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한반도 하늘에 무슨 일이…
‘우리 혜성 이야기’ 펴낸 역사천문학자 안상현씨
▲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혜성 연구가 우리나라 천문학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삼국시대 초기부터 2000년 넘게 보관돼 있던 우리 조상의 혜성 관측 기록을 모아 정리한 책, ‘우리 혜성 이야기’(사이언스북스)를 냈다. 안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20일 서울 광화문 주간조선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우리 천문 관측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체계적이고 우수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근대 천문학을 전해 준 칼 루퍼스라는 인물은 ‘고대 한국의 천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관측 자료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규칙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실제로 2000년 사료를 죽 살펴보다 보면 지금 보아도 놀라운 기록들이 많아요.”
안 선임연구원이 서울대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전공 분야는 천체물리학 쪽이었다. 그러나 2001년 사자자리 별똥소나기를 계기로, 영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우리나라의 고서를 읽으며 역사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천문학계에서 어떤 발견이 있었는지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사’입니다. 천문학적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유물을 연구하는 것은 ‘고고천문학’인데요, 첨성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본, 미국 별자리가 다 다르잖아요. 그것을 연구하는 건 ‘민속천문학’ 분야입니다. ‘역사천문학’은 과거의 관측 자료를 현대의 천문 과학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혜성 이야기’에는 역사천문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우리나라 혜성 관측 역사가 죽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은 하늘을 관측하는 관원과 관청을 따로 둘 정도로 천문에 관심이 많았다. 삼국통일 전 신라에는 사천대(司天臺)라는 관청이 있어 천문박사들이 관측 업무를 맡았고, 백제에는 일관(日官), 고구려에는 일자(日者) 등의 직책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서운관(書雲觀)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을 세워 꾸준히 천문을 관측했다. 특히 혜성이나 별똥 같은 현상은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관찰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고려 초기의 150년 정도 기록이 유실됐다는 것입니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936년이었는데, 1100년에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상당히 많은 자료가 불타 없어졌어요. 이 중에는 고려 서운관의 자료뿐 아니라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며 들고 왔던 신라시대의 관측 자료들도 포함돼 있었지요.” 안상현 연구원은 “1054년에 폭발한 게성운 초신성을 관측한 자료도 있었을 텐데 유실돼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이 천문 관측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핼리 혜성이 관측됐을 당시 영조의 가장 큰 관심사는 혜성의 ‘꼬리가 어느 방향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안 연구원은 “혜성 꼬리 방향이 나타나는 지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꼬리가 서남쪽을 향했다는 보고를 듣고 영조는 ‘내가 부덕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영조 46년(1770년)의 승정원일기를 보면 천문 관측의 이유를 밝혀 “나는 측후(관측)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저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저 하늘이 굽어살피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안 연구원은 “우리 조상의 관측 방식은 과학적이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과학적이지만은 않았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조상의 관측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 현재 천문학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만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100년, 200년 주기로 도는 혜성의 경우에는 지금 나타난다 하더라도 옛 기록을 분석해 그 주기를 밝힐 수 있고, 서구에서는 관측됐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묘연하던 관측 사실들을 우리 자료를 통해 밝힐 수 있습니다.” 안상현 연구원은 “아직도 남아 있는 자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천문학 분야는 그렇지 않아도 얕은 우리나라 천문학 인프라 중에서도 유독 연구 인력, 자원 등이 부족한 편이다. “역사천문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학문입니다. 천체물리를 모르면 자료를 현대 천문학 이론으로 분석할 수 없고, 한문을 읽을 줄 모르면 자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역사천문학자라고 해봤자 전국에 20~30명 남짓인데, 그나마도 천문학을 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은 5~10명에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할 일이 더 많기도 하다. 최근에는 온종일 666년에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학 연구서를 번역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안상현 연구원은 “왜 옛날 혜성 관측 자료를 연구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금 되짚었다. “망원경이 발명된 것은 400년 된 일입니다. 워낙 먼 거리의 별들을 관측하다 보니 빛을 관측해서 어떤 원소로 이뤄졌는지 분석하는 분광학이 필수적인데, 분광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150년 됩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천문 관측 역사는 2000년입니다.” 안 연구원은 “이번에 분석한 혜성 자료는 물론 앞으로 재해석될 수많은 자료가 우리 천문학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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