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14 취업전쟁 보고서...서울대 문과생들의 눈물
“학점 3.7에 토익 910, 오픽(OPic) IH, 테셋(TESAT) 1급에 컨설팅회사 인턴 6개월, 작은 공모전이긴 하지만 입상 경험도 있다. 15군데 정도 서류를 냈는데 두 곳에 합격하고 그마저 인적성에서 다 탈락했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년)
“학점 3.9에 토익 960, 토스(토익스피킹) 8, 한국사 2급, 어학연수와 인턴 2개월 경험이 있다. 15~20군데 서류를 내서 3~4곳에 합격하고 그중 1곳과 면접 진행 중이다.”(서울대 사회학과 4년)
“학점 3.5에 텝스 900, 토플 112, 토스 8, 책을 쓴 경험이 있고, 6개월 배낭여행 경험이 있다. 10군데 정도 서류를 내서 모두 탈락했다.”(서울대 사회학과 2014년 2월 졸업생)
“경영학 복수전공 했고, 학점 3.7에 토익 960, 오픽 IH, JLPT N2급, 테셋 1급에 어학연수와 인턴 경험 있고 창업 경험도 있다. 20군데 정도 지원해 서류전형에서는 5군데 합격했는데 인적성 시험까지 4군데에서 떨어졌고 면접 진행 중인 곳은 한 곳이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년)
“학점 3.9에 토플 116, 토익 980, 오픽 NH, 미국 대학 교환학생 1년 경험 있고, 교환학생 당시 학생 경진대회에 나가 수상 경험이 있다. 15군데에 지원, 서류전형에서 세 곳은 통과했는데 결국 다 탈락했다. 서류심사를 하고 있는 두 군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연세대 경제학부 4년)
- 2014년 취업난은 명문대 출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한 사립대 도서관./조선일보DB
대학생의 취업 상황은 통계로 알 수 있다.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웹사이트(www.academyinfo.go.kr)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률은 54.8%. 2012년에는 55.6%, 2011년에는 56.1%였다.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4년제 대학졸업생 2명 중 1명은 취업에 실패한다는 얘기인데, 취업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취업률은 그보다도 낮다.
취업률 통계에는 대학원 진학자 등이 제외돼 있다. 대학원 진학생 중 일부는 ‘취업 유예기간’을 얻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실질 취업률은 조금 더 낮다. 게다가 취업률이 높은 전공과 그렇지 않은 전공이 확연히 다르다. 교육부의 ‘전국 4년제 대학정원 및 취업률’ 자료에 따르면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7.8%. 사회계열은 53.7%, 교육계열은 47.5%다. 이과계열 중 공학계열의 취업률은 67.4%, 자연계열은 52.5%, 의약계열은 71.1%로 문과계열보다 훨씬 높다.
취업난이라고 해도 명문대 졸업생에게는 조금 낯선 이야기였다. 1998년 IMF 경제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결국 명문대생은 좋은 곳에 취직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요즘은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대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2.3%에 불과했다. 고려대가 49.9%로 높았을 뿐 연세대 38.6%, 성균관대 42.3%, 한양대 37.8%로 40%대 전후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취업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서울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생의 2012년 취업률은 65.5%였다. 그러나 2014년에는 43.5%로 20%포인트 넘게 줄어들었다. 2013년에 70%이던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의 취업률도 2014년에는 54.5%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취업 시장에서 명문대 프리미엄은 없다시피하다.
이렇다 보니 A씨나 B씨 모두 취업 시즌에는 마치 고3 시절로 돌아간 듯 잠을 줄여 준비를 해야 한다. A씨가 다니는 스터디는 4개. A씨는 “기업마다 전형이 다 달라 일일이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 대학 입학전형이 다양하다고 하던데, 기업은 비교할 수도 없이 다양하다. 출제 범위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까운 A씨도 영어 스터디를 다닌다. 기업에 따라서는 영어 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질문을 영어로 하는 기업도 있지만 영어 토론을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그 기업이 외국계 기업일까. “아니오, 그냥 한국 기업이고 한국말로 하는 직무를 뽑는 거예요.”
A씨가 영어 스터디를 하는 시간에 고려대 심리학과 4학년 B씨는 면접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다. B씨의 하루는 꽤나 빡빡하다. B씨는 어학연수 경험이 없어 대부분의 한국 학생이 그렇듯이 ‘시험 영어’에만 익숙하다. 그래서 최근 취업준비생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토익스피킹이나 공인인증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PIc)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매일 아침 8시쯤에 학원에 도착해 오전 11시까지 영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강남역 인근 스터디 카페에서 면접 스터디를 진행한다. B씨가 요즘 준비하는 기업은 이동통신업체의 2차 면접. 1차 면접 결과가 발표 나지도 않았는데 2차 면접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서류를 거의 20~30개 넣었는데 2차 면접까지 간 건 이거 하나예요. 사활을 걸어야죠.” 그나마 이 기업의 1차 면접은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1박2일 동안 면접을 보는 곳도 많다.
B씨에 따르면 1박2일 동안 면접을 보는 회사에서는 10~12명이 한 조가 되어 팀 과제를 수행하고, 토론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임원 면접과 영어 면접까지 치른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1박2일 면접은 1차 면접일 뿐이고 2차 면접이 따로 있다. “많은 기업에서는 면접 전에 에세이나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해요.” 취업준비생에게 인기 있는 IT 기업 상당수는 각 회사의 “서비스 중 약점을 꼽아 대안을 제시하라”든가 “앞으로 회사에 필요한 서비스를 고안해 보라”는 식의 에세이 제출을 의무화한다.
B씨의 면접 스터디에 따라가봤다. 4명의 스터디원이 내게 면접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소개서를 대충 읽고 질문을 찾으려고 했는데 자기소개서만으로 보면 4명 모두 능력자였다. 높은 영어점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활동 경험도 많고, 외국 현지에서 아르바이트 해가며 돈을 벌어 해외여행을 했다는 학생이나 모바일 앱 개발 경험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11월 7일에 만난 서울대, 연세대 학생 5명은 스펙만 봐도 어디 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
서울대 학점 만점은 4.3점이니 지원자의 평점이 3.5점이면 모든 학과목에서 B+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다. 요즘은 토익·토플과 같은 기존의 영어 자격시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토익점수 대신 오픽, 토익스피킹 등 말하기·쓰기 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한다. 종종 공기업·공공기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능력시험 점수가 있어야 한다. 한국사능력시험이나 테셋·매경TEST 같은 경제시험, 어학연수나 인턴 경험은 옵션이다. 인적성 시험도 기업마다 유형이 달라 문제집 한 권씩은 꼭 풀어봐야 하고, 인적성 시험을 보지 않는 곳 중에서는 상식 시험이나 논술 시험을 보는 곳도 있다.
B씨와 함께 스터디하던 4명 중 한 명은 취업 재수생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는 이 학생은 “취업 준비 2년 만에 대한민국 기업을 꿰뚫게 됐고, 면접 준비를 하다 보니 발표면 발표, 영업이면 영업 못하는 게 없어졌다”고 자조했다.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토익 900점이 넘는데 나 혼자 800점대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고려대 행정학과를 다닌다는 같은 스터디원이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남자들이 소개팅시켜 달라고 하면서 ‘성격 좋은 여자면 된다’고 하잖아요. 거기에 생략된 이야기는 ‘예쁘고’예요. 성격은 좋지만 못생긴 여자 사진을 보여주면 거절할 걸요? 스펙은 그런 거예요.”
이 학생은 일주일에 스터디 3개를 하고, 영어학원에 다니며, 남는 시간에는 공기업 시험 준비를 위해 상식과 논술 공부를 하느라 매일 4~5시간을 잔다. “그 와중에 경력 공백이 생길까봐 틈틈이 무급 인턴 활동도 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서는 졸업하지 않는 대학생들을 일컫는 ‘NG족(No Graduation)’이란 신조어도 생겼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력 공백’이다. “1년이라도 아무 일 없이 쉬었다 싶으면 면접에 들어가서 바로 물어봐요. 1년 동안 뭐했습니까? 하면 ‘놀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학생들이 모두 대기업에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대기업으로 시작해요. 그러다 서류 다 떨어지고,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면 중견기업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도 안 되면 100인 이하 사업장까지 눈을 낮춰요.” 물론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기에 취업률은 40% 넘게 나온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취업 과정에서 ‘거절’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흔해요.” B씨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은 ‘25번 거절당한 남자’다. “친구 중에는 지나가다가 ‘탈’ 자나 ‘합’ 자만 봐도 호흡곤란이 온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다. “명문대생들은 살면서 실패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취업 때 많이 좌절하고 우울해 합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 학생이 전해준 얘기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서 직장에 들어갔는데 취업 준비 과정에서 얻은 우울증 때문에 3개월 만에 휴직한 선배도 있어요.”
그가 말한 ‘선배’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28살 C씨는 “회사에서 잘렸다”고 말했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늦게 군대에 간 탓에 제대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입대 전에는 아무 걱정 없이 놀았는데 그게 잘못이었어요. 재수강해서 학점 높이고, 토익점수 따고 나니 벌써 졸업 시기더라고요.” 우선 손에 닿는 대로 입사 원서를 넣어 봤지만 결과는 전패. C씨는 뒤늦게 인턴이며 공모전 활동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다.
“1~2학년 때부터 진즉에 취업 준비 좀 해둘 걸. 나는 왜 이렇게 비참해졌나 수없이 자책했어요.” C씨에 따르면 특히 서울대 학생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취업 실패 유형’이 있다고 한다. “서울대생들은 고시 준비를 많이 하잖아요. 고시를 오래 준비하다 보면 학점이나 경력 관리가 엉망이 돼요. 나중에서야 취업 좀 해볼라치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난생처음 찾아온 좌절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 눈을 많이 낮춰 한 달 200만원도 채 못 받는 작은 홍보기획사에 자리를 얻었지만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하루는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C씨는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회사는 입사한 지 2개월 갓 넘긴 수습사원의 병가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C씨는 일을 그만뒀다.
C씨가 예외적인 건 아니다. 전해옥 청주대 교수(간호학)는 대학생 239명을 대상으로 취업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관계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 대상 대학생의 27.6%는 위험 수준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여기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것은 취업 스트레스였다. 채규만 성신여대 교수(심리학)와 김향수씨가 함께 쓴 논문 ‘취업 스트레스가 대학생의 자살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봐도 취업 스트레스는 자살시도, 자살행동 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취재를 하며 접촉했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명문대 출신 취업준비생 22명 모두 “지금 우울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취업준비생을 더욱 좌절케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09년 졸업 후 5년 동안 행정고시 준비를 하다 취업 시장에 뛰어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생은 “스펙 초월 채용이니, 학벌을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불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에 취직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굳이 서울대에 올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공기업이 서울대 출신 고시 실패자를 잘 봐준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옛말이에요.” 올해 몇몇 공공기관의 서류 전형에서는 학점이 4.0점이 넘고, 토익·제2외국어 성적이 우수한 서울대 학생이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하반기 한 식품회사 마케팅직에 합격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출신 졸업생 E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합격한 회사에 원서를 넣는 서울대생은 찾아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고 말했다. “입사하고 나서 인사팀에서 다들 서울대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저도 이곳뿐만 아니라 가구로 유명한 곳, 보일러로 유명한 곳 등 예전에는 서울대생이 쳐다보지 않던 곳에 지원했었어요.” E씨는 “취업난이라는 것이 단순히 취업이 어려워졌다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예전 같지 않은 ‘직업의 질’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나는 민달팽이族(껍데기없는 달팽이·주거 불안한 대학생 빗댄 말)… 1.8평 고시원에서 '스펙(SPEC·specification: 학점·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은 사치였다
(조선일보 : 2014.09.01 03:04 )
[4] 지방출신이 더 힘들다
방세 벌러 아르바이트→ 학점 포기→ 날아간 장학금… 대학 재학 내내 악순환
저소득층·지방 출신 학생위해 대학이 아르바이트 제공 등 적극적인 대책 세워야
서울 4년제 S대학 사회복지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4)씨. 충남에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배려 전형으로 입학했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다. 김씨는 "대학에선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꿈이 깨지기까지 한 달도 안 걸렸다"고 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방세와 생활비가 없었다. 학교 앞 고시원은 가장 저렴한 곳도 월 40만원이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더 주는 온라인 쇼핑몰 피팅모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한 달에 90만원을 벌어 방세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않은 피팅모델 알바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매번 새로운 업체 면접을 봐야 했다. 결국 학점을 포기했다. 일이 있다면 수업도 제치고 달려나갔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장학금을 놓쳤고, 출석 일수를 못 채워 학사경고도 받았다. 악순환이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휴학하고 돈을 벌고 복학했다가 다시 등록금 벌기 위해 휴학하는 것을 3번 반복했다. 2011년엔 고금리 대출에 손을 댔다. 연이율 26%에 빌린 200만원은 3년 만에 500만원으로 불었다. 김씨는 악착같이 버텨 겨우 학점을 올렸지만 4학년이 되면서 다시 좌절했다. 취업을 위해선 학점 말고도 토익 점수, 스피킹 점수, 해외 경험 등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요즘 취업을 위해선 스펙(SPEC·specification: 학점·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도 있고 스토리도 있어야 하는데 난 스토리만 있다"며 "스펙 없는 내 스토리는 지지리 궁상일 뿐"이라 했다.
우리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쉽지 않은 구조가 됐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 믿고 대학에 입학한 저소득층, 주거비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지방 출신 학생들은 스튜던트 푸어의 나락으로 더 쉽게 떨어진다. 2012년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대학 등록금 2802만원을 제외하고도 학원 수강료, 영어시험 응시료, 어학연수비 등으로 1467만원을 썼다. 이 돈이 없는 저소득층은 다른 학생들에게 스펙이 밀려 취업이 힘들다.
지방 출신 학생은 주거비 부담이 더해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상경 대학생들의 28.1%만이 기숙사에 산다. 나머지 학생들은 월평균 28만6000원의 주거비를 내고 월세방이나 고시원 등에서 자취나 하숙을 한다. 이 돈은 한 달 생활비에서 35.3%를 차지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취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는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 학생들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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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평(6㎡) 남짓한 고시원에 살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스튜던트 푸어’박모(24)씨 뒷 모습(위). 짐을 풀어 놓을 공간이 없어 책상 밑에 상자째 쌓아둔 채 지낸다. 책은 침대 위에 쌓여 있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옷가지들은 벽과 의자 위에 걸려 있다. /이종호 인턴기자
2005년 농어촌 지역 특별전형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한 충남 홍성 출신 백모(27)씨도 "한 해 농사를 지어야 그나마 돈이 생기는 부모님은 당장 목돈도 없을뿐더러 매달 방세로만 30만원을 날린다는 게 너무 아까워 월세 15만원짜리인 지하방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선배·동기와 옷을 함께 사 번갈아가며 입었다. 주말이면 결혼식장에서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10만원을 벌어 다음 일주일을 살았다. 백씨 역시 "돈이 없으니 이런저런 자격증을 딸 수도, 외국에 나갔다 올 수도 없었다"며 "아르바이트 경험만이 내가 쌓을 수 있는 스펙이었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희삼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회균형이란 취지로 선발된 학생이 학교에 쉽게 적응하도록 상담·지원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등 애프터서비스 시스템이 있지만, 우리는 사후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대학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지방 출신 학생들을 위해 공부를 하며 생활비 등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대학과 대학생이 너무 많습니다. 매년 60만명이 입시를 치루고 거기서 80% 이상이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함량미달 대학과 대학생이 범람하는 것 입니다. 현재 상태에서 땜질식으로 개선해서는 백약이 무효 입니다. 일단 대학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끊어서 자생력 없는 대학은 스스로 도태시켜야 합니다. 지금 같이 정해진 파이를 여렷 나눠주면 효과 없습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대학 진학율이 30~40%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80%다 그래서 대졸자가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부모들은 비싼학비 댄 다고 허리가 휘는 사회 구조가 됐다 유럽 선진국들은 현장에서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 보다 급여가 더 많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대학 안가도 충분한 대우를 받을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취업 준비하느라 빚더미… '스튜던트 푸어(student poor)' 34만여명
(조선일보 2014.08.27 10:25)
[1] 그들은 누구인가
私債 써가며 "스펙, 스펙"… 취업준비 20代 10명 중 1명 스튜던트 푸어
대학 때 스펙 비용만 4200만원… 취업 실패땐 빈곤의 악순환 계속
쪽방서 자고 삼각김밥 먹어도 토익·토플 학원비로 月100만원
사채 끌어다 쓴 책값 100만원… 3년만에 3000만원으로 불어나
유명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여·28)씨는 "지금도 가끔 빚 갚는 꿈을 꾼다"고 했다. 명문 사립대를 나온 최씨는 대학 시절 6년을 월세 15만원짜리 방에서 보냈다. 키 165㎝인 그의 발끝이 벽에 닿는 창문 없는 쪽방이었다. 그는 "거지처럼 살면서 내내 과외를 3~4개씩 뛰었다"고 했다.
하지만 등록금은커녕 생활비 대기도 버거웠다. 남들 다 하는 면접을 위한 스피치 학원, 토익·토플 학원 등을 빼먹으면 뒤처질 것 같아 월 100만원씩 썼다. 여기에 전공 책값과 월세를 내고 나면 편의점 삼각김밥 아니면 2000원짜리 학생 식당 메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학기마다 받았던 학자금 대출은 졸업을 앞두고 10건이 됐다. 대출 건마다 이자 갚는 날이 달랐다. 최씨는 "하나라도 빼먹어 신용 불량자가 될까 봐 아등바등했다"고 말했다. 매월 열 번째 이자를 내고 나면 진이 빠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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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상훈 기자
스튜던트 푸어는 졸업 후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당분간은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최씨는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 3000만원의 원리금 상환을 시작했다. 월급의 4분의 1이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쪽방에서 벗어나 월세 40만원짜리 방으로 옮기는 데 만족했다. 입사 만 3년째였던 작년 10월 마지막 원리금을 갚은 최씨에게 회사 선후배들은 "열심히 살았다"며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드디어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어머니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잊고 있었던 다른 학자금 대출 360만원을 상환하지 않아 신용 불량자가 될 위기라는 것이다. 은행으로 내달렸다. "여기 돈 갖고 왔어요! 저 신용 불량자 안 되는 거죠?" 대출금을 갚고 나오던 최씨는 다리가 풀려 은행 앞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드디어 빚을 다 갚았다는 기쁨과 그동안의 괴로움이 버무려진 눈물이었다.
가난한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고학생(苦學生)이라 불리는 그들은 취업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스튜던트 푸어는 취업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 적을 둔 학생 수는 2005년 185만9000명에서 2012년 210만3000명으로 24만4000명이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신입 사원 채용 규모는 겨우 9000명만 늘었다.
스튜던트 푸어가 늘어나는 데는 취업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 영어 점수 등 스펙(SPEC·특정 장비의 기능을 뜻하는 specification의 준말)을 쌓기 위해 드는 비용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12년 청년유니온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생활비를 제외하고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스펙 비용으로만 평균 4269만원을 쓴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문을 뚫기 위해 스튜던트 푸어로 살다가 취업을 포기하거나 고리 채무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잖다.
수도권의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중소기업에 취직한 신모(29)씨는 월급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그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공무원 시험 학원비 80만원과 교재비 20만원을 합쳐 100만원을 빌렸었다. 빚을 내더라도 빨리 합격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는 신씨가 기댈 곳은 대부업체. 금리는 연 36%였다. 3년 내리 취업에 실패하면서 대출금이 늘었다. 원금 100만원이 3000만원이 됐다. 신씨는 결국 복지 공무원 꿈을 접고 지금의 직장에 취직했지만 아직도 남은 빚이 1200만원이다. 그는 "언제쯤 월급을 온전히 쥐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퇴근 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연이자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쓴 대학생은 약 8만8000명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을 위한 지출 증가→비용 마련을 위한 저임금 노동과 빈곤한 생활→취업 실패→취업 준비의 장기화→저임금 노동과 빈곤한 생활 고착화'라는 악순환에 청년들이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북대 사회학과 이상록 교수는 "대졸자를 포함한 20대 중 상당수는 배울 만큼 배웠고 실제 사회에 내놔도 손색없는 상황인데 사회로 진출하는 입구가 좁아져 너무 오래 대기하고 있다"며 "이는 국가 전체에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스튜던트 푸어(student poor)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 가운데 빈곤한 사람들을 뜻한다. 대학을 졸업했어도 취업 준비생·고시생·수험생으로 남아 있어 ‘사실상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중 빈곤선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내 스튜던트 푸어는 34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스펙 푸어, 考試 푸어, 로스쿨 푸어, 빈곤층 직행 푸어… '학생 빈곤'의 네 유형
(조선일보 2014.08.27 03:02)
스튜던트 푸어에는 네 유형이 있다. 각기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고비용 구조'와 맞닿아 있다.
첫째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수천만원을 쓰는 청년 구직자들이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해 갖춰야 할 스펙이 점점 늘어났고,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총비용이 급증했다. 한 번에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교환학생·어학연수는 특별할 것 없는 경력이 됐고, 각종 영어 시험 점수와 자격증 취득, 인턴·봉사활동, 면접 학원 수강, 자기소개서 대필 등에 돈을 써야 겨우 남과 같은 선상에 설 수 있게 됐다.
둘째는 행정고시, 공무원 시험, 교원임용 시험 등에 뛰어든 수험생들이다. 합격만 하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공무원·교사가 되겠다는 청년들이다. 스펙은 따로 필요없지만 각종 시험 전문 학원이 발달하면서 '절간에서 독학한 끝에 고시에 합격했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유명 강사의 인터넷 강의는 한 달 수강료가 거의 100만원에 육박한다. 전문학원에서 몇몇 과목만 수강해도 대학 등록금에 버금가는 수강료를 내야 한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합격 때까지 극빈층 수준의 생활을 감내하거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험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시험에 연거푸 낙방하며 스튜던트 푸어로 전락한다
셋째는 변호사와 의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종을 노리며 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2005~2009년 도입된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은 대부분 한 해 등록금이 1500만원을 넘는다. '졸업만 하면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학자금 대출, 심지어 이자율이 두 자릿수인 고금리 대출에 손대는 재학생들도 있다. 수천만원 빚을 지는 경우도 생긴다. 대출을 받지 않으려고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면서 임시직과 학생 신분을 오가는 스튜던트 푸어도 적잖다.
마지막은 처음부터 스튜던트 푸어로 시작해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빈곤층으로 진입하는 경우다. 저소득층 출신 학생 상당수가 이 경우에 속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까지 대학 등록금 외에도 여러 비용이 들어가게 되면서, 장학금이나 복지 지원금만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中 대도시 쪽방에 사는 대졸 출신 '개미族' 100만명 넘을 듯
(조선일보 2014.08.27 03:02)
해외의 스튜던트 푸어
스튜던트 푸어는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2009년 중국 사회학자 롄쓰(廉思)는 대도시 주변 빈민가에 거주하는 가난한 대졸자를 '개미족(蟻族)'이라 명명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지만 저소득 공동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20대 대졸자의 모습을 '개미'에 비유한 것이다. 롄쓰의 정의에 따르면 개미족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로,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채 대도시 변두리의 쪽방 등에서 빈곤한 생활을 하는 젊은이를 말한다. 중국청년개발재단에 따르면 작년 중국 베이징에는 개미족이 약 16만명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하이 등 다른 대도시까지 합치면 전국적으로 개미족의 숫자는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최대 경제지인 닛케이신문도 작년 말 '헤이세이 세대의 취업 활동'이란 기사를 통해 '졸업 미취업자'(卒業 未就業者)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1989년 이후 출생한 헤이세이 세대 대학생은 부모 세대보다 100만명이 많지만 좋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대졸 정직원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 일본 리쿠르트워크 연구소에 따르면 1987년 상반기 대졸 구인은 60만8000명이었는데, 2014년 상반기 대졸 구인은 54만2500명으로 6만5500개가 줄었다. 1980년대 졸업반 대학생들은 10월이면 80%가 이미 취업할 곳이 정해지는 등 어느 정도 레벨의 대학생이라면 정사원으로 취직한 뒤 장기 고용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일본형 고용 시스템에 쉽게 올라탔지만, 요즘은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 성향 때문에 질 좋은 일자리는 줄고 계약사원·파견직 등이 증가한 게 이런 경향을 가속화시켰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학비 비싸고 공부 바쁜 로스쿨·의대생들, 수천만원씩 마이너스 통장
(조선일보 2014.08.30 04:53)
수입 예전만 못한데 미래 낙관… 일부 은행, 전용상품 내놓기도
수도권 소재 치과대학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8)씨는 올해 초 연 5.5%의 금리에 한도 3000만원인 마이너스 통장(돈이 없더라도 통장에 마이너스가 찍히면서 한도 내에서 돈을 자유롭게 빼 쓸 수 있는 통장)을 만들었다. 김씨는 "한 학기 600만원인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지만, 1년에 400만원씩 드는 재료비나 수업 준비금은 감당할 수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고 했다.
그는 "저학년 때는 과외라도 했지만 고학년이 돼 실습까지 하니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다"며 "졸업 때까지 학자금 대출도 합치면 8000만원 정도를 대출할 것 같지만, 월급제 의사로 일하면 한 달에 300만~400만원 이상 버니 금방 갚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영업이 안돼 망하는 개업 의사도 종종 있는 만큼 무분별한 마이너스 통장이나 대출은 의·치대생도 상당 기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의료계는 경고하고 있다.
학비는 비싸고 공부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의·치대생, 로스쿨생 등 전문대학원생은 대출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빚을 지더라도 학교만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생각에 쉽게 대출 유혹에 빠진다. 한 시중은행은 '로스쿨 합격자를 위한 신용대출'이라며 전국 모든 로스쿨 합격생, 재학생을 대상으로 금리 연 5.51%에 최대 2000만원인 마이너스 통장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전문대학원을 졸업해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곤란을 겪는 상황도 발생한다. 실제 한 로스쿨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이너스 통장의 대출 기한은 최대 5년 정도까지인데 로스쿨 졸업하고 백수 변호사 됐는데 은행에서 당장 돈 갚으라고 하면 어떡할 거냐"며 "졸업하고 빚이 2000만원 있는데 취직 못 하고 대출 상환 기한 연장 안 해주면 바로 신용불량자로 직행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생활비와 실습비 등을 위해 이자 6%에 한도가 3000만원인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았다는 지방 소재 치과 전문대학원생 이모(28)씨는 "개업해도 망하는 병원이 많은데, 벌써부터 이자 나갈 때마다 부담이 된다. 앞으로 어찌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노예처럼 부리는 '무급 인턴'도… "스펙 때문에 지원"
(조선일보 2014.08.28 05:56)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거나 아예 한푼도 안 주고 잡무만
"알바하면서 겨우 생계 유지"
서울 4년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윤모(23)씨는 작년 여름 한 케이블 방송국 인턴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 했다. 8월 한 달간 인턴으로 일하면서 생활비가 바닥나 후불제 교통 대금이 연체됐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5일 근무를 하는 이 방송국의 인턴 한 달 월급은 40만원. 시급으로 따지면 2500원꼴로 2013년 최저 시급 4860원에 훨씬 못 미친다. 교통비와 식대, 야근수당도 없었다. 윤씨는 "계약서는커녕 월급이 40만원이라는 것도 나중에 따로 물어봐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마저도 월급이 3주 늦게 입금돼 인턴이 끝나자마자 다른 알바를 구해 겨우 생활비 적자를 메웠다"고 했다. 윤씨가 이 일을 꾹 참고 한 것은 혹시라도 '스펙'으로 한 줄 쓸 수 있을까 해서다. 그는 "돈은 적더라도 학원에 다닌다는 마음으로 한 달을 버텼는데,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간단한 '잡무' 정도였다"고 했다. "싼값에 사람을 부리려고 '인턴'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뽑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어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인턴, 무급 인턴직이 스튜던트 푸어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인턴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면 임금을 줘야 하지만 '교육생' '자원봉사자'로 분류하면 무급도 가능하다. '산학협력 인턴' 역시 학교와 회사가 연계해 직무 경험을 쌓는다는 취지라서 최저임금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특히 정부와 국회, 국제기구 등 쉽게 직무 경험을 하기 어려운 직종은 무급 인턴이 잦다. 유엔산업개발기구는 지난달 인턴 모집 공고를 냈는데, 국제학 전공 졸업자나 대학원생에 토익 850점 이상, 컴퓨터 능통자라고 자격 요건을 걸었다. 그러나 급여는 식사비와 교통비를 제외한 '무급'이었다.
취업 준비생들은 "인턴이 아니라 '노예'를 뽑는다" "다 같이 지원하지 말자"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취업 시장에서 약자인 이들은 스펙을 위해 무급 인턴이라도 지원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스펙 위한 스펙(SPEC·specification: 학점·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 쌓기 멈추게 할 열쇠, 기업이 쥐고 있다"
(조선일보 2014.09.03 03:00)
[5·끝] 전문가들의 해법
"말로만 '스펙 안본다' 하지말고 실제 채용 통해 보여주길
대학도 선배 활용한 멘토링 등 형편 어려운 학생 지원해줘야"
"야구장 관중석에서 경기를 잘 보겠다고 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뒷사람도 다 일어나야 합니다. 앉고 싶어도 못 앉는 거죠. 제일 좋은 건 모두 앉아서 보는 거지만 남들이 서 있기 때문에 나도 서 있는 거죠. 스펙 쌓기도 이런 식의 경쟁이 됐습니다."(한국개발연구원 김용성 박사)
취업 컨설팅 학원, 영어 학원 등 스펙을 위해 돈을 쓰느라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스튜던트 푸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서류전형에 떨어져 내 스토리를 말할 기회조차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 박상현 연구위원은 "실제로 이미 취업한 사람들과 취업 준비중인 전문대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취업한 사람들은 '인성·적성·인문학·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한 반면 재학생들은 자신들이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했다. 스펙에 대한 청년들과 기업의 인식 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인적자원정책부 연구부장 김용성 박사는 "그런 불안을 해결할 열쇠는 기업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스펙 안 본다, 필요 없다, 스토리만 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실제 선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금이나 생활비 때문에 고금리 덫에 빠진 청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저금리 전환 대출'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대학 재학생이나 휴학생이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해 6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았고 그게 도박 등을 위해 빌린 경우만 아니라면 사회연대은행 등에서 5~6% 정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장상환 교수는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이 약 9만명에 달한다는 건 국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개인이 떠맡아 사금융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소득을 노리고 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일명 '로스쿨 푸어'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보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미국의 전문대학원생은 취직을 해서 빚을 갚는 것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문직이라고 해서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전문대학원 졸업 후에도 영업이 안 돼 빚을 지는 전문직도 많은 만큼 무분별한 마이너스 통장이나 대출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본래 저소득층이거나, 상경한 지방 출신으로 높은 집값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빈곤층 직행 푸어'에 대해서 '사후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KDI 김희삼 박사는 "기회 균형이라며 기초생활 수급 가정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는 제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생활이 어려워 학업이 힘든 학생들에게 대학 선배가 '멘토링'을 한다거나 근로장학금을 주는 등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펙 경쟁이 싫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지만 만만찮은 고시학원 비용 탓에 빈곤선을 맴도는 '고시 푸어'.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빈곤을 겪는데도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건 그게 가장 안정적이고, 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어떤 사회든 투명성이 개선되고 사회 신뢰 수준이 높아지면 창업자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며 "창업 비용 등 도전적인 직업에 대한 투자를 높이면 안정적인 직업에 매달리는 상황이 개선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청년 34만명이 빈곤선을 맴도는 '스튜던트 푸어 현상'을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은 좋은 일자리"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질 좋은 정규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청년층은 취업을 미루거나, 취업을 해도 가난을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신용 7등급 대학생도 2400만원 대출… 빚이 빚을 부른다
(조선일보 2014.08.30 03:33)
[3] 쉬운 대출, 늘어나는 빚
은행서 돈 못 빌린 학생들, 저축은행·대부업체 노크
신분확인·서류절차 간단… 전화 한통이면 입금해줘
"대학 휴학생이고 신용이 7등급인데 대출이 가능한가요?"
여자 상담원이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얼마가 필요하세요?" 상담원은 대학교명, 학년, 기존 대출 여부 등을 물었다. 그리고 곧 "최대 24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을 내놨다. "정말이냐?"고 되묻자 "학교가 아주 좋아서 문제없다"고 말했다. 전화를 건 인턴기자는 서울대생이었다. 본지가 인터넷에서 '대출'을 검색해 "2400만원까지 가능하다"라는 대답을 얻기까지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본지는 너무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스튜던트 푸어를 양산한다고 보고, 직접 대출을 해보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대학생 대출'을 입력하니 100여개의 업체가 검색됐다. 한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월 1.5∼2.8%의 금리로 100만원 빌리면 이자로 2만원 중반 정도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또 주민등록등본 원·초본, 고졸증명서, 신분증 사본, 입금받을 통장 사본, 휴학증명서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상담원은 "오늘까지 서류를 모두 팩스로 보내면 2시간 내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 업체와 비슷한 다른 5군데 업체에서도 동일한 답이 돌아왔다.
'스튜던트 푸어'가 된 20대 대학생들을 취재팀이 만나 보니, 뒤에는 '고금리 대출'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용이나 담보가 없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은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다. 반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는 조건도 까다롭지 않고 인터넷·전화 등으로 간편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연이율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8만8000명에 달한다. 전체 대학생(212만명)의 4.2%다.
돈을 쉽게 빌릴 수는 있지만, 갚기는 그만큼 쉽지 않다. 대학 신입생 때 인터넷에서 고금리 대출로 500만원을 빌려 쓴 유모(28)씨는 "몇 가지 서류만 갖다 내니 바로 돈이 들어왔다"며 "100만원만 덜 빌렸으면 이자로 얼마를 아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월 25만원짜리 반지하방에 살면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에 80만원을 벌어 10만원씩 원금을 갚고 10만원씩 이자를 갚았다. 교통비·통신비·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30만원도 안 남았다.
유씨는 "지금 고금리 대출 과정은 너무나 쉬워 별생각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다"며 "무엇보다 대학생들이 그 위험성과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11년 연 39% 이율로 500만원 대출을 받은 김모(29)씨는 "광고에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대출이 된다'고 해서 전화했는데 정말 한 통화로 대출을 해주더라"며 "이름과 주민번호를 묻더니 '고객님 신용이 좋다'고 하며 그날 바로 500만원을 넣어줬다"고 했다. 올해 초 취업한 그는 아직 이 빚을 갚고 있다. 김씨는 "대학교 때는 생필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80만원 중 60만원을 돈 갚는 데 썼다"며 "취직해 200만원 정도 버는 지금도 계속 돈을 갚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상담사들은 "고금리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대출에 손을 대는 학생들, 너무나 손쉽게 돈을 빌려주는 대출업체가 '스튜던트 푸어'의 첫째 문제"라고 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김기성 센터장은 "지금 20대는 고금리 대출 서비스의 내용이나 신용 관리 등에 대해 교육받아 본 적이 없어 그 위험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에게 손을 벌리긴 쉽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할 시간과 기회를 놓치니 대출업체를 찾아 고액 학원비를 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연대은행 미래사업팀 구현정 팀장은 "하루 평균 20명 정도 대출 구제 상담을 하는데 10명 중 8명은 대학 생활 중에 발생한 대출"이라 했다.
구 팀장은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에서 말하는 월 3.2% 이자는 연이율로 따지면 32% 이자"라며 "학생들은 '에이 3%쯤이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쉽게 보다 큰코다친다"고 했다. 그는 "고금리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은 대학 생활 좀 잘해보려고 빚을 졌다가 이자를 갚기 위해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휴학을 하게 되고, 그러다 졸업이 멀어지고 취업도 늦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스튜던트 푸어 34만명 시대] "스펙보다 스토리? 기본 스펙 없으면 서류서 막혀" "눈낮춰 中企 가라? 막상 들어가면 어른들이 무시"
(조선일보 2014.09.03 08:35)
스튜던트푸어가 말하는 현실
"방세는 정기적으로 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신청비만 12만원에 달하는 토익, 토익스피킹이라도 보게 되면 정말 암담하다. 점수가 낮게 나올까 봐서가 아니라 응시료 때문에 시험을 2번 볼까 무섭다."
'스튜던트 푸어 해결을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하냐'고 묻자 조재범(26)씨는 서슴없이 '주거 지원'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서울 지역 대학에 다니고 있는 조씨는 매달 30만원을 고시원비로 지출한다.
조씨는 "우리 과만 해도 40명 중 기숙사에서 사는 친구는 3~4명뿐"이라며 "전원 수용은 힘들어도 일정 수 이상의 지방 대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방안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스튜던트 푸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주거비 문제'를 꼽았다.
스튜던트 푸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눈을 낮춰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직해야 한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 서울 소재 여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지수(24)씨는 "부모님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면 당장 '나 어릴 때는 밥도 못 먹었어'란 말이 돌아온다"며 "그 시대의 어려움을 인정하지만, 역으로 스펙 경쟁이나 천정부지 오르는 서울 집값, 좁아지는 취업문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강혜원씨는 "명절날, 어디 취직했느냐 물어보는 어른들이 가장 많이 무시하는 곳이 중소기업이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능력을 보기보다 소속을 보고 깎아내리기 일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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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박스 6000개 옮기고 8만원 …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중앙일보 20140928) (0) | 201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