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 치

“안철수, 줏대 없이 그카모 안 돼” “우리편 됐승께 고맙지라” (중앙일보 2014.03.09 09:46)

“안철수, 줏대 없이 그카모 안 돼” “우리편 됐승께 고맙지라”

야권 통합 선언 1주일, 지역 민심 르포

 

5일 저녁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의 한 고깃집. 중년 남성 세 명과 여성 한 명 사이에 술판이 벌어졌다. 몇 순배 돌자 화제는 정치 쪽으로 넘어갔고, 통합 신당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A씨(52)=“안철수 그 양반 미국 가뿌쨀 때부터 알아봤어.”

B씨(54)=“하모, 아쌀하게 밀어주든가 아님 판을 어퍼 삐든가. 이번에도 뭐야, 손바닥 뒤집듯 해딱해딱 뒤집으면 쓰나.”

C씨(54)=“그카모 새누리는 뭐 낫나. 시장도 한 명이 10년 넘게 해묵었어, 이건 독재야 독재. 그러니 부산 사람 우습게 보는 기라고. 이참엔 싹 바꺄야 돼.”

D씨(53·여)=“그래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안철수, 갸는 안 돼.”

야속함이랄까, 서운함이랄까. 부산의 인심은 일단 그런 쪽으로 흐르는 듯했다. 부산을 대표하기보다는 민주당과, 호남과 손잡은 부산 출신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 말이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전격 통합을 선언한 지 일주일. 그새 각 지역 민심은 어떻게 요동쳤을까. 중앙SUNDAY는 5일부터 7일까지 부산·광주·대전 등의 재래시장, 철도역, 신시가지 등을 훑으며 바닥민심을 살펴봤다. 세 지역의 온도차는 적지 않았다. 섭섭함(부산), 안도(광주), 그리고 무덤덤(대전)….

부산 자갈치 시장의 시계방 주인 박동석(48)씨는 “안철수, 너무 곱상하고 샌님이라 원래 인기 별로였는데, 이번에 (민주당 쪽으로) 가뿌는 거 보고 완전히….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라고 했다. 남포동에서 만난 문일표(66)씨도 “오늘(5일)도 부산에서 신당 설명회 열었는데 사람 몇 명 없다 카던데. 사람이 똑 뿌러지고 확실해야지 줏대 없이 그카모 쓰나. 정치는 장사가 아니라고”라고 말했다.

센텀시티 부근에서 만난 대학생이 “얼마나 새누리당 기득권 벽이 두터웠으면 그렇게 했겠나”라고 했지만 다수 의견으로 체감하기엔 목소리가 작았다.



광주는 영 딴판이었다. 택시 기사 박훈일(44)씨는 “민주당이 참 거시기해서 이번에 한번 매서운 맛을 보여줄라 했는디”라고 운을 뗐다. “그럼 양측이 합당해 아쉬운가”라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니재. 우린 힘이 약하고 혼자만으로 안 되니 당연히 합쳐야지요. 그건 잘한 겨”라고 답했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거의 없었다. 그저 “인상이 좋아 보인다”거나 “우리편 됐승께 고맙지라”는 투였다. 대신 큰 정치 지형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상무지구 커피숍에서 만난 박두일(51)씨는 “2002년에 왜 광주가 한화갑을 안 찍고 부산 사람 노무현을 찍었을까요. 이왕이면 될 사람을 밀어야재”라고 했다. 주부 김영숙(45)씨는 “여기 사람들은 전략적 투표가 몸에 배어 있다. 모두가 정치전문가”라고도 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서 만난, 대학교수라고 본인을 소개한 중년 남성은 “한동안 호남에서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높던 안철수 인기가 왜 빠진 줄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경남·부산에서 자기 사람을 못 내놓잖아요. 그것에 실망한 겁니다. 광주는 광주만 보지 않고 전국을 다 봅니다. 지금은 합쳤으니 우선 안철수를 밀지만 (안철수) 힘 빠지면 싸늘하게 돌아설 겁니다”라고 했다.

 대전의 반응은 잠잠한 편이다. 안철수 의원은 이곳의 KAIST 교수를 했던 연고가 있다. 대전역에서 만난 회사원 박상희(42)씨는 “안철수 통합 신당에 대한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욕하는 사람도, 좋다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아마 지역색보다는 세대나 개인적 성향에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서울특별시 천안구라는 말을 이쪽에선 심심치 않게 쓴다. 그만큼 충청 지역이 수도권과 연동화됐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안철수-민주당 통합 신당이 부산·광주·대전의 광역단체장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부산에선 현재 무소속으로 출마한 오거돈씨의 인기가 대체로 높은 편이다.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거론되는 3인(권철현·서병수·박민식)과의 양자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부산 지역 관계자는 “4년 전 김정길씨가 야당 후보로 나왔을 때도 5%포인트밖에 이기지 못했다. 그에 반해 오거돈씨는 과거 두 번이나 낙선해 시민들이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망했다.

 관심은 오씨와 신당의 역학 관계다. 부산의 택시 기사 정진강(58)씨는 “서민적이라 오거돈이 좋긴 한데 미덥지가 않아. 당선되면 안철수 쪽으로 홀랑 갈 거 아냐”라고 했다. 국제시장 건어물가게 사장은 “오거돈이 새누리로 나오면 딱인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광주에선 달랐다. 양동시장의 한 상인은 “강운태(현역 시장)나 이용섭(국회의원)이나 거기서 거기여”라고 했다. 오히려 “서울 시장 누가 유리하여? 정몽준처럼 돈 많은 사람 되면 서민들한테 힘들텐디”라며 서울시장 선거에 더 관심을 보였다. 대전의 경우 여야의 대진표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탓인지 취재에 응한 시민들은 대개 예비 후보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