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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빙하 쓰나미 60차례, 5000m 베이스캠프는 눈 대신 자갈밭으로 (중앙일보 2014.11.15 00:20)

[Saturday] 빙하 쓰나미 60차례, 5000m 베이스캠프는 눈 대신 자갈밭으로

설설 녹아내리는 히말라야

 

파키스탄 히말라야 콩코르디아 광장(4700m)에서 1975년 미국 K2 원정대원 캘런 로웰이 찍은 사진(왼쪽)이다. 오른쪽은 2012년 사진. 빙하가 녹아 돌과 자갈이 드러나 있다. 자갈밭에는 고산 쥐가 산다. [김영주 기자]


지난달 14일 오후 네팔 중부 안나푸르나 지역 토롱라 패스(5416m) 일대에서 39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패스를 넘기 위해 수백여 명의 트레커가 머물고 있던 지역에 진눈깨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눈폭풍으로 돌변해 엄청난 눈을 퍼부은 거다. ‘히말라야 최악의 재난’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현장에 있었던 한 가이드는 “지난 10여 년간 겪은 눈폭풍 중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아래 쿰부 빙하에서 이에 못지않은 비극이 일어났다. 베이스캠프에서 7~8시간 거리에 있는 1캠프(6000m) 근방 ‘세락’이 무너지면서 루트 개척에 나섰던 현지 셰르파(등반 가이드) 16명이 일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세락은 눈과 얼음이 뭉쳐 생긴 ‘얼음산’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도전자들은 눈과 얼음이 뭉쳐져 파르테논 신전 기둥처럼 솟구친 세락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얼음산이 한순간에 붕괴하고 말았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연관이 없어 보이는 히말라야의 최근 두 참사를 두고 전문 산악인들은 심상치 않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연속된 비극이 히말라야가 녹아 내리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예상치 못한 시점에 눈폭풍이 몰아치고 얼음산이 붕괴했다는 얘기다.

히말리야가 녹고 있다는 얘기는 한두 명의 주장이 아니다. 지난 8월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등반한 김재수(53·코오롱) 대장은 가셔브룸1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에서 거대한 호수를 만났다. 빙하가 갑자기 녹으며 생긴 ‘빙하호(氷河湖)’다. 큰 산 아래는 자연스레 호수가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는 드문 일이다. 1999년 이래 여섯 번째 이 빙하를 찾았지만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그는 “빙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흙탕물 호수가 있어 이대로 가다간 히말라야 만년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발토로빙하 해발 4000m에 지난 6월 생긴 호수. 지름 약 300m의 ‘빙하호’는 원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이었다. [사진 김재수]

 

특히 이렇게 형성된 빙하호의 엄청난 압력을 못 이겨 둑이 터져버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호수에서 터진 ‘물폭탄’이 한순간에 온 마을을 삼켜버리는 ‘빙하 쓰나미’가 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2010년 카라코람에서 흘러내린 빙하에 우기 때 내린 비까지 겹치면서 이 일대가 5주간 물바다가 됐고, 2000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히말라야의 빙하 쓰나미는 지금까지 보고된 것만 중국 29회, 네팔 22회, 파키스탄 9회 등 총 60차례가 넘는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소규모 물폭탄까지 합치면 훨씬 많아진다.

엄홍길(54·밀레) 대장도 생생한 증언을 한다. “(네팔)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인 쿰부 빙하는 30년 전에 비해 수십m는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제는 5000m 베이스캠프도 눈이 아니라 대부분 흙과 자갈밭”이라고 했다. 그는 1985년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원정만 38번 떠난, 설명이 필요 없는 산악인이다.

더 심각한 건 빙하의 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 여기엔 돌덩어리도 한몫한다. 눈과 얼음이 녹아 사라지면 빙하 표면은 돌과 자갈이 깔린 모레인(Morain) 지대로 변한다. 문제는 이렇게 드러난 돌이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엄 대장은 “낮에 볕을 받은 돌은 얼음을 더 빨리 녹게 하고, 밤엔 빙하가 얼음이 되는 것을 늦춘다”고 설명했다.

히말라야 지역 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통합산지개발센터(ICIMOD)는 “히말라야 기온 상승으로 2010년 네팔의 빙하가 1977년에 비해 최소한 4분의 1이 줄어들었다”며 “매년 38㎢가 줄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국 티베트고원연구소 야오탄동 박사는 2012년 발표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론리 톰슨 박사와의 공동 연구에서 “1970년대 존재한 빙하 중 거의 9%가 2000년대 초엔 사라졌다”며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녹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일부 학자는 ‘히말라야의 빙하가 줄고 있다’는 학설은 아직 검증이 안 된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적설 면적을 연구한 부경대 한경수(45·공간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히말라야 중부(네팔)와 동부(부탄)의 눈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서부(파키스탄)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동서 지역의 차이에 대해 “서부 지역은 편서풍, 중부와 동부 지역은 인도 몬순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S BOX] 사계절 내내 폭우·폭설 … 불안한 트레커들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 히말라야에는 ‘코리아 시즌’이라는 게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우리나라 트레커들이 대거 히말라야에 몰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얼핏 반가운 생각이 들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뻐할 일은 못된다. 이 지역 겨울의 기후에 변화가 생기면서 예전처럼 겨울이 춥지 않아 한국인이 많이 찾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북반구의 설빙권이 급격히 줄고 있으며 고위도 빙하뿐 아니라 고산지대의 만년설 또한 영향을 받는다고 기후학자들은 설명한다. 2010년 영국 레딩대학 국가대기과학센터(NCAS)는 티베트고원을 포함한 히말라야에 겨울철 많은 눈이 내리면 눈에서 태양광을 반사하면서 이 지역의 기온을 떨어뜨리고, 이는 6~9월 인도에 미치는 몬순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래 들어 티베트고원의 만년설이 줄어들면서 우리나라 겨울 폭설의 한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악인들은 “근래 네팔 히말라야에서 우기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특정한 시기에 비가 집중됐던 과거와 달리 사계절 내내 폭우와 폭설이 빈발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트레커들의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