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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前線` 따라 뒤흔들리는 列島도쿄(조선닷컴 2010.04.16 16:28)

'벚꽃 前線' 따라 뒤흔들리는 列島

입력 : 2010.04.16 16:19 / 수정 : 2010.04.16 16:28

벚꽃의 세계

봄이면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의 키누타(砧)공원은 항상 바쁘다. 벚꽃 구경꾼들로 꽉 찬다. 이 공원 벚나무는 가지가 사람 발까지 내려와 있다. 4월 초순 벚꽃이 만개할 때 그 안에 들어가면 온 세상이 연분홍으로 보인다.

이 공원 벚꽃은 '소메이요시노'와 '야마자쿠라(산벚나무)'가 주종이다. 바람이 불면 930그루 벚나무에서 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이를 일본인들은 사쿠라후부키(櫻吹雪)라고 한다. 벚꽃 눈보라라는 뜻이다.

개인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쿄에는 기누타공원만큼 혹은 그보다 규모가 더 큰 벚꽃 명소들이 최소 50군데 이상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일본 전체가 벚꽃 판이다. 일본의 봄은 벚꽃으로 시작해 벚꽃으로 끝난다.

일본 도쿄의 왕궁 옆에 있는 수로(水路)인‘지도리가우치’에서 연인들이 봄과 벚꽃을 만끽하고 있다. 물 위에 하얗게 떠 있는 것은 벚꽃잎이다. / AFP
사쿠라 중계방송

일본의 신문·방송은 2월부터 사쿠라 중계방송을 한다. 남쪽부터 꽃이 피면 각 지역에 언제쯤 만개할지 예보하느라 법석이다. 벚꽃 피는 시점이 같은 지점을 선으로 연결해 날씨 예보의 등고선처럼 생긴 벚꽃 전선(前線)도 나온다.

벚꽃 분위기를 내기 위해 판매대를 연분홍색으로 바꾸는 편의점도 있다. 인터넷에는 벚꽃 명소를 열거해 놓고 꽃의 상태가 어떤지 중계를 해주는 사이트가 넘쳐난다. 열도(列島)가 열광하는 것이다.

규슈지방 등 남쪽은 3월, 도쿄가 있는 관동지방은 꽃이 만개하는 4월 초순 즈음이 절정이다. 그 이후로는 개화가 산이나 북쪽 홋카이도까지 올라가 5월까지 이어진다.

지역마다 벚꽃이 만개해 있는 기간은 아주 짧다. 기껏해야 1주일이다. 그러다 보니 낮밤을 가리지 않고 즐긴다. 준비물은 도시락 같은 먹거리와 술, 비닐이다. 비닐은 먹을 때 앉을 깔개로 쓰인다.

밤에도 똑같다. 절정에는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로 넘친다. 도심과 아주 가까운 우에노공원 같은 곳에서는 비닐을 깔아 놓고 기다리는 자리잡기 경쟁도 생긴다. 기업에선 주로 부하들이 이 일을 한다.

벚꽃을 주머니에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기누타 공원에서 상춘객들이 벚꽃을 즐기고 있다. 이 공원의 벚나무는 사람 눈 높이까지 가지를 내려놓고 있다. 만개(滿開)한 연분홍에, 만취(滿醉)할 듯하다. / 도쿄=정성진 기자 sjchung@chosun.com
일본인이 즐기는 벚꽃은 '소메이요시노'이다. 이 품종에 대해 일본인들은 산벚나무를 개량해 만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자연 종으로는 야마자쿠라라고 불리는 산벚나무, 오시마자쿠라, 에도히간 등 10종 정도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품종을 개량해 현재는 600종 이상이라고 한다. 분홍색이 더 나거나 하얀색이 강하거나 꽃이 더 큰 벚꽃을 만든 것이다. 이중 소메이요시노는 메이지(明治)유신이 일어나기 전인 에도(江戶)시대 말에 개발됐다.

잎사귀가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기 때문에 완전히 꽃만 보인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메이지시대에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는 벚꽃의 대명사처럼 됐지만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고대에는 산벚나무 등이 주종이었다고 한다. 일본 국화(國花)는 법으로 정해진 게 없다. 왕실의 문양은 국화(菊花)다. 일본인들이 심정적으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꽃은 당연히 벚꽃이다. 100엔짜리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 이야기 중 하나는 미국 워싱턴기념관에 있는 사쿠라다. 1965년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의 부인인 버드 존슨에게 일본 정부가 사쿠라를 보내줬다고 한다.

이때 일본은 3800그루를 보내줬는데, 그 나무들이 커져 지금은 워싱턴에서도 유명한 장소가 됐다. 일본인의 벚꽃 사랑은 19세기 일부 학자들이 '사무라이 정신이 사쿠라와 비슷하다'는 글을 쓴 뒤에는 더 심해졌다.

짧게 피고 사라지는 것이 주군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는 사무라이와 비슷하다는 논리다. 이것이 메이지시대를 거치면서 군국주의와 연결된다. 그래서 일본의 군대나 경찰에서는 사쿠라가 자기 희생을 뜻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한국 벚꽃의 부활

미국 워싱턴기념관 근처에 있는 벚나무. 일본 정부가 선물한 것이다. / AFP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벚꽃이 기분이 좋기만 하지 않은 원인이 된다. 한국을 강제 점거한 일본은 한국에 벚나무를 일부러 심었다. 일본 해군의 경우 진해에 벚나무를 심었다. 10만 그루라고 알려져 있다.

이게 크자 1920년대부터는 진해가 가장 유명한 벚꽃놀이 장소가 됐다.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거주지나 관청·학교 등에도 벚꽃을 심었다. 특히 일본인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벚나무를 잔뜩 심었다.

광복 이후 이 벚나무들은 벌채됐다. 기분이 좋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창경원의 벚나무는 1980년대 창경궁 복원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 진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60년대 한국의 벚나무가 부활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진해에 많이 있던 벚나무는 왕벚나무인데 이것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닌 제주도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진해시는 이후 다시 묘목을 구해서 벚나무를 심었다. 진해시는 1962년부터 시내 전역에 벚나무를 심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34만7561그루가 있다고 밝혔다. 심는 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다. 이후 다른 곳에서도 축제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꼭 벚꽃이어야만 하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나무에 국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벚꽃은 분명히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무조건 배척도, 무조건 좋아하는 것도 곤란하다. 한국인에게 벚꽃은 아름답지만 아픈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사쿠라'의 이중성

도쿄 한 공원에서 사람들이 만개한 벚꽃을 즐기고 있다. / 로이터
재미있는 것은 벚꽃에 대해 일본인들도 약간은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어 '사쿠라'는 속어적인 의미로 '박수 치는 사람'이라는 뜻과 '바람잡이'라는 뜻이 있다.

극장에는 표 없이 들어가는 대신에 배우에게 박수를 쳐주고 소리를 질러 칭찬하는 사람을 사쿠라라고 한다. 노점상에서 손님인 척하고 다른 손님도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바람잡이도 사쿠라라고 한다.

한국에서 배신자나 첩자 같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군대나 경찰은 사쿠라를 좋아하지만 집안에서는 사쿠라를 가문의 상징으로 쓰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금방 꽃이 지는 것이 집안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