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분류 언제든 수사·공개…‘사생활 보호’ 묵살
ㆍ통화내역과 달리 영장발부 제한도 없어
ㆍ감청보다 보호 못받아…“법개정 시급”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주경복 후보(건국대 교수)는 2001년 1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7년간의 e메일을 압수당했다. 당시 검찰은 주 교수뿐 아니라 전교조 관계자 등 100여명의 e메일을 압수수색했다.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부 인터넷 업체들은 압수수색 대상자의 회원가입 때부터 쌓인 e메일을 모두 검찰에 제출해야 했다.
“표현의 자유 막지말라”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10여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자유’ ‘방송장악’ 등이 적힌 상자를 벗어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달 초 주 교수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 인터넷 업체 직원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대상 e메일의 기간을 정해서 영장을 가져오는 경우는 10건 중 1~2건에 불과하다”며 “영장에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모든 e메일을 다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사적 e메일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e메일 압수수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생활정보가 담긴 e메일이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마치 알몸이 공개되듯 함부로 다뤄지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에서 발부되는 압수수색 영장은 ‘일반 물건용’ ‘계좌추적용’ ‘통신용’(통신제한조치허가서·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요청허가서) 등 3가지로 검찰은 e메일에 대해서는 ‘일반 물건용’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다.
계좌추적과 통신용 압수수색 영장은 대상물에 범죄혐의가 특정돼야 하는 것은 물론 추적의 범위와 기간 등에 대해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휴대전화 통화내역은 6개월, 일반전화는 1년 정도의 범위에서 해당 범죄사실과 연관 있다고 판단되는 기간에 한해 영장이 발부된다.
그러나 ‘일반 물건용’ 영장으로 청구되는 e메일에 대한 압수수색은 기간제한을 두는 규정이 없다.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 포함된 수사 대상자의 모든 e메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e메일 압수수색은 감청이나 통화내역 조회 등 통신제한조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실무’에 따르면 “이미 수신이 끝난 과거의 우편물, e메일 및 휴대전화의 문자·음성메시지 등은 모두 통신제한조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돼 있다.
이에 따라 e메일 압수수색은 통비법에 따라 감청 등에 적용되는 엄격한 제한에서 비켜나 있다. 「PD수첩」 사태처럼 검찰이 압수한 사적 e메일을 공개해도 통비법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e메일 압수수색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개선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e메일 압수수색은 계좌추적이나 감청과 달리 조사 후 통보되지 않아 수사기관이 자신의 e메일을 봐도 당사자는 전혀 모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말 통비법이 개정되면서 5월28일부터는 e메일을 압수수색했을 때도 사후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바뀌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압수수색 영장도 구속영장처럼 발부 요건을 강화하고 e메일 영장은 기간을 정해서 신청하도록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부 판사는 “법원에서도 최근 e메일 영장발부 관련된 문제제기가 많아 영장발부시 범죄와 관련 있는 기간으로 엄격히 제한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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