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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기자들 피곤에 지쳐있다” (중앙일보 2010.12.30 13:33)

드라마 연기자들 피곤에 지쳐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0.12.30 00:30 / 수정 2010.12.30 13:33

드라마 ‘아테나’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정우성

‘아테나’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정우성. “시청자의 기대가 커서 준비를 많이 했다.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 같다”고 했다. [프리랜서 차민정]
올해 서른일곱의 정우성. 스무 살 청춘의 아이콘이 사라진 자리에 반듯한 생각에 할말을 하는 배우가 서 있었다. 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촬영장에서 든 느낌이다. 살짝 비치는 눈가 주름만큼 깊어진 눈빛의 그를 만난 건 28일 경기도 안성 동아방송예술대학 종합촬영소. 제작비 18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드라마답게 국가대테러정보국(NTS) 세트가 첨단 기술장비로 번쩍였다.

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현장을 찾아 출연자·제작진과 간담회를 열었다. 고충을 묻는 질문에 정우성은 기다렸단 듯이 ‘촬영 허가제’를 요청했다. “외부 촬영 때 행인통제부터 취객 대응까지 제작진이 하고 있는데, 허가제 하에서 경찰의 보호·관리를 받으면 제작진의 노고도 줄고 촬영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했다. 부드러운 이미지와 달리 단호한 어조였다. 간담회 후 따로 만났을 때 정우성은 “해외촬영 다니면서 비교됐던 점을 이번 기회에 얘기했을 뿐”이라고 했다.

 -요즘 드라마 제작관행에 대한 쓴소리로 들렸다.

 “한국 드라마가 잘 나가는 이면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안전사고 측면에서도 이런 식이면 안 된다. 얼마 전 고현정 선배가 ‘한국 드라마도 매주 한 회만 방송했으면 한다’고 했는데, 공감한다. 피곤에 쌓여 연기하는 게 화면에 보일 정도다. 방송사나 제작사나 수익만 생각 말고 제작 환경의 문제점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드라마 복귀가 14년 만이다. (1996년 ‘1.5’ 이후 처음). 달라진 것을 느끼나.

 “사실 ‘아테나’를 택한 가장 큰 이유가 영화제작과 동일한 시스템이라서였다. 6~7개월 전부터 사전 촬영했고, 드라마란 생각을 안 하고 찍고 있어 요즘 드라마 환경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 앞으로 분량에 쫓기면 ‘아, 드라마가 이런 거지’ 새삼 느끼겠지. 영화는 1년에 한편이 고작이니까 팬들이 갈증을 느끼더라. 4~5년 전부터 드라마를 해야겠다 물색하다 이번에 합류했다.”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아테나’는 지난해 최고 시청률 35.9%(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한 ‘아이리스’의 스핀오프(번외편) 격이다. NTS 요원 이정우(정우성)와 이중스파이 윤혜인(수애)의 엇갈린 사랑을 주축으로 한국 신형 원자로 개발을 저지하려는 음모세력과의 대결을 그린다. 첫 회 22.8%로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6회 방송분은 18.6%로 주춤하다.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 이병헌의 ‘아이리스’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보시는 분들이야 두 배우가 어떤 매력을 발산하나 비교하겠지만, 캐릭터 상으론 비교가 안 된다. 이병헌의 김현준은 국가와 동료에게 배신 당한 아픔을 초반부터 세게 밀어붙였다. 반면 정우는 좌충우돌 루키에다 혼자서 ‘혜인앓이’를 하는 상태다. 사실 처음엔 NTS 요원이니까 댄디하면서도 이해력이 빠르고 사고 대처 능력이 뛰어나겠지 했다. 2회 이탈리아 첩보 작전 장면에서 보인 007 같은 인물. 그런데 꿈이었다(웃음). 대본 받고 허걱 했다. 솔직히 지금 입장에선 이병헌 캐릭터가 부럽다. 나도 언제 폭발하나 답답하다.” (웃음)

이중스파이 수애(왼쪽)와 그녀를 연모하는 정우성.
 -5회에서 혜인의 의도적 접근이 드러나는 등 전개가 빨라졌다.

 “시청자분들도 언제쯤 정우가 주도하나 기대가 클 것이다. 지금은 반전의 밑그림을 까는 단계다. ‘혜인앓이’를 답답하게 해야지 반전도 클 거니까, 고진감래라 생각한다.”

 1994년 데뷔한 정우성이 맡은 역할은 대체로 ‘독한’ 캐릭터가 없다. 대중에겐 ‘비트’ ‘태양은 없다’의 청춘물이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호우시절’ 같은 멜로물로 기억된다. 순애보를 품은 NTS 요원 정우와 관련, “멜로 이미지를 배반하기 싫은 건가”란 질문에 그는 “그 동안 해 온 게 능동적이진 않지만 관념에 대한 반항, 탈출 욕구는 센 인물들이었다”고 했다. 다만 캐릭터를 택할 때 신념이 강하고 바른 역할을 선호한다고. 그러면서 영화 ‘비트’ 시절 얘기를 꺼냈다.

 “당시 팬들 말이 ‘형 따라서 오토바이 타다가 다쳤어요’ ‘저도 말보로 피워요’ 이런 식이더라. 내 캐릭터가 멋있어서 자극적인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다. 한번은 밀양 뒷골목에서 촬영하다 담배를 피는데, 지켜보던 학생들이 ‘와 멋있다’ 이랬다. 정말 내 손가락이 부끄러웠다. 앞으로도 악역은 할 생각이 없다. 악이 강렬하고 자극적일 순 있지만 멋스럽게 보여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인들도, 수익·성장 이런 것만 관심 가질 게 아니라 영화가 아이들과 대중에 어떤 영향 끼치는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본인이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연출·제작에 늘 관심이 많고 준비를 하고 있다. 배우가 이런 말도 하나 싶겠지만, 결국 내가 앞으로 해나갈 환경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지 않나.”

 -벌써 30대 후반이다. 그런데도 풋풋한 주인공을 연기하는 비결이 뭔가.

 “내 또래 남자배우들의 행운 아닐까. 예전엔 이 나이 되면 아저씨 역할 외엔 할 게 없었는데, 요즘은 영화도 드라마도 역할이 다양해졌다. 영상 산업이 발전하고 한류 붐이 일면서 그 혜택을 받은 것 같다. 후배들에 처지지 않으려고 몸 관리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한다. 그런데 관리 안 하면 살이 오르는 걸 보니,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