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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강인선 LIVE ①] "국민은 호랑이… 사육사가 아무리 잘해줘도 언제 물지 모른다" (조선일보 2015.01.24 02:59)

[Why] [강인선 LIVE ①] "국민은 호랑이… 사육사가 아무리 잘해줘도 언제 물지 모른다"

만화 일대기 '불꽃' 펴내는 김종필 前자민련 총재
"나이 90이 되어 가만히 생각해보니(年九十而知八十九非) 다 헛산 거구나 싶다"

'호랑이' 모르는 정치인들
더 겸손하게, 더 겸허하게 자기를 버리면서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회고록은 안 쓸 것"
뭐 좀 했다는 사람들 혼자 자랑하기 일색
같은 취급 받는 게 싫어… 老兵은 조용히 사라질 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연설하듯 말했다. 그는 나이 90이 되고 보니 “내가 뭘 남겨놨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한탄만 나온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책은 평생의 벗이다. 요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역사물과 전기를 자주 읽는다.
/이태경 기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계속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연설하듯 말했다. 그는 나이 90이 되고 보니 “내가 뭘 남겨놨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한탄만 나온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책은 평생의 벗이다. 요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역사물과 전기를 자주 읽는다. /이태경 기자

 

올해 구순(九旬·90세)을 맞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 만화책이 나온다. 제목은 '불꽃', '현대사에 바람을 몰고 온 사나이 김종필 만화 일대기'란 부제가 달렸다. 김 전 총재는 회고록 같은 건 쓰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만화책을 내는 데는 동의했다고 한다. 김 총재의 구술에 황선우 산학연종합센터 소장 등 측근들이 정리한 자료와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화가 김형태씨가 그렸다.

3월 출간을 앞두고 21일 남산의 한 호텔 식당에서 김 전 총재를 만났다. 그는 검은 외투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짙은 갈색 렌즈 안경 너머로 보이는 표정은 밝았다. "감기로 한 열흘 고생했다고." 그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감기는 거의 다 나은 듯했지만 여전히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왜 회고록을 쓰지 않고 만화 일대기를 냈나.

"만화로 내 일대기가 제대로 표현될까. 내 첫사랑 얘기로 영화를 만들면 돈 벌 거다. 좋아했지만 헤어졌고 헤어져서는 (그 사람이) 불행했거든. 그 사람이 암에 걸려서 인생 끝에 가서야 재회했지."

―첫사랑과 언제 재회했나.

"총리 되고 다음 해니까 1972년쯤일거다. 서울시장이 '아주 모범적인 여자 통장(統長)이 있는데 총리가 표창장과 금일봉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여자가 총리실에 들어서는데, 아, 바로 그 사람이더라. 그쪽에선 나에 대한 보도를 보니까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 사람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상을 주고 나서 물었다. '행복하냐'고. 그 말을 듣더니 그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불행한가 보다 싶었다. 그리곤 석 달 만에 암으로 죽었다고 하더라."

―마음이 아팠겠다.

"슬펐냐고? 유쾌하진 않지. 인생이 가지각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의사였는데 전쟁통에 군대에 끌려간 후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딸도 얼마 후 죽었다고 한다. 아주 불행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날 보고 울음을 터뜨렸겠지."

"회고록 쓰지 않고 그냥 가겠다"

김 전 총재는 스스로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근대화와 민주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5·16의 기획자였고 중앙정보부를 만들었으며 공화당을 창당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의 막후 해결사이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길게는 1970년대 이후, 짧게는 1987년 대선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3김(金) 시대의 한 축이었다. 1987년엔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연합 등을 통해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늘 2인자였다. 2004년 정계 은퇴를 하기까지 43년 정계에 몸담는 동안 9선 의원이었고 국무총리를 두 번 지냈다. 그는 현대사의 주요 고비를 헤쳐오면서 한 시대의 풍운아이자, 변신과 처세의 달인이란 평을 동시에 듣는다.

―본격적인 회고록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회고록? 그런 거 써서 뭐 하나.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거다. 그러나 다 얘기할 수는 없다. 뭐든지 다 주면 재미없다. 뭔가 의문이 남아야 하는 거다."

―회고록을 안 쓰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여러 사람이 쓴 회고록을 다 읽어봤다. 특히 장관 지냈다, 뭐 좀 했다는 사람들이 쓴 회고록을 보면 자기 혼자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에이, 거기 껴서 회고록 쓰면 나도 같은 취급 받을 텐데 그건 싫다. 차라리 그냥 가는 게 낫지.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장군이 한 얘기다. 지금 내가 그렇다."

―요즘도 책을 많이 읽나.

"책이 내 벗이다. 전기, 위인전, 역사물, 이런 걸 좋아한다. 요새는 옛날에 읽은 걸 서고에서 꺼내 다시 읽어보는데 재미있다."

―올해 구순(九旬)이다. 꼭 하고 싶었는데 못 해본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죽으면 집사람과 같이 누울 묘소를 고향 부여에 미리 만들어놨다. 묘비명도 만들었다. 내 인생철학은 '사무사(思無邪)'다. 허튼 생각은 일절 안 한다. 욕심부리지 않는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항산이 경제력이고, 항심이 민주주의다. 5·16 이후에 경제개발에 최선을 다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금년에 내가 90인데, 90에 겨우 알게 된 거다. 여러 사람이 많은 것을 묻지만 소이부답(笑而不答),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묘비에 그렇게 써놨다. 나를 평생 조용히 내조해주던 반려가 고마운데, 영세(永世)의 반려로서, 끝없는 세상의 반려로서 이곳에 누웠노라고 썼다. 국회 서도(書道) 선생이기도 한 고강 선생이 비명을 써줬다."


	김종필 전 총재의 일대기를 담은 ‘불꽃-현대사에 바람을 몰고 온 사나이 김종필 만화 일대기’의 한 페이지.
김종필 전 총재의 일대기를 담은 ‘불꽃-현대사에 바람을 몰고 온 사나이 김종필 만화 일대기’의 한 페이지.

―미리 만들어 둔 묘비명에 쓰인 '연구십이지팔십구비(年九十而知八十九非)'는 어떤 의미인가.

"나이 90이 되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 헛산 거구나, 그런 뜻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진짜 그렇다. 미국에서 뭐 좀 생각하는 사람, 일본에서 뭐 좀 생각하는 사람도 '내가 뭘 남겼다는 말이냐' 그러면서 죽는 사람이 많다. 젊어선 잘 몰랐는데 이제 졸수(卒壽·90세)가 되니까 알겠다. 졸수라는 게 이제 인생 졸업한다는 뜻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뭘 남겨놨단 말인가. 한탄밖에 안 나온다. 그것도 묘비에 써놨다. 내가 죽어 묻히거든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한번 산책하러 와봐라. 그럼 '이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한탄하면서 누워 있구나' 할 거다."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이 새겨진 비석이다. 김 전 총재는 고향인 충청남도 부여에 부인과 함께 묻힐 자리를 마련해뒀다.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이 새겨진 비석이다. 김 전 총재는 고향인 충청남도 부여에 부인과 함께 묻힐 자리를 마련해뒀다. /산학연종합센터 제공

“내가 대통령 됐다면 더 못했겠지?”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그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소통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진짜 소통 안 되나? 내 보기에 박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엔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지지율이 떨어질까.

“국민이 호랑이라 그런 거다.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물고 늘어지는 게 호랑이다. 열심히 하는 대통령에게 왜 지지율을 30%밖에 안 주느냐고 국민 탓해봤자 소용없다. 그게 국민이니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상당 기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건 잘해달라는 기대다. 날이 갈수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 왜 그러느냐. 그걸 묻는 게 바보다. 그런 게 국민이다.”

―2년 전 미수(米壽) 때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뭐가 가장 아쉬운가.

“뭔가 한 거 같은데 제대로 한 게 뭔가 싶다. 한탄스럽고, 후회스럽고, 국민에게 죄송하고, 그런 느낌뿐이다.”

―뭐가 그렇게 후회가 되나.

“조금 더 자유롭고 좀 더 민주적으로 자기 희망대로 살 수 있는 기반이 국민을 위해 다져졌으면 해서 혁명도 하고 했는데 미흡하니까 아쉽다. 미안하고 그런 감정이다. 더 잘했었으면 하지만, 내 능력껏 한 것이니까.”

―뭘 더 했으면 더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는 결과다. 국민이 지금보다 더 윤택하고 자유롭고 희망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굳혔으면 더 잘했다고 했겠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는 거다.”

―만일 김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됐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더 못했겠지? 하하하…. 남 하는 거 비평하는 건 쉽다. 자기가 해보라고 해. 더 못한다고. 그런 거다.”

―대통령이 됐다면 이건 꼭 했을 텐데 하는 게 있나.

“솔직히 얘기해서 나는 대통령 하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두 번 대통령에 입후보는 했다. 그건 당을 만들고 정치를 계속 하려니까 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잘 도와서 대과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밑에서 도와 드리자는 게 내 정치 철학이었고, 그대로 했다.”

―하지만 1979년 10·26 직후처럼 대통령이 될 뻔한 기회도 있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난 아니었다. 그때도 난 원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 비해 권력 의지가 약한 것일까.

“대통령 하면 뭐 하나. 역대 대통령을 잘 봐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나대로 그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만 안 한다. 지난 일이니까. 다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할 텐데 내가 뭐라고 평을 하겠나. 수고들 했다고 생각하지. 그건 역사가 평가하는 거다. 국민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 평가한다.”

―‘영원한 2인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내가 그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2인자였던 노태우에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2인자로서의 처신’에 대해 조언하지 않았나.

“이왕에 일을 벌였으니 잘하라는 뜻이었다. 잘하려면 전두환과 사이가 벌어지면 안 된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 다음 사람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 나는 나라를 위해 그런 말을 한 거지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위해서 한 게 아니다. 절대 권력자는 예외 없이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내부에 대립을 일으켜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둘째 놈을 못살게 군다. 전두환 성격을 보니 그럴 것 같아서 둘이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다.”

 

 

[Why] [강인선 LIVE ②] 호강 못 시켜줘 아내에게 미안하다

 (조선일보 2015.01.24 02:58)

만화에 등장한 첫사랑
대학 때 소식 끊긴 그녀 총리된 다음해에
모범적 여자 통장이라며 집무실로 표창 받으러 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휠체어에 탄 채 최근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한 부인박영옥 여사를 간병하고 있다/ 정진석 전 의원 페이스북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휠체어에 탄 채 최근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한 부인박영옥 여사를 간병하고 있다/ 정진석 전 의원 페이스북

―‘끝없는 세상의 반려’라고 한 박영옥 여사가 요즘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다.

“병원에 있다. 간호사들이 참 열심히 돌봐준다. 미안한 일이 많다. 호강 못 시켜준 게 제일 미안하다. 전시(戰時)였고, 5·16혁명이 있었고. 젊어서는 예뻤지. 그런데 내가 고생시켜서….”

김 전 총재는 19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박상희의 딸과 결혼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

“1950년 전쟁 중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 바쁘지 않으면 나랑 얘기 좀 할까?’ 하더라. 무슨 얘기 하려나 하고 따라갔더니, ‘내 조카딸 봤지? 어때?’ 하길래 ‘아하, 나한테 주려는 모양이다’ 했다.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야, 좀 데려갈 수 없어?’ 하더라. ‘본인이 좋다고 하면 나는 좋습니다’ 했더니 ‘본인이 좋대’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의장/ 조선일보DB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의장/ 조선일보DB

박정희 대통령의 결혼 선물
전쟁 중이라 못 간다면서 소 한 마리 보내 와
그 소로 사흘 동안 잔치 그래도 고기가 남았다


―결혼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황소 한 마리를 선물로 줬다고 하던데.

“결혼식날 저녁에 밖이 시끄러워 나가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소 한 마리를 보냈다. 편지에는 ‘내가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전쟁 중에) 싸우느라 도저히 못 가니 소 한 마리를 보낸다’고 쓰여 있었다. 그게 1951년 2월 15일이다. 그 소로 사흘간 잔치를 하고도 고기가 남았다.”

김 전 총재는 이날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좌진들은 “요즘 식욕이 없으신지 잘 안 드셔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신 박 여사를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줄 거라면서 빵과 간식을 챙겼다. 김 전 총재는 2008년 12월 뇌졸중을 겪은 후 계속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 가장 규칙적인 일과는 두 개 병원에 차례로 들르는 것이다. 오후에 서울 아산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고 순천향병원에 가서 부인을 돌본다.

“국민을 호랑이로 알아라”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정의했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실업(實業)이라고 한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씨를 뿌리고 수확으로 보수를 받지 않나. 정치는 보수가 없다. 잘한 일은 국민들이 나눠 가지니까. 정치인으로서는 일종의 허업 아니냐는 뜻으로 한 얘기다.”

―정치인은 보수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인가.

“남는 게 있으면 국민이 나눠 갖는 것이다.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이다. 정치인이 자기가 잘해서 나라가 잘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트루먼 기념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해본 사람으로서 작은 나라에서 봉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들려줄 교훈이 많을 테니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교훈은 무슨 교훈이냐고 한참 웃더니, ‘국민을 호랑이로 알라, 맹수로 알라’고 했다.”

―국민을 무섭게 생각하라는 뜻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좀 해놓으면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사육사가 여름에 더울까 봐 물 끼얹어주고 배고플까 고깃덩어리 주고, 아무리 잘해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맹수다. 사육사는 내가 사랑하고 돌봐주니까 호랑이가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기가 뭘 좀 했다고 해서 국민이 아주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다. 왜? 호랑이는 아무리 사육사라 해도 자기 발을 밟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왕 하고 물어버린다. 그게 국민이다. 내가 국민을 위해서 이렇게 했으니 날 알아주겠지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미련한 거다.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트루먼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 죽이는 호랑이처럼 국민도 대통령과 정치인을 쫓아낸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 정치인은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국회에 정치하는 사람 많지만 국민을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을 그렇게 무서워했으면 지금처럼 되지도 않는 일을 저렇게 할 리가 없다. 정치인은 더 겸허하게, 더 노력해야 한다. 자기를 버리면서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인다.”



 

[Why] [강인선 LIVE ③] "내가 대통령 됐다면 더 못했겠지?"

(조선일보 2015.01.24 02:58)

정치는 虛業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 보수를 바라서는 안 돼
그들이 잘하면 국민들이 나눠 가지게 돼

 



	지난 2007년 5월 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5.16 민족상 수상식/ 조선일보DB
지난 2007년 5월 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5.16 민족상 수상식/ 조선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그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소통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진짜 소통 안 되나? 내 보기에 박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엔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지지율이 떨어질까.

“국민이 호랑이라 그런 거다.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물고 늘어지는 게 호랑이다. 열심히 하는 대통령에게 왜 지지율을 30%밖에 안 주느냐고 국민 탓해봤자 소용없다. 그게 국민이니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상당 기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건 잘해달라는 기대다. 날이 갈수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국민은 간단하게 뜨거워지고 간단하게 차가워진다. 왜 그러느냐. 그걸 묻는 게 바보다. 그런 게 국민이다.”

―2년 전 미수(米壽) 때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뭐가 가장 아쉬운가.

“뭔가 한 거 같은데 제대로 한 게 뭔가 싶다. 한탄스럽고, 후회스럽고, 국민에게 죄송하고, 그런 느낌뿐이다.”

―뭐가 그렇게 후회가 되나.

“조금 더 자유롭고 좀 더 민주적으로 자기 희망대로 살 수 있는 기반이 국민을 위해 다져졌으면 해서 혁명도 하고 했는데 미흡하니까 아쉽다. 미안하고 그런 감정이다. 더 잘했었으면 하지만, 내 능력껏 한 것이니까.”

―뭘 더 했으면 더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치는 결과다. 국민이 지금보다 더 윤택하고 자유롭고 희망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굳혔으면 더 잘했다고 했겠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는 거다.”

―만일 김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됐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더 못했겠지? 하하하…. 남 하는 거 비평하는 건 쉽다. 자기가 해보라고 해. 더 못한다고. 그런 거다.”

―대통령이 됐다면 이건 꼭 했을 텐데 하는 게 있나.

“솔직히 얘기해서 나는 대통령 하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두 번 대통령에 입후보는 했다. 그건 당을 만들고 정치를 계속 하려니까 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잘 도와서 대과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밑에서 도와 드리자는 게 내 정치 철학이었고, 그대로 했다.”

―하지만 1979년 10·26 직후처럼 대통령이 될 뻔한 기회도 있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난 아니었다. 그때도 난 원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 비해 권력 의지가 약한 것일까.

“대통령 하면 뭐 하나. 역대 대통령을 잘 봐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나대로 그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만 안 한다. 지난 일이니까. 다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할 텐데 내가 뭐라고 평을 하겠나. 수고들 했다고 생각하지. 그건 역사가 평가하는 거다. 국민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 평가한다.”

―‘영원한 2인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내가 그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2인자였던 노태우에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2인자로서의 처신’에 대해 조언하지 않았나.

“이왕에 일을 벌였으니 잘하라는 뜻이었다. 잘하려면 전두환과 사이가 벌어지면 안 된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 다음 사람이 나오는 걸 싫어한다. 나는 나라를 위해 그런 말을 한 거지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위해서 한 게 아니다. 절대 권력자는 예외 없이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내부에 대립을 일으켜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해서, 둘째 놈을 못살게 군다. 전두환 성격을 보니 그럴 것 같아서 둘이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다.”


 

[Why] [강인선 LIVE ④]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내각 책임제로 바꿔야

(조선일보 2015.01.24 02:58)

 

―6·25 직전 육군 정보장교 시절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북한을 어떻게 보나. 조만간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보나.

“내가 믿는 바에 의하면 북한은 시간문제다.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모르지만 그 시간 안에 끝나는 거다. 북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걱정하는데 핵무기는 무용지물이다. 갖고 있어도 쓸 수 없다. 쓰면 망하니까. 그러니 핵 가지고 자꾸 떠들지 말고 어떻게 하면 10년에 끝날 북한을 7~8년 안에 끝나게 할지 그걸 현명하게 알아내서 자꾸 촉진시켜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만나자고 뛰어들지 말고. 정상회담,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다.”


	1970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 창설 9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역대 중앙정보부장들. 2대 부장을 지낸 고(故) 김재춘 전 의원이 맨 왼쪽에 서 있다. 그 옆으로 김용순(2대), 김종필(초대), 김형욱(4대), 김계원(5대)씨가 나란히 섰다/ 조선일보DB
1970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 창설 9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역대 중앙정보부장들. 2대 부장을 지낸 고(故) 김재춘 전 의원이 맨 왼쪽에 서 있다. 그 옆으로 김용순(2대), 김종필(초대), 김형욱(4대), 김계원(5대)씨가 나란히 섰다/ 조선일보DB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활 치료 받으면서 봄이 되면 골프 한번 쳐야 한다고 했는데.

“독일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골프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카트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견본이 하나 와 있다. 욕심이 나서 그걸 갖다 달라고 해서 한번 타보고 스윙도 해봤는데 괜찮았다. 그래서 독일에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집사람이 너무 아팠다. 다음 날로 부탁한 걸 취소했다. ‘마누라가 다 죽어가는데 골프 칠 생각을 하다니 나쁜 놈 같으니라고.’ 나 혼자 그렇게 뉘우치고 취소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조금 나아졌다. 골프장 나가고 싶지만 이젠 그것도 꿈에 그칠지 모른다.”

―내각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인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내각 책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정치의 가갸거겨의 ‘가’ 자를 알까 싶은 정치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내다보지도 못한다. 대통령 중임제, 부통령제, 이원집정제 등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나보고 얘기하라면 그건 다 쓸데없는 소리다. 과거에 있었던 심각한 일을 정치인들이 잘 모른다. 나는 대한민국의 산증인이다. 한 사람에게 전권을 주되 정당이 맡아서 정당의 지혜를 여과시켜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종필전총재의 집에 방문한 일본 모리 요시로 전수상/ 조선일보DB
김종필전총재의 집에 방문한 일본 모리 요시로 전수상/ 조선일보DB

―일본에서 아베 총리가 등장한 이후, 한·일 관계가 매우 경색돼 있다.

“아베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좋지. 하지만 이웃 나라 사람이 인기가 있다 없다 할 수 있나….”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 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답은 아마 그가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한 우회적인 설명일 수 있을 것이다.

―후세는 김종필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나.

“한·일 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일 때 내가 대학 돌아다니며 연설했다. ‘여러분은 한반도가 어디 있는지 알 거다. 지정학적으로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중국과 소련이 서부와 북부에 있다. 북쪽에서 센카쿠 열도까지 3000㎞는 일본이 막고 있다. 갇혀 있는 한반도는 어디로 나가야 하나. 북쪽이나 서쪽으로 못 가니 일본을 딛고 태평양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더라. 하지만 다 헛것이었다. 학생들이 그다음 날 다시 데모하러 나갔으니까. 내가 그걸 밀어붙이고, 기본적인 합의를 만들고 외교부에 넘겼다. 제2의 이완용, 매국노, 별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다. 난 매국노가 아니다.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합리적으로 나라를 만들려는 사람이다.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잘되라고 애를 쓰고 다닌 사람이다.”

김 전 총재의 만화 일대기 출판기념회는 3월 1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다. 그는 “남산에 있는 호텔에서 하면 지인들이 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을 골랐다고 한다.

 

 

"국민은 호랑이야, 맹수라고… 열번 잘해도 한번 못하면 물지"

 (조선일보 2015.01.24 02:56)

-김종필 前자민련 총재 인터뷰
90세, 만화 일대기 '불꽃' 펴내 "대통령 할 생각 한번도 안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구순(九旬)을 맞아 만화 일대기 '불꽃'을 펴낸다. 김 전 총재는 지난 21일 오는 3월 만화책 발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젊어서는 잘 몰랐지만 90세가 되면서부터는 살면서 제대로 한 게 뭔가 싶다"면서 "국민을 위해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다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국민에게 죄송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이 90이 되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 헛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탄밖에 안 나온다"고도 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21일 인터뷰하는 도중 마치 연설하는 듯한 자세로 손을 흔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21일 인터뷰하는 도중 마치 연설하는 듯한 자세로 손을 흔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 전 총재는 오는 3월 만화 일대기를 펴낸다. /이태경 기자
김 전 총재는 정치인들을 향해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라면서 "국민은 사육사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에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버리는 맹수 같은 존재"라고 했다. 대통령이 열심히 일해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국민이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물고 늘어지는 호랑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았던 김 전 총재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했다. "대통령에 출마한 일은 있지만 그건 당을 만들고 정치를 계속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잘 도와서 대과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밑에서 도와드리자는 게 내 정치 철학이었고,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는 따로 회고록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자신이 회고록을 쓰지 않는 심정과 같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묻고 싶은 부분이 많겠지만 의문이 남는 채로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


 

<18>苛斂誅求 가렴주구

가혹하게 재물을 거두거나 쥐어짜 빼앗다

[가혹할 가(艹/5) 거둘 렴(攵/13) 벨 주(言/6) 구할 구(氺/2)]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苛斂) 목을 벨 듯이 겁을 줘서 백성들의 재물을 쥐어짜는(誅求) 일을 말한다.  여러 명목 세금 가혹하게 억지로 거두어들여 백성 재물 무리하게 빼앗는 일. 苛斂誅求라고 할 때면 항상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예를 든다. 이야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말엽 孔子(공자, 기원전 551년-479년)의 고국 魯(노)나라가 조정의 대부 季孫子(계손자)의 횡포로 큰 혼란상태에 빠지자 孔子는 제자들을 이끌고 齊(제)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五岳(오악)중의 으뜸인 泰山(태산)을 지날 때 구슬픈 여인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가 보니 길가에 있는 세 구의 묘지 앞에서 소복한 여인이 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 子路(자로)가 가서 연유를 알아보니 시아버지, 남편, 아들이 이곳에서 모두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다는 애절한 사연을 말하면서 더욱 소리 높여 우는 것이다.

孔子가 그러면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기가 막혔다. “호랑이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 살면 가혹하게 뜯어가는 세금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孔子가 말씀하시길 “제자들아 잘 들어두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니라(苛政猛於虎).”

이 이야기는 禮(예)에 관한 경전을 주석한 ‘禮記(예기)’의 檀弓篇(단궁편)에 실려 있다. ‘詩經(시경)‘ 魏風(위풍)에 나오는 큰 쥐라는 뜻의 碩鼠(석서)도 苛斂誅求하는 위정자를 비유한 것이다.

위의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외에 ‘春香傳(춘향전)’에 나오는 어사출두 때의 시 구절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 금으로 만든 술항아리에 담긴 맛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이나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 먹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率獸食人(솔수식인)도 같은 뜻. 樽은 술통 준, 率은 비율 률 이지만 거느린다는 뜻일 땐 솔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