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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중국 초한지 파촉에 대해서 (네이버 지식 2012.01.26 09:00)

중국 초한지 파촉에 대해서

 

원래 파(巴) 지역과 촉(蜀) 지역을 합쳐 파촉(巴蜀)이라고 부르며 은 오늘날 중국의 사천성(四川省) 지역을 말하는데 파(巴) 지역은 오늘날의 충칭(重慶) 일대를 말하고 촉(蜀) 지역은 오늘날의 청두(成都) 일대를 말합니다.

전국 시대에 진(秦)나라의 영역이 되었고 기원전 206년에 진나라가 멸망한 뒤 항우가 유방에게 한중(漢中)과 파촉(巴蜀) 지역을 줘서 한중왕(漢中王)으로 삼았는데 유방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후에 항우를 치고 중국을 통일하여 한(漢)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파촉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은 매우 험난해서 잔도(棧道)라고 불리우는 길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파촉(巴蜀)은 서촉(西蜀)이라고도 하는데 파촉이란 지금의 중경(重慶)을 중심으로 한 파국(巴國)과 성도(成都)를 중심으로 한 촉국(蜀國)을 합한 지명으로, 현재의 사천성(泗川省) 전역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서촉과 파촉은 구별되는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촉의 서북부는 곤륜산맥(崑崙山脈)에 의해 가로막히고, 동북부로는 대파산맥(大巴山脈)이 솟아 있어 섬서성·호북성과 격리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 가다 보면 5천 미터가 넘는 대설산(大雪山)을 만나는데, 그 산을 넘으면 티베트 고원이다. 남쪽으로는 봉산산맥이 내달려 운남성 귀주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면이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파촉 땅은 중원의 서남단에 위치한 변경 지역이긴 하였지만 사방 2천 리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후한 말에 이르러 익주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촉한(蜀漢)은 유비가 조조의 위나라에 대항해서 파촉 땅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로 한중(漢中)도 포함됩니다.
원래 형주의 일부도 촉한의 영토였으나 손권의 오나라와의 분쟁에서 상실하게 됩니다.

중원에서 파촉으로 들어가려면 두 가지 길밖에 없는데 하나는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험지인 삼협(三峽)을 건너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촉(蜀)의 잔도(棧道)를 통하여 들어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삼협이란 장강의 수로 중 가장 험난한 곳인 황우협(黃牛峽)·무협(巫峽)·구당협(瞿塘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양쪽 기슭은 기괴한 봉우리와 절벽이 솟아 있고, 그것을 깎을 듯이 장강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끓어오르는 곳이었습니다. 키가 꺾이고 돛대가 부러지는 일은 다반사였기 때문에 매우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아래는 잔도 사진)


http://www.cots.cn/changjiangsanxia/sanxiagujiandao.htm


http://www.people.com.cn/BIG5/wenyu/68/20020920/827020.html


http://www.easy-linkholiday.com/big5/jingdianp2.asp?jd_id=4293

유방은 파촉으로 넘어가면서 장량의 계책에 따라 잔도를 모두 불태워버렸는데 이는 관중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함으로서 항우에게 거역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으며 동시에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여 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중국 대륙의 서남부 지역으로 해발 3000m가 넘는 산들이 수도 없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사천(西川)성 지방으로 우리에게는 서천이라는 말이 익숙하죠

초한지에서 유방이 항우로부터 받았던 땅이자

유비가 촉한을 세우는 곳으로

이 당시 익주라고 불렸습니다.

험준한 산악지역이지만 청두분지(성도분지)와 같은 곡창 지역이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인구가 살았었고 황하 일대 못지 않게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다만 대륙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중원으로 진출이 어려운 지형때문에

항우가 이를 간과하고 유방에게 파촉지방을 맡겨버린거죠

익주남부는 파촉과는 다른 지역입니다

지금은 운남성이라 부르는 지방으로 당시에는 이곳은 미개척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