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타향살이’…세종때 간행 ‘자치통감강목’ 완질 중국서 발견
조선 세종 때 금속활자로 찍은 <자치통감강목> 완질(59책). |
500여년 전 금속활자로 찍은 역사책의 운명은 모질었다. 본디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토론하며 펴 보았을 터였지만, 임진왜란 뒤 책은 주인을 잃고 일본과 중국을 수백년 떠돌아야 했다.
15세기 조선 세종이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經筵)에서 쓰려고 금속활자로 찍은 중국 사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완질(59권 59책)이 최근 중국에서 발견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강탈해 갔다가, 근대기 중국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파란만장한 전래 경위도 눈길을 모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0월 상하이도서관과 푸단대도서관에 소장된 국내 옛 문서·책들을 조사하다 세종 2년(1420년) 제조한 구리활자 ‘경자자’(庚子字)로 찍은 <자치통감강목> 완질을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재단 쪽은 판본 사진을 공개하면서 “1428년 이전 조선에서 처음 간행한 <자치통감강목> 판본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완질로 보물급 이상의 문화재”라고 설명했다.
‘경연’ 장서인이 찍힌 책 서문. |
<자치통감강목>은 전국시대부터 5대10국까지를 다룬 중국 통사다. 11세기 북송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294권)을 12세기 주자학을 세운 남송 유학자 주희가 축약했다. 주자학을 숭상한 조선왕조는 이 책을 중시해 선초부터 수차례 금속활자로 판본을 펴냈는데, 발견된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 완질은 가장 이른 시기 찍은 것이다. 국내에도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호림박물관 등에 경자자판본이 있지만, 1~2책, 5책 등 일부만 남아 있다.
재단 쪽은 경자자판본에 찍힌 후대 소장자들의 다양한 인장(장서인)들을 통해, 이 완질이 세종 때 경연에 쓰였다가 왕실 외척인 청주 한씨, 남양 홍씨 집안에 들어갔으며,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왜군 약탈로 일본에 유출된 뒤 20세기 초 중국 장서가 쉬수(1890~1959)가 일본에서 수집해 기증한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위원인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세 나라를 떠돈 <자치통감강목>의 유랑사를 살피면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다시금 느꼈다”고 털어놨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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