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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하여 큰 도둑 되자” (중앙일보 2010.05.20 00:17)

“협동하여 큰 도둑 되자” … 남대문 다리 밑 거지대장 체포되다

2010.05.19 19:08 입력 / 2010.05.20 00:17 수정

개천 축대 밑에서 국수를 먹는 지게꾼을 넝마 망태를 걸머진 어린아이가 쳐다보고 있다. 조선시대 개천의 다리 밑은 거지들의 소굴이었고, 그래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이 생겼다. 서울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광교·수표교 등의 교각에 ‘살모사’ ‘구렁이’ 등의 글자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 역시 거지들이 ‘땅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출처 :『민족의 사진첩』)

일정한 주소가 없이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는 윤태순 30세 된 자 등은 경성 남대문 안 수각다리(현 남대문로4가 1번지에 있던 다리) 아래에 소굴을 정하고 부하들과 한데 모여 살면서…
낮에 빌어먹으러 돌아다니다가 남의 집 모양과 사람이 있고 없는 것을 자세히 보아 두었다가 밤에 가만히 들어가 마음대로 무슨 물건이든지 훔쳐오는 터이라.
어떤 날 단장이 부하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의 하는 일은 항상 좀도둑에 지나지 못하여 값 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집어오지 못하니 이래서야 단체를 발전시킬 수 없은즉, 단원 일동은 힘써 크게 협동하여 하루라도 일찍 다리 밑 굴을 떠나 큰 도둑의 소굴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한 뒤 왜못 한 개를 가지고 어디든지 능히 들어가는 비밀한 술법을 단원 일동에게 가르쳐 주고… 단원은 각각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훔치고 더욱 크게 활동을 시작하다가 불행히 체포되어… 방금 취조 중이라더라.’(매일신보 1914년 5월 19일자 ‘걸식단장(乞食團長)의 전령(傳令)’ 중)

과거 서울 사람들에게는 ‘서울 깍쟁이’라는 비칭(卑稱)이 따라붙었다. 이 말이 생긴 것은 농촌의 과잉 인구가 급증한 18세기쯤이었는데, 한때는 개성·수원 사람들도 깍쟁이로 불렸다. 깍쟁이의 원뜻은 거지이나 현재는 ‘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 ‘얄미울 정도로 약빠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그리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미국인에 대한 일반적 비칭으로 쓰이는‘양키(Yankee)’도 비슷한 예다. 이 말은 자기들이 건설한 뉴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을 영국에 빼앗긴 네덜란드인들이 그 지역 영국인들을 ‘존(John)’의 네덜란드 발음인 ‘얀’으로 부른 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후 남북전쟁 때 남군이 북군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면서 일종의 ‘욕설’로 정착했지만, 그래도 뉴욕 양키스 팬들은 이 이름을 사랑한다.

조선 말기 서울 거지들은 개천 다리 밑이나 동대문 옆 가산(假山)에 모여 살았는데, 가산에 땅굴을 파고 사는 거지들을 따로 ‘땅거지’ 또는 ‘땅꾼’이라고 했다. 영조 임금이 땅꾼들에게 뱀을 잡아 파는 독점권을 준 이래 땅꾼은 뱀잡이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은 유사 이래 인류의 보편적 욕망이었다. 근대사회는 이 욕망을 ‘죄’로 규정하고 거지를 ‘불로소득자’의 대표격으로 내세웠지만, 그에 따르는 ‘벌’은 미미했다. 더구나 오늘날 이런 욕망에 씌워졌던 죄의 굴레는 완전히 벗겨졌다. ‘깍쟁이’란 말이 더 이상 욕으로 들리지 않게 된 것도 이런 세태 때문일 것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