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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4> 1만원짜리 감지기의 기적 (한국일보 2010.10.27 22:21)

[화재와의 전쟁]<4> 1만원짜리 감지기의 기적

한국일보 | 입력 2010.10.27 22:21

"이 조그만 것이 불나면 소중한 목숨을 살려준다니 든든해요"
아파트·공동주택만 설치 의무화… 단독주택은 극소수
감지기 보급 늘린 미국·영국선 주택화재 사망 절반 줄어

#1 6월 12일 오전 3시25분께 강원 홍천군 박모(57)씨의 한옥 주택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서가 추산한 재산 피해는 약 1,800만원 정도였고, 진화시간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박씨는 집안에서 숨을 거뒀다.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에 불이 난데다 몸까지 불편했던 박씨는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 인천중부소방서 김용남 소방사가 26일 인천 동구 송림동의 한 독거노인 집에 단독경보형감지기를 단 뒤 점검을 하고 있다.

#2 올해 4월 8일 오후 11시30분께 부산 영도구의 한 단독주택에서도 화재가 나 집안에 있던 임모(54)씨가 숨졌다. 불은 5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 40여분 만에 꺼졌지만 임씨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목격자들은 "누군가 창문을 깨고 탈출을 시도하다 쓰러졌다"고 전했다.

이들 화재에는 몇 가지 닮은 점이 있다. 단독주택 화재에다 야간에 일어났다고, 모두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선 안될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집안에 화재 발생을 알려주는 감지 장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발생 초기 화재를 신속하게 인지했다면 유독가스가 집 안에 차기 전 밖으로 빠져나가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화재를 조기에 감지해 경보를 울려주는 단독경보형감지기는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탈부착이 가능하다. 가격도 1만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국내 단독주택에는 이 장치를 단 집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달 26일 오후 4시 인천 동구 송림동의 한 주택가. 초라한 단층 집들의 낮은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폭 1m 남짓한 골목길은 마치 미로처럼 꾸불꾸불 연결돼 있었다. 여기에 각종 잡동사니들이 길 한쪽에 쌓여 있어 화재 시에는 큰 피해가 우려됐다. 이곳에서는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층이 살고 있다.

이 동네에 지난 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화재와의 전쟁을 벌이는
소방방재청이 무료로 단독경보형감지기를 설치해 준 것이다. 쪽문을 열고 들어간 독거노인 박모(80·여)씨의 단칸방 천장에도 하얀색 화재감지기가 붙어 있었다. 박씨는 "항상 화재 걱정을 했는데 감지기가 있어 이제는 혼자 잘 때도 마음이 놓인다"며 "불 나면 죽을 것을 살려주는 거라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 1차로 혜택을 받은 이들은 독거노인 중에서도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노인들도 소방관들의 설명을 통해 감지기의 정체를 알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독거노인인 송모(70·여)씨는 "혼자 살기 때문에 불이 나도 바로 알기 힘들고, 대비하기도 힘든 데 감지기가 그 역할을 대신해줘 든든하다"고 말했다.

관할 인천중부소방서 장현호 예방총괄주임은 "독거노인들 집에 설치한 감지기는 1년 뒤 배터리를 교체해 주는 등 사후관리도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독경보형감지기는 화재 피해를 막아 주는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장비다. 화재 시 사망 원인은 대부분 대피 지연과 그로 인한 유독가스 흡입이라 한시라도 빨리 화재 발생 사실을 알아 신속히 피할 수 있다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감지기 보급정책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일찍부터 추진해 온 선전국에서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27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77년 주택 내 경보형감지기 보급률이 22%일 때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5,865명이었는데 감지기 보급률이 94%로 증가한 2002년에는 사망자가 2,670명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25년간 감지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주택 화재 사망자는 매년 128명씩 하강곡선을 그렸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1998년 경보형감지기 보급률이 8%였을 때는 주택화재 사망자가 732명이었지만 보급률이 81%로 올라간 2001년 사망자는 486명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