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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취업전쟁

[동서남북] 청년실업률 40% `플라멩코의 눈물` (조선닷컴 2010.05.12 00:10)

[동서남북] 청년실업률 40% '플라멩코의 눈물'

입력 : 2010.05.11 22:25 / 수정 : 2010.05.12 00:10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맙소사, 실업률 20%라니. 이런 상황으로 나라가 유지될까요?"

해외 뉴스를 들여다보던 증권 담당 후배가
스페인 뉴스에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財政)위기의 불씨가 스페인 등 다른 남유럽 국가들로 옮아붙지 않도록 EU(유럽연합)가 무려 7500억달러(약 1100조원)의 구제금융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유럽 5위 경제 대국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그리스의 네댓배여서 스페인발 재정 위기로 옮겨가면 그리스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은 재정 위기에 온통 시선이 쏠려 있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스페인 경제의 진짜 심각한 고민은 일자리에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지난 2년 새 실업률(失業率)이 치솟아 올 1분기 스페인 실업률은 20.05%였다. 청년 실업률은 40%를 뚫고 올라갔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실업자들 먹여 살리고 경제위기 수습하느라 재정 적자도 그리 심각해진 것이다.

글로벌 경제뉴스의 초점이 된 스페인을 보면서 예전에 취재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4년 반 전 '스페인이 어떻게 단숨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벽을 뚫었나' 하고 호(好)시절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취재하고 나서 '스페인 2만달러의 비결' 대신 기사의 초점을 '2만달러의 명암(明暗)'으로 바꿨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대'의 한국 기자 눈에 '소득 2만달러대'의 스페인이 그리 부럽지도 않았다. '성장의 질' '고용의 질'을 따져봤을 때 그랬다.

유럽의 변방이던 스페인은 1986년 EU(유럽연합) 가입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EU 지원금으로 인프라를 건설했고, 건설 붐, 내수 활황에 힘입어 1997년부터 '10년 호황'을 누렸다. 경제 규모는
한국의 1.7배쯤으로 커졌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500년 만에 '제2의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주택 거품이 꺼지면서 유럽의 대표적인 '건설 국가' 스페인의 화려한 시절도 사그라졌다. 1990년대 후반 20% 넘던 실업률을 한자릿수로 줄이는 데 성공했는데 이번 경제위기로 단 2년 만에 실업률이 도로 20%까지 치솟았다.

실업률이 빠르게 줄어든 비결도, 단기간에 로켓처럼 치솟아오른 이유도 그동안 성장기에 창출된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이민자·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건설 및 서비스 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노동인구의 30%가 직·간접적으로 건설산업과 연관돼 있어, 올 1분기 일자리가 줄어든 25만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건설 분야였다. 용역회사를 통해 몇개월 단위로 직장을 옮겨다니는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들도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업률 20%, 청년실업률 40%'의 스페인에 비하면, 한국은 '실업률 4.1%, 청년실업률 9.0%'로 수치는 양호하다. 하지만 고용의 질을 따져볼 때, 스페인의 고민을 남의 집 불 구경으로만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도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악화된 고용시장에서 한계에 내몰린 취약계층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향후 2년간 실업, 특히 청년 실업이 개선될 조짐은 어둡다"고 예상했다. 금융위기, 실물위기의 파고를 간신히 넘고 재정위기로 끙끙대는 세계 경제에, 더 큰 숙제인 고용위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