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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조선일보 2015.05.23 09:52)

[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보이스피싱 상륙 10년… 당하기만 하던 시민들, 이젠 逆攻

‘밥은 먹고다니나’ 놀려
시민들 복수심리 확산
말꼬투리 잡거나 욕설
사기범 당황하게 만들어

 

“밥은 먹고 다니세요?”

직장인 윤정현(32)씨는 지난 14일 서울지방경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서 이렇게 말했다. “네?” 주춤하는 상대의 틈을 윤씨는 놓치지 않았다. “쯧쯧, 요즘 사람들이 잘 안 속아서 먹고살기 힘들죠?” 사기범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씨는 “한 달에 네댓 번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는데 ‘요즘 실적이 어떠냐’ ‘고생이 참 많다’고 대응하면 오히려 그쪽에서 끊어버린다”고 말했다.

올해는 보이스피싱이 한국에 본격 상륙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초 피해 사례가 확인된 것은 2006년 5월이다. 당시 국세청을 사칭한 사기범들이 제주도 지역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금을 환급해주겠다’며 접근했다. 경찰청은 “대만과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던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했다”고 말했다.

	[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전국적으로 지난해까지 7만6868명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은 6536억원으로 집계됐다. 경찰청은 “실제 피해자는 최소 10만 명, 피해액 역시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보이스피싱은 한국인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KT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 건수가 7077만건으로 지난해 3월 2395만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5000만명 국민이 한 달에1.4회 이상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 전화 발신 건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시민들이 예전만큼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점잖게 전화를 끊던 시민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씨처럼 ‘밥은 먹고 다니느냐’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무슨 검찰 직원이 그러느냐’며 일장 훈계를 하는가 하면, 대놓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사기범들은 황급히 전화를 끊기 바쁘다. 시민들이 대반격에 나서면서 사기범들이 굴욕을 겪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전화 4번째인데…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시민들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인터넷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 등에는 ‘보이스 피식’ ‘보이스피싱 사기범 능욕’ ‘보이스피싱 역공’ 등 제목을 달고 있는 녹음 파일 200~300여개가 올라와 있다. 이 파일 내용을 들어보면 사기범에게 ‘고생한다’며 위로해주는 ‘연민형’이 가장 먼저 두드러진다.

#“제가 또 어떤 잘못 저질렀나요?”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녹음 파일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을 사칭한 전화를 받은 여성은 웃으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자 사기범은 “거 왜 웃으세요?”라고 묻는다. 이 여성은 “아니 자꾸 경찰·지검에서 전화가 와서요”라고 하고, 당황한 사기범은 “계속 이런 전화 받으셨어요?” 여성이 “네 지금 4번째인데”라고 하자, 사기범은 미리 준비한 대사로 공격에 나선다. “우리 여성분이 검찰 조사는 처음이시죠?” 계속 웃던 어머니가 옆에서 거든다. “여러 번 받았지.” 사기범은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린다. “아, 정말 웃겨.” 작업에 완전히 실패한 사기범에게 여성은 “아이고,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며 위로한다.

	[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주소간’은 대체 무슨 직함인가요?”

‘자폭형’도 있다. 김재명(43) 건양대 의료인문학교실 박사는 지난 20일 ‘부산 고등검찰청 형사 1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 검찰이라고요? 연락처가 어떻게 되시죠?” “공오일에 육공’류’에 삼삼공공…” 시나리오에는 없는 ‘숫자 읽기’ 요청에 조선족 억양이 나왔다. 사기범은 당황했다. “실례지만 전화 거시는 분은 누구신지?”라고 김 박사가 묻자 사기범은 “네, 저는 양동진 ‘주소간’입니다”고 답했다. “네? 주소… 뭐라고요?” 전화는 거기서 끊겨버렸다. 김 박사는 “아마 ‘주무관’을 ‘주소간’으로 말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Why] "밥은 먹고 다니세요?" 보이스피싱 받은 시민들 오히려 조롱



 

[Why] 납치사기 전화 받은 30代, 속은척하더니 '18원' 입금 조롱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꼬투리형’도 빠뜨릴 수 없다. 꼬투리 잡기는 주로 유창한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기범을 제압하는 데 유용하다. 유튜브에 공개된 한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의 전화를 받은 한 여성은 “통장 명의 도용 사건에 연루됐으니 통장을 모두 가지고 나와 조사를 받으라”는 사기범에게 “담당 검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나오시면 담당 검사님 정해져요”라고 사기범이 답하자, “아니 담당 검사님이 없다고요?”라며 말꼬리를 잡는다. 사기범은 “조사할 사람이 200명이 넘어서 검사 한 사람이 맡을 수 없다”고 답하지만 여성은 “원래 담당 검사 아래 수사관 붙는 것 아니냐”며 추궁한다. 크게 낙심한 사기범은 결국 “야 이 ×××아, 나오라면 나오지 뭘 이리 꼬치꼬치 캐묻느냐” 욕설을 내뱉으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야 이 ×××야, 죽고 싶냐?”

드물지만 ‘욕설형’도 있다. 직장인 허모(30)씨는 지난 1월 “너희 어머니를 납치했으니 5000만원을 입금해라”라는 전화를 받았다. 허씨는 “제발 어머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말한 뒤 사기범이 말해준 계좌에 ‘18원’을 입금했다. “지금 우리랑 장난하냐. 너희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사기범에게 허씨는 말했다. “우리 엄마 지금 외국 여행 가셨는데 무슨 ××이냐.” 허씨는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Why] 납치사기 전화 받은 30代, 속은척하더니 '18원' 입금 조롱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공동체적 복수’로 해석했다. 곽 교수는 “실제 본인은 피해 경험이 없더라도 주변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복수심이 생긴다. 이 복수 심리가 10년 동안 공동체 전반으로 확산됐다. 시민들은 사기범들에게 심리적 치욕과 모멸을 안겨준 기록을 서로 공유하며 연대감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범들에게 골탕을 먹이는 것을 ‘일상의 유희’로 삼아 업무·학업 스트레스를 풀고, ‘나는 악당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단 끊는 것이 최선”

사기범과의 ‘친밀한 대화’는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기법으로도 활용된다. 지난 2월 경기 일산경찰서 보이스피싱 수사팀 김진성 형사에게 ‘시티캐피탈 직원’을 사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사기 쳐서 어디 밥 먹고 살겠어?” 김 형사의 말에 20대 초반의 조직원은 당황했다. 이어 “어디야? 중국? 필리핀?” “필리핀은 망고가 맛있는데” 라는 김 형사 말에 경계심을 내려놓은 순진한 조직원은 총책의 이름과 활동 범위 등 핵심 정보를 털어놓았다. 김 형사는 “사기범들의 나이가 어린 편이어서 수사 경험이 풍부한 형사들이 ‘동업자 형님’ 같은 말투로 자상하게 접근하면 쉽게 넘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일산서는 김 형사가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보이스피싱 총책 등 7명을 검거했다. 일산서 관계자는 “요즘 검거되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이젠 사람들이 잘 안 속아서 짜증난다’ ‘우리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때가 있어서 황당하다’고 진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가 펼치는 ‘역공’에 가로막힌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안양 동안서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70대 노인 등으로부터 3억여원을 뜯어낸 심모(22·중국)씨를 지난 18일 검거했다. 심씨는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 집안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말한 뒤 실제로 피해자 집을 방문해 가짜 금감원 신분증을 보여주고 돈을 챙기는 수법을 썼다. 서울 성동서 역시 같은 수법으로 2억5000여만원을 챙긴 안모(27)씨 등 8명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피해자 중엔 90대 노모를 혼자 모시고 살던 70대 노인도 있었다.

	[Why] 납치사기 전화 받은 30代, 속은척하더니 '18원' 입금 조롱

성동서 최용욱 지능팀장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노인들은 상대방이 ‘관(官)’을 들먹이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노인 상대 범죄는 이러한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기범들에게 지나친 모욕감을 안겨주면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가 자취방으로 피자 20판이 배달돼 곤욕을 치렀다. 이씨는 “주소까지 알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기범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가 ‘집으로 찾아가서 보복하겠다’는 협박 전화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 김현수 경감은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오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김 경감은 “대화든 욕설이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눠주는 ‘반응 전화번호’는 사기단 사이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며 공유된다. 개인정보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각종 리스트를 조합해 이름·전화번호·주소는 물론 직장과 가족관계, 금융·의료기록까지 총망라된 ‘A급 리스트’를 만들어 아예 표적을 설정해버릴 수도 있다. 이 그물망에 걸리면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말했다.



 

모르는 전화 걸려와 '돈 얘기'하면 끊으세요

(조선일보 2015.05.22 03:00)

[치밀해진 보이스피싱… '은행인데요'는 옛 수법, 이젠 국세청·금감원까지 사칭]

피해 건수 최근 다시 급증… 모르는 전화는 일단 의심
'범죄 연루' 운운하면 전화 끊고나서 해당기관에 확인해야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난 몇 년간 주춤하던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6년 6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보이스피싱은 2011년 8244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5709건, 2013년 4765건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7635건으로 급증하더니 올해 1~3월에만 2451건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6%나 증가했다. 피해액도 319억원으로 93% 늘었다.

◇그럴싸한 시나리오에 피해 속출

금융 사기의 고전(古典)으로 불릴 정도로 피해 사례가 많은 보이스피싱이 끊이지 않는 건 피싱 조직이 피해자들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 정도로 감쪽같은 시나리오를 짜 피해자를 낚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전화 걸려와 '돈 얘기'하면 끊으세요
과거 "은행입니다. 당신의 계좌 정보가 유출됐으니 ○○○ 계좌로 돈을 입금해주세요"라는 전통적 수법이 통하지 않자 최근엔 검찰·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하는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평범한 피해자들에게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을 준 뒤, 혐의를 벗기 위해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낚는 수법이다.

공무원 고모(36)씨는 최근 피싱 조직으로부터 자신의 계좌가 국제 금융 사기에 도용됐으니, 검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예금을 모두 찾아 금감원 지정 계좌에 보관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놀란 고씨는 돈을 입금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지인의 만류로 피해를 면했다. 피싱 조직이 A씨에게 직접 확인해보라며 알려준 검찰청 홈페이지 주소에 접속해 검색한 결과 A씨의 인적사항과 사건번호, 혐의 내용 등이 화면에 나타나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엔 현장에서 직접 돈을 받아가는 수법도 등장했다.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정모(77)씨는 "금융감독원인데 지금 선생님의 주민번호가 도용돼 계좌에 있는 돈이 전액 인출될 가능성이 있다. 즉시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해 집안 냉장고에 보관하라. 추후 금감원 직원이 직접 방문해 조회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급해진 정씨는 서둘러 1억원을 인출해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 후 금감원 직원인 척 집을 방문한 피싱 조직원은 정씨에게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해오라"고 시킨 뒤 냉장고에 있는 돈을 훔쳐 달아났다.

또 금융 기관을 사칭해 "계좌가 범죄 조직에 노출됐으니 현금을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라"고 지시한 뒤 지하철역에서 가짜 신분증을 보여주며 돈을 받아가는 방식, 녹음된 비명을 들려주고 자녀를 납치하고 있으니 당장 돈을 부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생활고에 찌든 가장들에게 '장기를 팔지 않겠느냐'고 접근해 장기 검사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까지 등장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가족이 사고를 당했으니 사고 처리를 위해 돈을 보내라고 하거나 금리가 낮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꿔주겠다며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 입금을 유도하는 수법도 대개 보이스피싱이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그냥 끊으라"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보이스피싱과 사이버금융 범죄에 당하지 않으려면 '의심·확인·무시'하는 버릇을 들이라고 경찰은 말한다.

회사원 김모(33)씨는 최근 해외 출장 중인 동료로부터 SNS를 통해 '갑자기 현금이 떨어졌는데 10만원만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씨는 혹시라도 SNS 명의 도용이 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전 여자친구 직업은 무엇이고 최근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과 같은 둘만 아는 질문을 했고, 더 이상 답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는 사기가 아닐까 '의심'을 하고, 범죄 연루 운운하면 일단 전화를 끊고 직접 해당 기관에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걸려온 전화가 사기 범죄로 등록·신고·접수된 번호일 경우 경고 메시지가 뜨는 '사이버캅' 앱을 설치하는 것도 보이스피싱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살인·강도 검거율은 90%를 넘고 있지만 지난해 보이스피싱 검거율은 54%에 그쳤다. 범죄 조직이 주로 중국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있어 수사 공조도 어렵고 피해자의 돈을 송금받는 계좌도 대포계좌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검찰·경찰·관공서·은행 등은 절대로 전화·문자로 개인 정보나 계좌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송금·인출도 유도하지 않는다"며 "대응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끊으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아니에요?" 몸 던져 피해 막은 경찰

(조선일보 2015.03.16 07:11)

휴대폰 든 다급한 시민 보고 보이스피싱 피해자 직감… 돈 입금 직전 휴대폰 뺏아

 

지난 6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차를 마시던 강동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김승수(50) 경위를 향해 이모(25)씨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이씨는 사복을 입고 있던 김 경위에게 "가까운 국민은행이 어디냐"며 재빨리 묻고는 대답을 듣자마자 정신없이 내달렸다. 시종일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않고 있는 초조한 표정의 이씨 얼굴을 본 김 경위는 순간 보이스피싱을 직감했다.

김 경위와 동료 경찰 2명은 이씨를 뒤쫓았다. 300여m 떨어진 은행까지 달리면서 김 경위는 "혹시 이상한 전화를 받고 있느냐" "보이스피싱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수차례 "아니다"며 부인했다. 김 경위가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며 자초지종을 들으려 했지만 이씨는 "지금 급하다. 제발 내버려두라"면서 저항했다. 보이스피싱임을 확신한 김 경위는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도착해 돈을 입금하려는 이씨를 몸으로 막고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전화가 끊기자 그제야 정신이 든 이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간호사인 이씨는 이날 오전 검사라는 사람으로부터 "당신 계좌가 대포 통장으로 사용됐다. 사기 공범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면 통장 정보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피싱 일당이 안내한 가짜 검찰청 사이트에 자신의 우리은행 계좌번호·비밀번호 등을 입력했고, 이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이씨의 계좌에서 680여만원을 인출했다.

피싱 일당은 "다른 은행 계좌의 돈도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해야 안전하다"고 재차 속였다. 이씨는 다른 은행을 찾아나섰다가 김 경위 일행과 마주치면서 더 큰 피해로 번지지 않았다.

경찰은 "정상적인 공공기관은 개인 정보를 요구하거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