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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21세기 新골드러시 `믿을건 金뿐` (매일경제 2009.12.02)

21세기 新골드러시 "믿을건 金뿐"
中ㆍ印ㆍ러시아 중앙銀에 헤지펀드도 가세
금값 장중 1200달러 돌파…올들어 36%↑

지난 10월 말 인도 중앙은행 고위 관계자들과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들이 싱가포르에 모였다. 주제는 `금(金)`.

IMF는 8월 중순부터 각국 중앙은행에 이메일을 돌렸다. 보유 중이던 400t의 금을 팔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인도가 반응을 보였고 곧바로 싱가포르에서 미팅이 열렸다.

당시 금값은 온스당 1000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터였다.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과 금 시장 관계자들은 인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금값이 너무 올랐는데 과연 인도가 `베팅`을 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도측 관계자들은 의외로 여유로웠다.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 그들은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우린 달러 약세가 추세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이 회의에 직접 참석했던 세계금협회(WGCㆍWorld Gold Council) 조지 마일링-스탠리 관리이사는 "이 말은 사실상 금을 사겠다는 의사표시였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될수록 금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가격협상 없이 인도는 온스당 1045달러에 200t의 금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금 보유량이 14t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국제 금값(12월물)은 지난 1일 하루 동안 1.5% 급등해 온스당 1199.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사상 처음 장중 12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금값은 최근 20주 중에 무려 17주 상승하는 괴력을 보였다. 연초보다는 36%나 급등한 상태다.

이 때문인지 금을 향한 각국의 관심은 뜨겁다. 스탠리 이사는 "금에 대한 중국 러시아 인도의 태도는 명확하다"며 "금을 갖고 싶어 한다"고 단언했다.

중국은 2001년 500t이던 금 보유량을 올 9월 말 현재 1162t으로 늘렸다. 올해 들어서만 560t을 추가로 확보했다. 인도는 IMF로부터 추가로 200t을 더 매입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러시아 역시 2001년 423t에서 올해 초 532t으로 금 보유량이 급증했다.

금값이 뜀박질을 계속하자 각국 중앙은행뿐 아니라 헤지펀드까지 금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폴슨도 최근 금ETF(상장지수펀드)에 31억달러를 투자했다. 에톤파크 헤지펀드도 앵글로골드 아샨티 등 금광기업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JP모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금 관련 ETF에 유입된 자금은 총 140억달러가 넘는다.

정부와 민간 할 것 없이 지구촌 곳곳에 `21세기판 골드러시`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美 `연방은행 金보관소 투어` 연일 북새통
위기때마다 안전 선호로 가격 천정부지
외환보유액 중 金 비중 - 美ㆍ佛 70% 넘어, 한국 0.03% 그쳐

◆ 21세기 新골드러시 (上) ◆

5000t이 넘는 금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뉴욕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건물. <남기현 기자>
"오 맙소사, 이것 좀 봐."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HSBC 뉴욕본부의 한 금 트레이더가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흥분한 어조로 옆 동료에게 말한다.

"어 어 어, 결국 1180달러를 넘어버렸어. 이러다가 2000달러까지 가는 거 아냐?"

세계 1위의 금 거래 점유율을 자랑하는 HSBC 뉴욕본부. 이곳의 귀금속 전문가인 제임스 스틸 수석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요즘 금값을 보면 정말 놀랍다. 지금은 금값이라는 게 적정 가격이 없는 것 같다"며 가파른 금값 상승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날 국제 금값은 온스당 1186.90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일 현재 금값은 1199.10달러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다.

금값 변동폭을 보면 요즘 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HSBC에서 금 트레이딩을 담당하는 한 실무자는 "10년 전엔 하루 금값 변동폭이 1달러도 안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때는 정말 지루한 시절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많으면 25달러, 적어도 10달러 이상은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에 자리 잡은 뉴욕 연방은행의 금 보관소. 요즘 이곳은 금고 투어를 희망하는 일반인과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금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만큼 금을 보관 중인 뉴욕 연방은행 금고는 최적의 `금 교육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의 금값 상승세는 달러 약세에 대한 반작용이다.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달러를 시중에 풀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했고 대신 대표적 실물 자산인 금값이 오르고 있다. 전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금이 달러화에 대한 최고의 위험회피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위기가 터지고 전쟁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위험이 극에 달할 때 화폐는 쓸모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반면 금은 언제 어디서나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언제, 어떤 나라에서든 그 나라 화폐로 바꿀 수 있는 탁월한 환금성 덕에 금은 최고의 `안전 자산`이다.

위기 때마다 실력을 발휘하는 게 금이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1987년 블랙먼데이, 2001년 9ㆍ11사태 등이 터질 때마다 금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HSBC 뉴욕본부 귀금속 트레이딩 파트의 한 총괄 임원은 "핵전쟁만 빼고 금의 가치를 훼손할 요인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만큼 금은 안전한 투자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2001년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져 내렸을 때도 이 건물에 보관되고 있던 금은 전량 보존돼 정부가 수거해 갔다.

일찌감치 금의 가치를 터득한 선진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금으로 채워왔다. 지난 11월 기준 미국과 독일은 각각 총 8133t, 3408t의 금을 보유 중이다. 최근엔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들이 `금 모으기`에 가세했다.

반면 한국은 금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다. 최근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고작 14t에 불과하다.

한국의 외환보유액(10월 말 기준 2646억달러)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03%다. 미국(77.4%) 프랑스(70.6%) 인도(6.2%) 등 외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중국은 현재 1.9%에 불과하지만 금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 강력한 금 사재기에 나선 상태다.

반면 한국은 달러 비중이 무려 64%에 이른다. 달러화가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다. 금 비중이 좀 더 높았더라면 달러 하락에 따른 손실을 상당 부분 헤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 중국ㆍ인도인은 왜 금에 열광할까

중국과 인도는 왜 금에 열광할까.

중국인들에게 황(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이 단군의 자손이라 자칭하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염황(炎黃)의 자손`(염제 신농씨와 황제 헌원의 후손이라는 뜻)이라 부른다. 중국인들에게 왕을 뜻하는 단어 또한 황제다. 황제가 입었던 옷은 항상 황금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역사가 시작된 곳은 다름 아닌 황허강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황금을 사랑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현상으로 읽힌다.

중국인들에게 황금색은 민족의 뿌리이자 부의 상징이다.

베이징 최고 호텔로 각광받는 베이징판뎬(北京飯店)의 명물 중 하나는 지하 식당(황금식당)이다. 이 식당은 온통 황금빛으로 치장돼 있다. 식당 벽과 온갖 장식물에 황금을 입혔다.

마카오 도심 곳곳엔 `금 골목`이 형성돼 있고 특급호텔 앞 장식은 대부분 금으로 만든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일반인들의 구매력이 높아지자 중국 중산층까지 일제히 금 투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자오상 은행 베이징 지점에서 금괴 1000개가 단 40분 만에 팔린 일화는 유명하다.

인도인들의 금 사랑 또한 중국에 못지않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인도인들은 `금이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금을 숭배하는 전통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결혼식을 갓 치른 새색시가 금으로 만든 제품을 혼수품으로 시댁에 가져가는 풍습도 흔하다.

`진짜 돈` 金 투자 열기 쉽게 식지 않는다
자산배분 핵심축으로 자리잡아 두바이 쇼크에도 하루만에 반등
당분간 달러약세로 강세 이어질듯

◆ 21세기 新골드러시 (中)◆

지난달 27일 두바이 쇼크로 인해 달러화가 반짝 강세를 보이자 금값이 조정을 받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그동안 급등했던 금값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을 제기했다. 질문이 쏟아졌다. 금값은 이제 꼭짓점을 찍었는가? 지금 금에 투자하면 상투를 잡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조지 마일링 스탠리 세계금협회(WGC) 이사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는 "가격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그냥 안심시키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실제 고공 행진을 하던 금값은 두바이 쇼크 당일에만 하락했을 뿐 이후 3일 연속 상승세를 거듭해 결국 온스당 1200달러를 돌파했다.

앞으로도 금값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른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일별로 등락을 거듭하며 장기적으로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앞선다.

귀금속 전문가인 매트 제먼 라살퓨처스그룹 트레이더는 "앞으로 달러 움직임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금값은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러 약세는 당분간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금값 상승이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HSBC의 귀금속 전문가인 제임스 스틸 수석 애널리스트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그는 "언젠가 미국 경기가 회복돼 달러 강세가 오면 금값이 약간 조정을 받겠지만 큰 폭의 하락은 없을 것이고 금값은 점진적으로 등락을 반복하면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리 WGC 이사도 "역사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금값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 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전망했다. 그는 "세상은 항상 평화롭지 않다. 중동과 한반도 문제는 언제나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며 "그러나 광산 문제로 인해 금 공급은 크게 늘지 않는 만큼 금값은 점진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금에 대해 우호적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렇게 되면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고 금은 더욱더 매력이 큰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WGC는 금 실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상품명은 그 유명한 `스파이더 골드` ETF다. 스탠리 이사는 "2002년 우리가 금 ETF 상장 작업을 시작할 때 금값이 온스당 200달러대였다. 그리고 실제 상장이 이뤄진 시기는 2004년으로 이때 금값은 400달러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며 "그때 우리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한마디는 `다들 미쳤다`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때 `미쳤다`고 한마디씩 던진 사람들은 지금 할 말이 없게 됐다. 5년여 지난 지금 금값은 온스당 1200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스탠리 이사는 "금 투자는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금이 주식ㆍ부동산ㆍ채권과 함께 4대 투자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스폿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 투자 자세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단발성 투자보다는 4대 투자축을 가지고 좋은 포트폴리오를 짠다는 차원에서 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탠리 세계금협회 이사 "지금 금은 모든화폐에 대해 강세"
韓銀, 달러저금 이자로라도 사야

◆ 21세기 新골드러시 (中)◆

`경제 회복은 달러화 상승을 의미하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조지 마일링 스탠리 세계금협회(WGC) 이사는 최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서 달러화가 반드시 상승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금액의 달러 부채를 지고 있다. 부채와 경기 회복은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지금은 기축통화 변화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기가 좋아지면 달러 가치가 회복되고 금값이 떨어질 것이란 예견도 섣부른 전망이라는 것이다.

스탠리 이사는 또 "내가 금 시장을 봐 온 이후 요즘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지금은 달러뿐 아니라 모든 화폐가치가 내려가고 금 등 실물 가치가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늘리려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한국만 이런 분위기에서 이탈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스탠리 이사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보유한 금은 전 세계 금의 50% 이상에 달하는 반면 한국 비중은 0.2%밖에 안된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0.2%는 너무 낮은 수치"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면 적어도 한 자릿수는 돼야 한다고 본다"며 "지금까지는 한국은행이 잘 해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탠리 이사는 또 "달러 저금 이자로라도 금을 사들일 필요가 있다"며 "가치가 오르는 자산을 많이 갖고 있어야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경기 상황과 관련해 스탠리 이사는 "각국 정부의 경기 회복 노력으로 막대한 돈이 풀리긴 했으나 본격적 인플레이션이 온 것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정부에서 지출된 막대한 규모의 자금은 시중에서 돌지 않고 AIG 등 부실회사나 은행에 고여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스탠리 이사는 "이처럼 한곳에 고여 있는 돈이 시중에 풀리게 되는 시점에서 진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며 "진짜 인플레이션이 오면 금값도 강세를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