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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절망서 革命 이룬 정도전처럼… 수퍼 기업 되려면 위기의식 있어야 (조선일보 2014.04.11 14:31)

[Weekly BIZ] 절망서 革命 이룬 정도전처럼… 수퍼 기업 되려면 위기의식 있어야

명예욕·명분론에 집착하다… 유배지서 가혹한 자기성찰
백성을 '위한' 입장에 서다… 백성'의' 입장을 깨달아
위기는 변수가 아닌 常數… 거기서 도약의 기회 찾아야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 기업들 평균수명은 13년에 불과하고, 30년이 지나면 80%가 사라진다고 한다. 위기는 기업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다. 그렇다면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위기가 없으면 혁신도, 도전도, 창조도 없다.

조선의 건국자 정도전도 가시밭길 속에서 진정한 자신과 만났고, 정치가로서 진실한 사명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조선 건국의 혁명 운동이 시작되었다.

1375년 여름 33세의 정도전은 나주를 향해 귀양 길을 떠났다. 이후 10년, 그는 유리(流離) 방랑하면서 삶의 신산을 절절히 맛보았다. 1374년 공민왕이 죽었을 때 중국 대륙은 대변동기였다. 명나라가 건국되고, 몽골족인 원나라는 초원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중원의 앞날은 아직 오리무중으로, 누구와 손을 잡는가는 고려의 운명이 달린 문제였다. 이인임을 중심으로 한 전통 세력은 친원 정책을,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성리학자들은 친명 정책을 주장했다.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성리학자들은 죽거나 쫓겨났다. 정도전도 그 한 사람이었다.

남도로 가는 길은 멀고 뜨거웠다. 해골이 뒹굴고, 논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왜구의 칼날 아래 피가 대지를 적시고, 굴비처럼 묶여 노예로 끌려가는 백성의 통곡이 하늘에 닿았다.


	KBS 1TV에서 방영 중인 사극 '정도전'. 탤런트 조재현(사진)이 정도전 역을 맡았다. / KBS 제공
KBS 1TV에서 방영 중인 사극 '정도전'. 탤런트 조재현(사진)이 정도전 역을 맡았다. / KBS 제공
나주에 도착한 정도전은 동루에 올라, 시골 부로(父老)들에게 일장 훈시를 했다. "내가 죄를 얻어 귀양 온 몸이지만, 부로들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얼마 뒤 아내의 편지가 왔다. "일찍이 공부에 전심할 때 당신은 밥이 끓든 죽이 끓든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가득한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울었지만, 나는 언젠가 당신이 잘될 것을 믿고 참고 견뎠습니다. 당신이 마침내 과거에 합격했을 때, 온 집안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이 유배를 떠난 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세상은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군자의 길이 참으로 이런 거라면, 나는 진실로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정도전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유배지에서의 삶은 혹독했다. 어느 날 한 야인(野人)이 그의 집을 찾아와 물었다. "유학자란 어떤 사람이오." 그의 종자(從者)는 대답했다. "학문은 천지고금에 통달하고, 행실은 곤경에 빠질지언정 불의를 범하지 않으며, 포부는 평천하에 있는 자요." 그러자 야인이 말했다. "실상이 없으면서 이름만 있으면 귀신도 미워하고, 실상이 있어도 밖으로 드러내면 남들이 성내는 바요. 귀신이 미워하지 않아도 반드시 사람의 노여움을 살 것이니, 참으로 위태합니다."

어느 날 정도전은 들에서 한 촌부를 만났다. 밭을 매던 촌부는 허리를 펴고 말했다. "예부터 때를 모르고 바른말을 좋아하면서 몸을 보전한 사람은 없었소. 그대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니, 이제부터라도 조심하면 화를 면할 것이오."

정도전은 세상에 절망했다. 나라·가족의 위기에 앞서 그 자신의 위기였다. 하지만 유배지 부곡의 천민들은 그런 그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 마을 사람들은 철 따라 토산물을 얻으면 술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 함께 즐겼다. 정도전은 스스로 물었다. "나는 세상의 버림을 받고 멀리 귀양 와 있는 몸이다. 동네 사람들이 왜 나를 이처럼 대접하는 걸까. 나를 불쌍히 여겨서인가, 아니면 시골 사람들이라 몰라서인가. 아, 부끄럽구나."

그의 의식에 큰 전환이 찾아왔다. "나라가, 임금이, 유학자가 백성을 돌보는 것이 아니구나. 진실은 그 반대다. 남들이 만든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의 책임을 맡아야 하고, 남이 만든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알아야 한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자 군주의 하늘이다."

동루에서 일장 훈시하던 정도전은 이제 없었다. 그는 마침내 함흥으로 이성계를 찾아갔다. 유배지에서 정도전은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성찰했다. 야인과 촌부의 눈에 비친 그는 실상은 없고 이름만 있는 껍데기거나, 혹은 명예욕으로 화를 초래하는 어리석은 자, 명분만 가지고 권력과 싸우다 죽음을 자초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또 그는 자신이 일찍이 백성을 '위한' 입장에 섰지만, 백성'의' 입장에 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자각과 부끄러움으로부터 혁명이 시작되었다. "○와 ○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수퍼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