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향적봉은 해발 1천614미터. 곤돌라를 이용하면 해발 1천525미터 설천봉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다. 관광객들이 두 발로 걷는 높이라고는 90미터가 전부. 도보로 20분이면 대한민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에 오르는 셈이다.
탑승장에는 곤돌라 100여 대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평소 한번 손대면 정신줄 놓고(?) 먹어대는 과자를 사서 곤돌라에 탔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미리 단풍을 보겠다고 왔으니, 예쁜 단풍 구경은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일까. 단풍은 우리 발밑에 놓여 있었다. 산 곳곳에 붉은 꽃송이가 피어 있었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층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의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멍하니 산세를 감상하다 설천봉에 내렸다. 지상에서 발을 뗀 지 딱 15분 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상 향적봉까지는 열심히 걷는 일뿐. 다행인 건, 사이사이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상제루와 구상나무다. 전자가 설천봉에 자리한 전통 정자라면, 후자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희귀 나무다. 모두 무협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독특한 모양이 공통점이랄까.
향적봉에 닿자 사람들은 저마다 인증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봉우리 돌에는 ‘덕유산 향적봉’이란 글자가 또렷했다. 고개를 돌리니 적상산, 마이산, 가야산, 무등산 등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역시 대한민국은 지천이 산인 나라다. 게다가 그 산들은 가을이면 꽃송이가 된다. 단풍 잔치가 벌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호젓한 감상에 빠졌을 때 방금 올라온 듯한 아줌마 무리가 “세상 참 붉다!”면서 야단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 마디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참, 그런데 덕유산이 어느 쪽이지?” 갑자기 입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성질 같아서는 “아유, 여기가 덕유산 정상이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한껏 오른 아줌마들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단풍이 곱다면야 여기가 덕유산이어도, 지리산이어도 상관없었다.
Tour Info. 위치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43-15 곤돌라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금·토요일은 오후 4시 30분까지) 요금 어른 1만2천 원, 어린이 9천 원 문의 063-320-7381(muju res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