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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연 예 가

허안나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단 1퍼센트도 없어요. (레이디경향 2011년 3월호)

세레나 허, 허안나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단 1퍼센트도 없어요. 더 망가지고 싶어요”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던 그녀를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전혀 몰라 봤다. 이렇게 청순한 미녀가 ‘세레나 허’라니 믿기지 않았다. KBS-2TV ‘개그콘서트’에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전직 에로배우 출신의 가수 지망생 캐릭터로 온갖 느끼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개그우먼 허안나, 무대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인기는 많아도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개그우먼

KBS-2TV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슈퍼스타 KBS’를 시청하다 보면 웬 여자가 시뻘건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 몸을 흐느적거리며 신음소리 섞인 노래를 불러댄다. 온 가족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기도 하지만 막상 야할 것만 같았던 여자의 모습은 점점 우스꽝스럽게 변해간다. 폭소를 터뜨리던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고 싶어진다. 어떤 노래를 들어도 그녀의 스타일로 자동 변환되는 바람에 자꾸만 웃음이 난다.

전직 에로배우 출신의 가수 지망생 캐릭터, ‘세레나 허’로 활약하고 있는 개그우먼 허안나(27)는 요즘 자신의 패러디 영상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뿌듯하다. 이 정도로 큰 호응을 얻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개그우먼이 됐고, 그 꿈은 생각보다 일찍, 데뷔 2년여 만에 이뤄졌다. 하지만 막상 길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나름 유명세를 얻고 스타가 됐지만 사인 요청이나
사진 촬영을 부탁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저를 아예 못 알아봐요. 무대에서는 짙은
화장에 화려한 캐릭터이지만 원래 저는 정말 수수하거든요. 구두도 다리가 아파서 못 신고,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어야 하는 날에는 운동화를 따로 챙겨야 할 정도니까요.”

개그계 동료들은 그녀의 얼굴 근육이 일반인에 비해 70배 정도 더 발달해 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허안나가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 모두 평소 그녀의 얼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코믹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유자재로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개그우먼의 길을 선택한 그녀에게 큰 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몰라봐도 괜찮아요.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감사하죠. 그만큼 제가 개그우먼으로서 제 몫을 잘해내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무대 위에서 웃기면 됐죠.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못 알아보고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TV를 통해 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쁜 줄로만 알았던 딸의 혼삿길이 막힐까봐 한숨을 쉬는 일도 늘었다.

“엄마가 무척 놀라셨대요. 당신 딸이 그렇게 못생긴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구에게 시집가겠냐고, 시집은 다 갔다고 하시기에 저는 개그우먼이니까 괜찮다고 했죠. 그래도 요즘 엄마가 해주시는 반찬이 좀 달라지긴 했어요(웃음).”

섹시한 양호 선생님으로 출발한 ‘세레나 허’

허안나의 ‘세레나 허’ 캐릭터는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다듬어온 개그 아이템이었다. 개그우먼 지망생이던 시절 대학로 무대에서 섹시한 양호 선생님으로 출연한 경험을 되살려 각색한 것이 지금의 ‘세레나 허’다.

“제가 개그 하기에는 좀 평범한 외모잖아요. 그래서 이 얼굴로 어떤 연기를 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냥 무작정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 관객들은 ‘어우~’ 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섹시하고 도도해 보이면서 크게 망가지는 캐릭터였어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대학로 무대가 아닌 방송 무대에서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전 연령대가 시청하는 주말 저녁 시간대에 선보이기에는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위를 낮추고, 또 낮춰서 탄생한 것이 ‘세레나 허’다.

섹시한 신음소리 때문인지 네티즌은 허안나가 ‘야동’을 틈틈이 챙겨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안 본 건 아니다”며 부정하지 않았다. 성인이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고, 그것 또한 개그우먼으로서 폭넓은 연기를 펼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세상의 어떤 경험도 두고 보면 모두 득이 된다는 것이 그녀의 인생철학이다.

“이 세상에 야한 동영상을 한 번도 안 본 성인이 어디 있겠어요? 다들 ‘세레나 허’를 보고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에 웃는 거예요(웃음). 물론 제가 야동을 보고 ‘세레나 허’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지만 예전에 봤던 영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라 개그 소재로 만들게 됐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혹시 이 말 때문에 ‘허안나, 야한 동영상 챙겨 본다’는 기사 뜨는 것은 아니죠?(웃음)”

캐릭터를 기획하고 연기하는 것이 마냥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전직 에로배우라는 컨셉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고충도 따랐다. 평소 몸에 딱 맞는 티셔츠도 잘 입지 않는데 미니
원피스를 입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고 생각하니 막막한데다, 몸매도 자신이 없어 타이트한 의상을 입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제 허벅지가 좀 통통해요. 비욘세 언니를 닮았죠(웃음). 그래서 짧은 치마는 중학교 때 이후로 거의 입어본 적이 없고요. 게다가 원피스 위에 걸치는 빨간 깃털의 목도리는 털이 너무 자주 빠져요. 대기실에서 제가 지나간 곳에는 항상 빨간 깃털이 떨어져 있을 정도예요. 가끔 가방이나 신발 등에도 들어가 있어서 깜짝 놀라요. 저번에는
겨드랑이에 피가 나는 줄 알고 자세히 살펴봤더니 깃털이 끼어 있더라고요.”

무대 위 분장과 의상은 그녀가 혼자서 직접 준비할 때가 많다. ‘개그콘서트’에 오르는 선후배 동료들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에 KBS 분장팀과 의상팀이 모두 일일이 챙겨줄 수 없는 실정이다.

“화장은 솔직히 예쁘게 해요. 사람들은 ‘분장을 해서 그렇게 못생겨 보이는 거죠?’라고 묻는데 절대 아니에요.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정말 공들여서 열심히 해요. 그 후에 점을 찍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요. 그렇게 하고 있을 때는 좀 섹시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화면으로 보면 제가 봐도 못생겼어요(웃음).”


정식 데뷔는 ‘만취녀’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

허안나가 시청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세레나 허’ 이전에 출연했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 때부터였다. 2009년 KBS 공채 개그우먼으로 뽑힌 뒤 첫 작품이었던 그 코너에서 그녀는 술에 잔뜩 취해 횡설수설하는 ‘만취녀’로 등장해 큰 웃음을 선사했다. 첫 스타트가 매우 좋았다.

“정말 운이 좋았죠. 저 혼자였다면 잘되지 못했을 거예요. 박성광 선배와 이광섭 선배가 같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인기가 올라갈수록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도 막상 밖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잘 못 알아봤어요.

‘만취녀’라는 설정 때문에 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고 볼터치 화장을 과하게 한 채로 무대에 섰으니까요. 박성광 선배랑 다니면 사람들이 저를 스타일리스트로 보더라고요.”

‘만취녀’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는 실제 그녀의 어머니를 많이 따라 했다고 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좀 특이해요. 굉장히 애교가 많은 말투거든요.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도 애교를 부리며 물건 값을 깎곤 하세요. 그러면 저는 ‘엄마, 부끄러워~’ 하며 이미 50m 정도 떨어져 있죠. 물론 엄마의 그런 점이 좀 부럽기는 해요. 저는 물건값 천원을 깎는 데도 고생하거든요. 역시 엄마는 대단한 존재예요.”

하지만 허안나의 친구들은 이 대목에서 고개를 젓는다고 한다. ‘만취녀’ 캐릭터는 허안나의 실제 모습이라는 것. 한번은 술에 취한 허안나의 모습을 친구들이 동영상으로 찍어둔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신이 술에 잔뜩 취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지만 다음날 친구의 휴대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만취녀’ 캐릭터 그대로였다고 한다.

“저, 술 좋아해요. 4, 5년 전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소주 1병 반 정도 마셔요. 만취한 경험도 당연히 있죠. 요즘에도 가끔 만취하지만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니까 좋아요. 부담 없잖아요. 그런데 친구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가관이더라고요. 저도 제가 술에 취하면 그런 모습일 줄은 몰랐어요.”

무대 위 모습이야 어찌됐든 실물은 어느 여배우 못지않게 청순하고 예쁜 허안나. 그러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의 ‘만취녀’와 ‘슈퍼스타 KBS’의 ‘세레나 허’ 모두 그녀의 미모를 철저하게 가리는 캐릭터다. 이렇게 괜찮은 외모로 자꾸만 망가지는 것이 내심 속상하지는 않을까. 그녀를 바라보는 기자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정작 본인의 속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경쾌했다.

“화면에 예뻐 보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개그콘서트’에서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어요. 웃기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은 아예 없어요. 개그우먼이니까 망가지는 건 당연한 거고요. 오히려 더 못 망가져서 안달이 났죠. 그리고 제 얼굴은 제가 봐도 예쁘거든요(웃음). 정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얼굴에는 자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무대에서 망가지는 것쯤이야 괜찮아요. 저 정말 학창 시절에도 예뻤다니까요(웃음).”

끼로 똘똘 뭉친 타고난 재능, 평생 웃기며 살고파
허안나는 일찍이 끼가 많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에 대해 묻자 스스로 ‘똘아이’였다고 대답하는 그녀다. 수학여행이나 학교 축제에서는 언제나 무대에 스스로 올라 개그를 선보였고 덕분에 전교생이 허안나의 존재를 알았다. 교실로 그녀를 구경하러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전혀 다른 새치름한 모습으로 예쁘게 앉아 있었다고.

“원래부터 활발하고 털털한 성격이었어요. 동네에서도 저를 모르면 간첩이었고요. 고등학교 때는 전철에서 교복을 입고 자다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언니가 깨워서 일어난 적이 있어요. 제가 다리를 너무 심하게 벌리고 자고 있었대요. 잠에서 깨보니 ‘학생, 다리 좀 오므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다이어리도 정리 잘하고, 뜨개질해서 목도리도 만들 줄 알아요. 제 안에는 남자와 여자의 성격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이후 동아방송대학교 연극
영화과에 진학한 허안나는 개그우먼을 준비하며 대학로 컬투쇼 무대에서 틈틈이 공연을 했다. 2008년에 MBC-TV 개그 프로그램 ‘개그야’로 첫 방송 신고식을 치렀고, 2009년에 KBS 공채 개그맨으로 뽑혀 정식 데뷔했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야 하고, 좋은 코너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허안나는 개그우먼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마음 놓고 망가질 수 있어서,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해요. 선후배 동료들도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이기에 더 힘이 나고요. 그래서인지 제 목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거예요. 제게 이곳은 무척 크고 대단한 무대거든요. 예능 프로그램 진출보다 이 무대에 계속 오르는 것이 개그우먼으로서 제 꿈이자 목표랍니다.”

개그우먼 허안나의 인생은 바로 지금부터다. 그동안 살아왔던 모든 시간이 기쁘고 즐거웠다고 한다. 절망적인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만한 큰 고비를 겪어보지는 못했다. 긍정의 힘으로 늘 웃으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행여나 시련의 순간을 만나게 되더라도 허안나는 끄떡없이 이겨낼 것만 같다.

“제가 엄청 낙천적이거든요. 살아온 인생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늘 만족하며 지내온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 힘든 일도 있겠죠. 하지만 힘든 순간 뒤에 오는 행복한 시간이 더 달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다 감사하게 느껴질 거고요. 그래서 제게 삶의 매 순간은 늘 기뻐요. 사람들이 모두 저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개그우먼 인생의 롤모델로는 심형래를 꼽았다. 영구 캐릭터가 세월에 바래지 않고 끊임없이 회자되듯이, 자신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되고 싶어서라고 한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가 되더라도 무대에서 웃길 수 있는 희극인으로 살겠다는 허안나는 얼굴보다 마음이 더 매력적인, 타고난 개그우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