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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

김대중 `행동하지 않는 양심, 악의 편이다`(조선일보 2009.06.11)

김대중 "행동하지 않는 양심, 악의 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1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와 서민경제, 평화로운 남북 관계를 지키는데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의 특별강연을 통해 "독재자에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역사상 최악으로 심해졌고, 전쟁의 길(위협)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우리나라 도처에서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행시키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객이 500만 명에 달했다. 이것만 봐도 우리 국민들의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다"며 "국민들은 과거 50년 동안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나라의 기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이 있었지만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했다"며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에도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시켰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뼈있는 말을 했다.

그는 특히 "나는 오랜 정치 경험을 갖고 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아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며 "이 대통령의 결단을 바라 마지 않는다"고 강조,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또 남북관계와 관련, "이 대통령에게 강력히 충고한다"며 "전직 두 대통령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반드시 지키라. 우리가 일방적으로 철수한 금강산 관광 재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는 "오늘날 북한이 많은 억울함을 당하는 것 안다.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가 아닌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을 하겠다면서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심지어 쿠바에까지 손을 내밀면서 북한에 한 마디 안 하는 것이 참으로 참기 어려운 모욕이고 또 속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극단적인 핵 개발에까지 끌고나간 것은 절대로 지지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하루 빨리 6자회담에 복귀해 미국과의 교섭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노 전 대통령과의 '닮은 꼴'을 소개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 나는 목포상고를 다녔고, 둘 다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갔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열심히 공부해 변호사가 됐고 나는 열심히 사업을 해 돈을 좀 벌었다"며 "그 이후 나는 이승만 정권,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독재에 각각 분개해 본업을 버리고 정치에 들어갔다"고 상기, 남다른 '연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 후 같이 반독재를 주장하면서 같은 당에서 일하고, 국회의원도 같이 했다. 북한에도 (정상회담을 위해)차례대로 다녀왔다"며 "가만히 보니 전생에 노 전 대통령과 내가 형제가 아니었나 한다"고 친밀감을 표시했다.

앞서 행사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는 기념사에서 남북관계 위기와 한반도 군사적 긴장감 고조, 노 전 대통령 서거 등에 대해 언급한 뒤 "이 암울한 현실에 한숨짓고 자책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오늘날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이다"며 "이 땅의 모든 양심과 정의로운 사람들이 하나 돼 6·15를 지켜내야 한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살려내야 한다"고 피력했다.

2006년 2월20일 당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았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축사에서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한반도 문제, 남북관계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오늘날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우리 정부, 한국 사회가 건설적인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백 명예교수는 "어제 6·10항쟁 22주년 기념으로 국민 목소리가 한껏 고조된 것만 봐도 점차 우리 사회가 다시 정상화돼 남북관계에서도 우리가 다시 건설적인 역할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 날을 위해 지금부터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이와 함께 참석자들은 북한에 핵 보유국 지위 인정 포기를 요구하고, 한·미·중·러·일에는 9·19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하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행사에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주역들과 각계각층의 민주 진영 세력, 민주당 정세균·창조한국당 문국현·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등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