
<강화도 일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가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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