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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부 동 산

“20평이 몇 천만원 껑충, 말 되나” 전세난민들 아우성 (경향신문 2010.10.12 01:14)

“20평이 몇 천만원 껑충, 말 되나” 전세난민들 아우성

전세대란 르포… 속타는 서민들

경향신문 | 입력 2010.10.11 22:37 | 수정 2010.10.12 01:14 |

■ "없어요, 없어"
출퇴근 가능지역 물량 말라… 성남 복정동 부동산 손사래

11일 찾은 경기 성남시 복정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공인중개사는 "전세"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돌아보지도 않은 채 "없어요 없어. 다 나갔어요"라며 손을 내저었다. 중개업소 유리창에 붙은 전세 물건 안내 포스터는 한 장도 없다. 대신 '급매물' 매매 포스터가 유리창을 도배하고 있다. 다른 중개업소도 마찬가지다. 네 번째로 찾은 중개업소의 공인중개사 임모씨(54)는 "중·소형 평형은 전세대란이란 말이 딱 맞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복정
동부센트레빌 106㎡ 전세가격이 1억6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2억1000만원을 넘는다"며 "서울지역 전셋값이 하도 올라서 출퇴근이 가능한 이 지역 전세 물량이 말랐다"고 말했다.

이 지역 전세난은 가을철 결혼시즌을 맞으면서 더욱 심해졌다. 계약금을 걸어놓고 전셋집이 나오면 '총알택시' 타고 오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인근 태평동 지역은 2년 전 1억4000만원에 거래됐던 쌍용아파트 80㎡형의 전셋값이 이달 초 1억8000만원으로 4000만원 올랐다. 하지만 물건이 나온 지 3시간 만에 계약됐다고 한다. 한 부부는 중개업소에 들렀다가 발길을 돌렸다.

서울 방화동 길훈아파트 99㎡형 전셋값은 2008년 1억원 이하였지만 지금은 1억5000만~1억6000만원 사이에 거래된다. 50% 이상 뛴 셈이다. 박찬규씨(35)는 "전세 수요가 많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66㎡형이 올초보다 몇천만원씩 오르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격분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게 보통인데 뭘 그러느냐"면서 "대규모 입주물량이 들어온 곳을 빼면 오피스텔, 원룸, 투룸 가리지 않고 전셋값이 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덕동의 오피스텔인 메트로디오빌 66㎡형은 2년 전에 비해 4000만원 오른 1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1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내걸린 급매물 안내문이 최근 전세 가격 급등세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추석 이후 잦아들 것으로 예상됐던 전셋값 상승세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자고 나면 뛰는 전셋값 탓에 집 없는 서민들은 속만 바짝바짝 태운다. 결혼을 앞둔 홍관연씨는 신혼집 마련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직장이 여의도에 있어 신혼집을 영등포구 양평동의 한 아파트로 점 찍어 뒀는데, 전셋값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올들어서만 5000만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서씨는 "일년에 전셋값이 몇천만원씩 뛰는데 정부는 여전히 태평한 소리나 한다"며 "직접 집을 찾아 발품을 팔다보면 비명부터 나올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 외곽으로…
올들어 평년의 2~6배 상승률… 싼 집 찾아 발품 팔다 '비명'


치솟는 전셋값 때문에 외곽으로 내몰리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서울 봉천동에서 8년간 산 김경연씨(62) 가족은 결국 아차산 옆 중랑구 면목동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대학 타운인 봉천동은 그마나 원룸이 많아 여유가 있지만 전셋값 상승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관악구의 전셋값은 2년 전보다 9.4% 올랐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후 부인의 연금으로 살아온 김씨 가족에게 3000만원이나 오른 전셋값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11일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국과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각각 110.1과 112.6으로 2년 전인 2008년 말에 비해 10% 남짓 올랐다. 특히 올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5.3%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간 전셋값 상승률이 1∼2%였던 2007년(1.9%)과 2008년(0.8%)보다 2∼6배가량 높은 상승률이다. 봄·가을 이사철 전셋값이 급등해 시끄러웠던 지난해(4.5%)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 정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2년 전 보증금을 갖고 전세를 얻으려면 기대수준을 낮춰야 집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집계한 10월 첫째주 서울의 전세가 변동률은 0.19%다. 8월까지 주당 0.02~0.03% 수준에 머물렀던 상승률이 지난달 들어 0.1% 내외로 오른 데 이어 곧바로 상승률이 2배나 뛰었다.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과 대전의 9월 현재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19.1과 124.7이다. 2008년과 비교해 평균 20%가량 전셋값이 올랐다. 부산 화명동 대림쌍용아파트 86㎡형의 경우 2년 전 1억500만원 수준이던 전셋값이 지금은 1억6000만원이다. 우동 반도보라빌 96㎡형도 1억1000만원에서 1억6500만원으로 뛰었다. 대전 지족동 열매마을
대우아파트는 1억원 미만이던 아파트가 1억5500만원으로 뛰었다.

■ '보증부 월세' 확산
보증금 인상폭 줄이기 위해 일부 월세로 나눠 내기도


전셋값 급등으로 월세와 전세를 합치는 신풍속도가 등장했다. 실수요가 많은 66~99㎡형대의 경우 인상될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보증부 월세'가 유행이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돈이 없는 세입자들이 보증금 인상폭을 줄이기 위해 1000만~2000만원가량의 인상분을 깎아 월세로 나눠 내는 것"이라며 "집주인도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어 이 같은 방식을 마다하진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전셋값 상승은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점점 떨어지자 실수요자들이 임대 수요로 전환한 게 큰 이유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리서치실장은 "집값이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오를 가능성이 낮은 만큼 불확실한 '집테크'를 택하기보다 임대 수요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세주택 수급도 불안하다. 국민은행이 매달 전국 1만6000여개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전세수급동향'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응답이 83.5%로 나타났다. 이는 2001년 3월(94.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수도권의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인 '전세가율'은 지난달 45%로 전고점인 2006년 12월(45.9%) 수준에 도달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셋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매매 수요로 돌아설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여러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도 "차라리 소형 평형의 경우엔 집을 사라"고 권하지만 집을 구하는 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서울 하월곡동 중개업소에서 만난 윤보금씨(37)는 "시세보다 10% 이상 떨어진 급매물은 꽤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며 "하지만 그때마다 꾹 참는데, 마지막 폭탄을 우리에게 떠미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