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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다음 백과사전)

묵자

BC 39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난세에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주장하며 천하를 누빈 묵가의 실천 강령이다. 전국시대에 유가에 대항한 묵자의 언행을 모은 것으로, 모두 71편으로 묶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절장(節葬)」,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악(非樂)」, 「비명(非命)」의 10대 주장과 묵자의 인물상을 전하는 「공륜(公輪)」, 후기 묵가의 윤리적 사유인 「경(經)」, 「경설(經說)」, 「수비 방법」 등 53편이다.

 

작은 도리는 알고 큰 도리는 모른다

오늘날 군자라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입으로만 그렇게 말할 뿐, 정작 자신이 정치 지도자의 입장에 서면 능력 있는 인물을 발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작은 도리는 잘 알지만 큰 도리는 모르고 있다. 왜 그런가?

예를 들면, 위정자는 가축을 죽여 음식을 만들 때 자신의 손으로는 가축을 죽일 수 없으므로 반드시 솜씨 좋은 요리사를 고용한다. 또 옷을 만들어 입을 때도 반드시 솜씨 좋은 재봉사를 고용한다. 곧, 위정자는 가축을 죽이거나 옷을 만들어 입을 때는 연고나 재산, 신분, 용모 등에 사로잡혀 능력 없는 자를 기용하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맛이 없는 요리는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위정자는 능력 있는 자를 발탁하려는 자세를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연고와 재산, 신분, 용모가 중시되고, 그 조건에 맞는 사람만을 등용한다. 위정자에게 국가 따위는 활이나 말, 옷이나 가축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작은 도리는 알면서도 큰 도리는 모른다는 나의 비판은 이런 뜻이다. 이러한 위정자의 태도는 벙어리를 외교 사절로 보내고, 귀머거리를 악사로 삼는 일과 같다. 「상현」 하편

겸애인가, 별애인가

‘천하의 해악’을 제거하고 ‘천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자(仁者)의 사명이다. 천하의 해악 가운데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고, 큰 씨족이 작은 씨족을 괴롭히고, 강자가 약자를 치고,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고, 가짜 군주가 백성을 속이고, 귀족이 평민을 경멸하는 일 등이 거기에 속한다. 군주가 횡포를 부리고, 신하가 충성하지 아니하며, 부모가 애정이 없고, 자식이 효도하지 않는 것 등도 ‘천하의 해악’이다. 무기를 손에 들고, 독약을 뿌리고, 물과 불로 공격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육하는 일도 ‘천하의 해악’이다.

이렇게 수많은 ‘해악’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일까? 아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해악을 주는 행위, 그것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아야 한다’라는 겸애에서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차별해야 한다’라는 별애에서 생기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후자 때문이다.

그렇다면 별애야말로 ‘천하의 해악’이며 그 원천이다. 내가 별애를 대신해 겸애를 주장하는 것은 왜일까?

만일 제후가 자기 나라처럼 다른 나라를 위해 힘을 쓴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를 내 몸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만일 경대부(卿大夫)가 자신의 일족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씨족을 위해서 힘을 쓴다면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상대가 내 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내분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그것은 천하의 ‘이익’인가, ‘해악’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천하의 이익’이다.

이렇게 수많은 ‘이익’은 어디서 생기는가? 그것은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게 해악을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겸애야말로 ‘천하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겸애에 반대하는 의견은 끊이지를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겸애의 입장은 우리 부모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며, 효도를 방해하는 것이다.”

도대체 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부모를 소중히 여겨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무례하게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당연히 그는 전자가 옳다고 할 것이다.

남에게 소중한 취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부모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남의 부모라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좋은가? 아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부모를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부모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시경』의 「대아편(大雅篇)」에 실린 〈억(抑)〉이라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에는 말을, 덕에는 덕을
남이 복숭아를 준다면, 나는 자두를 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사람을 미워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 천하의 선비가 겸애라는 말만 하면 금방 반대하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겸애」 하편

도둑질은 나쁘고, 침략은 정의인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가 남의 과수원에 몰래 숨어들어 복숭아와 자두를 훔쳤다고 하자. 만일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것이고, 관리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 남자를 잡아서 벌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만일 이 남자가 남의 개나 양, 닭이나 돼지를 훔쳤다면 어떤가? 그 불의는 과수원에 숨어들어 복숭아나 자두를 훔친 것보다 더 심하다. 왜냐하면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더 심각한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그 행위는 불인(不仁)이다. 따라서 그 죄는 더 무겁다.

만일 이 남자가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옷이나 칼을 빼앗았다면 어떠한가? 그 죄는 남의 집에 들어가 말이나 소를 훔친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그 행위는 심한 불인이며, 따라서 그 죄는 더 무겁다.

이처럼 천하의 군자는 모두가 다 이 남자를 비난하고, 그것이 불의임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군자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커다란 불의에 대해서는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행위를 찬양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그 자체를 ‘정의’라고 한다. 대체 그들은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사람 하나를 죽이면 불의라 하여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 만일 이 논리에 따른다면, 사람을 10명 죽이면 10번, 100명을 죽이면 100번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이런 범죄에 대해 천하의 군자들은 한결같이 그 행위를 비난하고 그것이 불의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라고 말한다. 그들은 침략 행위가 불의라는 도리를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공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려 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불의라는 사실을 안다면, 전쟁이나 그 업적을 기록해 후세에 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불의에 대해서는 비난하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큰 불의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의’라고 하는 자, 그는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군주의 모습이다. 그들은 정의와 불의의 구별을 얼버무리고 있다. 「비공」 상편

유가의 ‘예악(禮樂)’에 반대한다

고대의 성왕이 세상을 떠나고 천하에 정의가 사라지자, 후세의 군자들 사이에서는 죽은 사람을 성대히 보내고 오래도록 복상하는 것이 인(仁)과 의(義)의 도리에 맞으며, 효자가 할 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오늘날, 사회 지배층의 대부분은 후장구상(厚葬久喪)각주[1] 풍습을 지키고 있다.

그 풍습의 내용은 이렇다. 관곽(棺槨)은 반드시 이중 구조로 만들어야 하며, 매장할 때는 반드시 땅을 깊이 파야 한다. 죽은 자에게는 반드시 여러 벌의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문양이나 자수를 한 복식품을 함께 넣어야 하며, 무덤은 반드시 흙을 높이 쌓아 구릉처럼 만들어야 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이러하므로 평민이나 천민도 그것을 따라 해 장례를 치르고 나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만다. 사정이 이러니 제후가 죽으면 국고가 텅 비어 버린다. 곧, 국고를 모두 죽은 자를 장식하는 금은주옥을 구입하는 데 쏟아붓고, 나아가 막이나 휘장, 솥과 곡식 그릇, 책상, 방석, 항아리, 물그릇, 창, 검, 새의 깃털, 쇠꼬리로 장식한 깃발, 상아나 코뿔소 가죽 등을 죽은 자와 함께 묻는다.

더 나아가 죽은 자를 보낼 때는 거대한 희생도 따른다. 천자가 서거했을 경우, 순장자가 많을 때는 수백 명에서 적을 때는 수십 명에 이른다. 장군이나 대부의 경우는 많을 때는 수십 명, 적을 때도 여러 명이 희생된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

위정자는 조정에서 소송과 정치를 담당할 수 없게 되고, 사대부는 오관육부(五官六府)에서 보아야 할 나라의 행정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척 사업으로 국고를 가득 채울 수 없게 된다.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고, 장인은 배나 수레, 기구 등을 제조할 수 없게 된다. 부인도 이른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베를 짤 수 없게 된다.

요컨대, 후장구상의 풍습이 정치에 파고들면 나라는 가난해지고, 인구는 줄어들며, 질서가 무너진다. 이러한 풍습은 성왕이 걷는 길이 아니다. 「절장」 하편

유가의 본질을 폭로한다

유학자는 숙명론을 주장한다. 장수와 단명, 가난과 부, 안정과 혼란 등은 모두 하늘이 결정하는 일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고, 곤궁과 영달, 상과 벌, 행복과 불행 등도 모두 정해져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이런 숙명론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관리는 직무에 태만하고, 농민은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관리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농민이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농업이 쇠퇴해 나라가 가난해진다. 가난과 무질서는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유학자는 이러한 숙명론을 ‘도(道)’, ‘성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천하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학자는 예를 번잡하게 만들고, 악(樂)을 화려하게 하여 사람을 타락시킨다. 오랜 시간 복상하고 슬픈 척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모독하는 일이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가난에서 탈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고결하다고 믿는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거만한 태도를 취한다. 배 터지게 먹고 마시는 주제에 노동을 천시하니, 이 세상에 배고픔과 추위가 끊일 날이 없다. 이것은 마치 거지가 쥐새끼처럼 음식을 향해 달려들고, 양처럼 눈치를 보며, 거세된 돼지처럼 촐싹맞은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 그런 태도를 경멸하면 유학자들은 뻐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같은 놈들이 뭘 안다고.”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여름에는 곡식을 구걸하며 다니다, 추수가 끝나면 재빨리 장의사로 변신한다. 그것으로 일족이 모여 마음껏 먹고 마신다. 그런 식으로 몇 군데 장례식만 맡아도 충분히 살아간다. 곧, 그들은 남에게 기생해 배를 채우고, 남의 밭을 믿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자이다.

또한 유학자는 이런 말도 한다.

“군자는 종(鐘)과도 같다. 때리면 울지만, 안 때리면 울지 않는다.”

이 말은 알아도 가르쳐 주지 않고, 힘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으며, 알고도 모른 척하면서 상대가 질문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군주나 부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 해도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반란이 일어나려 한다, 도적이 들어오려 한다. 촌각을 다투는 순간들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그런 경우에도 군주나 부모가 묻지 않으면 말을 않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신하로서는 불충이고, 자식으로서는 불효이며, 형제에게는 부제(不悌)이고, 대인 관계에서는 부정(不貞)이다.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을 미덕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는 주제에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거침없이 말을 한다. 군주가 뭐라고 물어도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목에 뭐가 걸리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한다.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배운 것이 없습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모른 척하며 시치미떼고, 몸을 뒤로 뺀다. 이것이 유학자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비유」 하편

책 속의 명문장

治於神者 衆人不知其功, 爭於明者 衆人知之 / 치어신자 중인부지기공, 쟁어명자 중인지지
현명하고 성스럽게 다스리면 사람들은 그 공을 알지 못하고, 드러내고 다투면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준다. 성인의 다스림은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게 행해진다. 그래서 그 공을 모른다. 그러나 명예심에 사로잡힌 자는 자신이야말로 구국의 영웅이라며 그 공적을 떠들고 다니므로 나라 사람이 모두 알게 된다는, 말없이 실천한 묵자의 가슴 저미는 말이다. 초나라의 침략을 막아 낸 묵자가 송나라의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문도 열어 주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공수편(公輸篇)」
有力者疾以助人, 有財者勉以分人, 有道者勸以敎人 / 유력자질이조인, 유재자면이분인, 유도자근이교인
‘힘 있는 사람은 재빨리 남을 돕고, 돈 있는 사람은 힘써 나누어 주고, 도를 깨우친 사람은 남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 「상현」 하편
官無常貴, 而民無終賤 / 관무상귀, 이민무종천
‘관리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고귀하지 않고, 백성이라고 해서 끝까지 비천하라는 법은 없다.’

귀족이라고 해서 영원히 귀족이 아니고, 백성이라고 해서 영원히 백성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귀천이 없다. 세습적인 정치귀족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 「상현」 하편
功利於人, 謂之巧, 不利於人, 謂之拙 / 공리어인, 위지교, 불리어인, 위지졸
공수자(公輸子)가 대나무와 나무를 깎아서 까치를 만들어 사흘 동안 하늘에 날렸는데 떨어지지 않았다. 공수자가 그것을 자랑하자 묵자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까치를 만든 것은 공인이 수레 빗장을 만든 것만 못하오. 공인은 잠깐 사이에 세 치의 나무를 깎아 50석(石, 무게 단위)을 지탱하는 수레의 부품을 만들었소.”

그다음에 이런 말을 했다.

“사람에게 이로운 기술을 ‘교’라고 하고,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기술을 ‘졸’이라 한다.” - 「노문편(魯問篇)」
묵자

묵자는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서, 이름이 적(翟)이며, BC 5세기 중반에 태어나 BC 4세기 전반에 세상을 떠났다. ‘묵(墨)’은 얼굴이나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로 죄수를 의미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이 이 형벌을 당한 그를 멸시해 ‘묵’이라 했고, 그것이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魯)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학을 배웠지만, 이윽고 유가의 예악지상주의에 혐오감을 느껴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의 사상은 겸애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은 먼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면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인데, 그는 이것을 별애(別愛, 차별애)라고 하여 배척하고, 평등하면서도 무차별적인 사랑(겸애)을 주장했다. 인류의 행동을 감시하고 상벌과 화복을 주는 천제(天帝)와 귀신의 존재를 믿으며 천지(天志, 하늘의 뜻)를 받드는 일종의 종교적 계급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혈통에 의한 공족 · 귀족의 정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빈부 귀천에 관계없이 도덕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의 지배적인 지위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익을 중시해 인류 전체의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 유해하다고 했으며, 근로와 절약을 강조하고, 호화로운 장례식이나 화려한 음악을 부정했다.

이에 대해 유가에서는 ‘묵자는 실용성을 중시한 나머지 장식성을 망각했다’느니 ‘겸애설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금수와도 같은 사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귀족의 부패 정치나 세습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유가의 예악 존중이나 비행동성에 대한 비판이 사회 하층의 지지를 받아 묵자 신봉자가 급격히 늘었고, 이들은 유가에 대항하는 유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묵자는 단순히 이상을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실천을 중시했다. 때로는 제자 300명을 거느리고 대국의 침략 저지를 위해 일어서기도 했다. 그 전투적인 평화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중국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묵가의 활동은 전국시대의 종말과 함께 급격히 쇠퇴하고, 한나라에 이르러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자 사상계에서 완전히 말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