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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아이디어

[만만한 노벨상]화학상 심층 해설 (동아사인스 2009.10.09)

[만만한 노벨상]화학상 심층 해설

단백질 공장…한국인 과학자의 아쉬운 탈락

2009년 10월 09일

‘아깝다!’

7일 밤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소식을 보고 기자는 내심 놀라면서도 실망했다. 놀란 이유는 기자가 예상한대로 리보솜의 구조를 밝힌 연구가 선정됐기 때문이고 실망한 이유는 이 주제가 선정될 경우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한국인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김성호 교수로 1970년대 전달RNA(이하 tRNA)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해 그동안 노벨상 후보로 자주 거론돼 왔다.

전달RNA는 70~80개의 염기로 이뤄진 ‘ㄱ’자처럼 생긴 분자다. 김 교수는 수년에 걸친 시도 끝에 전달RNA 결정을 만들어 여기에 X선을 쪼여 얻은 회절패턴을 분석해 1974년 전달RNA의 3차원 구조를 규명했다. DNA나 단백질에 비해 RNA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분자였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결정을 만들어 구조를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김 교수의 연구로 RNA도 결정을 만들어 구조를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이후 과학자들은 담대한 도전에 뛰어들었다. 거대한 RNA와 수십 개의 단백질로 이뤄진 복합체인 리보솜의 결정을 만들어 그 구조를 밝히는 프로젝트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마침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도전이 노벨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 리보솜 구조 규명에 이르는 과정은 ‘과학동아’ 2008년 1월호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1974년 김성호 교수의 전달RNA 3차원 구조 규명’ 참조.)



기자는 tRNA 구조규명만으로는 노벨상이 주어지기에 좀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리보솜 구조규명에 대해 상이 주어질 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RNA와 수십 개의 단백질로 이뤄진 복합체인 리보솜의 구조는 지난 2006년 사실상 전모가 파악됐기 때문에(수상자의 한 사람인 토머스 스타이츠 교수팀이 ‘사이언스’ 9월 29일자에 발표한 논문) 노벨상 수상은 사실상 시기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리보솜 구조규명이 왜 이처럼 대단한 성과일까.

단백질 공장의 비밀 밝혀

리보솜은 박테리아에서 사람까지 세포로 이뤄진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세포내 소기관이다. 리보솜이 이처럼 필수적인 이유는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이기 때문이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췌장세포가 인슐린 단백질을 만들려면 세포핵 속에 들어있는 인슐린 유전자(DNA)의 본(전령RNA, 이하 mRNA)을 떠 이를 세포질에 있는 리보솜으로 가져간 뒤 여기서 인슐린단백질을 합성한다.

실처럼 생긴 mRNA 분자의 염기 3쌍마다 아미노산 하나의 정보를 담고 있다. 이를 코돈이라 부른다. mRNA가닥이 리보솜에 자리잡으면 코돈의 염기에 상보적인 염기(안티코돈)를 지니는 tRNA가 달라붙는다. tRNA 분자의 한쪽 끝에는 해당하는 아미노산이 붙어있다.

리보솜에는 tRNA가 붙는 자리가 두 곳(A자리, P자리) 있다. P자리에 있는 tRNA의 아미노산 사슬은 A자리에 새로 들어온 tRNA의 아미노산과 결합한다. 자유의 몸이 된 tRNA는 리보솜을 떠나고 A자리에 있는 tRNA(아미노산 사슬을 달고 있는)가 P자리로 옮긴다. 다시 빈 A자리에 mRNA의 다음 코돈에 해당하는 tRNA가 들어오고 앞의 과정이 반복된다. 이렇게 형성된 아미노산 사슬이 3차원적으로 뭉쳐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같은 리보솜의 대략적인 기능은 수십 년 전에 밝혀졌지만 실제 분자수준에서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면 리보솜의 구조를 먼저 규명해야 했다. 리보솜은 10만개가 넘는 원자로 이뤄진 거대한 분자복합체다. 리보솜은 큰 단위체(50S, S는 침강계수로 값이 클수록 큰 분자다)와 작은 단위체(30S)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리보솜 전체의 구조를 밝히기에 앞서 각 단위체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

수상자의 한 사람인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아다 요나트 박사는 1980년 처음으로 50S 단위체의 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뒤 요나스 박사팀은 좀 더 품질이 좋은 결정을 만들어 X선을 쪼여 회절 패턴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회절은 빛이 크기가 파장 길이 정도인 구멍을 통과할 때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이다. 분자를 이루는 원자사이의 거리가 X선의 파장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이 회절패턴을 수학적으로 처리하면 분자의 3차원구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리보솜은 덩치가 너무 큰 분자여서 당시 요나스 박사팀이 얻은 데이터만으로는 구조를 밝히는데 부족했다.

1990년대 미국 예일대 토머스 스타이츠 교수팀은 중금속을 이정표로 써서 리보솜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다. 스타이츠 교수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한 광주과기원 생명과학과 엄수현 교수는 “리보솜 결정에 중금속 용액을 넣으면 중금속 이온이 리보솜의 특정한 부분에 자리한다”며 “X선이 중금속을 만나면 강하게 회절하므로 중금속의 공간배치를 알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리보솜을 이루는 원자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스타이츠 교수팀은 마침내 50S 단위체의 3차원 구조를 밝혀 ‘사이언스’에 16쪽에 이르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저널에 실리는 논문이 보통 3~4쪽인 걸 감안하면 이 연구결과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해 요나트 박사팀도 비슷한 방법으로 30S 단위체의 구조를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명연구소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박사팀 역시 같은 해 30S 단위체의 구조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두 단위체가 결합된 리보솜 전체의 구조는 2005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도드나 케이트 교수팀이 규명했다. 그리고 2006년 스타이츠 교수팀은 리보솜에 mRNA와 tRNA가 붙어있는 상태, 즉 단백질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상태를 결정화하는데 성공해 입체구조를 규명했다. 30여년에 걸친 리보솜 구조 연구의 대단원인 셈이다.

신약개발 아이디어의 보고

스타이츠 교수팀과 라마크리슈난 박사팀은 리보솜 구조연구를 바탕으로 리보솜의 작동 메커니즘을 분자차원에서 규명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그 결과 리보솜을 이루는 거대한 RNA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촉매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tRNA 역시 단순히 아미노산을 전달할 뿐 아니라 아미노산 사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촉진하는 걸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밀하게 밝혀진 리보솜의 구조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정보가 될 전망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리보솜은 세포로 이뤄진 생명체에 필수적인 분자이기 때문에 병균의 리보솜을 무력화시킬 경우 병균을 퇴치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개발된 항생제의 절반가량이 세균의 리보솜에 작용해 효과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들 대다수는 애초에 리보솜 무력화를 목표로 설계된 건 아니고 자연에서 찾거나 무작위로 실험실에서 만들어 써 온 항생제의 작용 메커니즘이 나중에 밝혀진 결과다.

그런데 리보솜의 정밀한 입체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앞으로는 처음부터 리보솜을 목표로 한 약물을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식을 구조기반약물설계(SBDD)라고 부른다. 최근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이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매년 9만명이 항생제내성세균(슈퍼 박테리아)로 사망하는데 20년 전에는 1만 3000명 수준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항생제 개발이 시급한데 리보솜 구조가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번 노벨상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