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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태 풍

한라산 기슭, 태풍과 맞서는 최전선이 있다 (한겨레 2014.07.12 13:05)

한라산 기슭, 태풍과 맞서는 최전선이 있다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접어든 제주에서는 지난 9일 오전 최고 풍속 32.8m의 강풍이 몰아쳤다. 법환포구에 들어선 취재진의 우비가 강풍에 휘날렸다. 국가태풍센터 제공

[토요판] 르포
제주 국가태풍센터의 하루

▶ 태풍이 할퀴고 간 땅은 황폐합니다. 사람 목숨을 빼앗고 인간이 쌓은 욕망의 바벨탑을 무너뜨리지요. 강력한 자연현상은 때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다의 괴물이 어디로 가는지를 관측하며, 잘 피하고 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 24시간, 365일 태풍을 관측하고 위험을 예보하는 국가태풍센터를 다녀왔습니다. 태풍의 최전선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는 예보관들을 만나 보시죠.

한반도를 불안하게 한 태풍 너구리가 구렁이 담 넘듯 한반도를 비켜갔다. 제주 지역에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을 뿐 큰 피해는 없었다. 태풍 속보에 귀를 세우던 사람들은 이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방심하기에는 이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달과 오는 8월 사이에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상이 발생하는 엘니뇨를 예상했다. 동태평양 해상 수온이 상승하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발원지인 필리핀 동부 해상의 해수 온도도 높아진다. 열에너지를 충분히 얻은 태풍은 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1년 중 태풍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8월에 너구리보다 강력한 또 어떤 태풍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다.

최근 몇 년 새 큰 피해는 없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바다의 괴물, 태풍은 한반도를 집어삼켰다. 2002년, 태풍 루사로 246명이 숨지고 이듬해 매미가 강타하자 131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2006년에는 에위니아로 62명이 사망했다. 한반도를 비켜간 너구리가 할퀸 일본 열도의 피해도 극심하다. 3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했으며 일본 중부지역 나가노현에서는 시간당 70㎜의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무너져 내린 토사가 마을을 덮쳐 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구리가 제주와 일본을 향해 북상하고 있던 시기, 바다의 괴물을 만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서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을 관측하는 전초기지인 제주의 국가태풍센터를 가기 위해서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결항될 경우를 대비해 너구리가 제주 해상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 8일 오전 제주공항으로 날아갔다. 관광객이 제주를 빠져나가던 시기에 거꾸로 제주를 찾아간 것이다. 강풍과 폭우를 대비해 우비와 우산을 챙겨 제주에 도착했건만 공항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고 푸른데다 햇볕마저 쨍쨍했다. 너구리가 오고 있긴 한 걸까.

중형태풍 너구리 오기
4~5일 전부터 긴박감
14명의 예보관과 연구관
비생근무태세에 돌입하고
24시간 태풍을 감시한다 

기상청 본청, 위성센터와
화상회의하고 통화하며
태풍의 진로를 예측한다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에도
파수꾼의 사명감은 강하다

신속성이냐, 정확성이냐

세번 차를 갈아타고 한라산 중산간 해발 246m 지점에 도착하자 푸른 나무들 사이로 2층짜리 국가태풍센터가 보였다. 올해 한반도 주변을 찾아온 첫 태풍을 맞이하는 센터는 조용하다 못해 엄숙했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자리한 센터 외부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내부에 들어섰지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센터 1층 관리실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2층 통제실로 올라갔다. 예보관들이 위성 정보 등을 바탕으로 태풍의 강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센터 내에서도 핵심적인 구역이다. 이곳에서 하루 두차례 기상청 본청, 국가기상위성센터 등과 화상회의를 벌여 예보와 특보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접하는 태풍 예보의 원산지인 셈이다. 통제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에 놓인 가로 5.5m, 세로 2m 대형 모니터, 대형 모니터 좌우에 자리한 6개의 소형 모니터 화면이 보였다. 기상 정보를 품은 모니터 화면은 시시각각 변했다. 태풍의 눈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보 분석 시스템 자료, 구름과 바람의 흐름을 드러내는 수치 모델 예측 자료, 태풍의 강도를 가늠하는 자료 중 하나인 해수면 온도, 빗방울을 탐지하는 레이더 자료들이 화면을 메웠다. 너구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모든 것들이 이 비밀스러운 화면 속에 숨어 있었다. 고작 정직원 14명이 전부인 센터는 24시간, 365일 태풍을 감시하는 불을 밝힌다. 예보관들의 눈은 실시간 변하는 대형 화면 속의 위성 정보에 꽂혀 있었다.

8일 오전 너구리는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240㎞ 부근 바다까지 올라왔다. 시속 20㎞, 중심 기압은 925hPa, 태풍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은 초속 51m의 매우 강한 중형급 태풍이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3시, 제주도 남쪽 먼바다의 풍랑주의보를 태풍주의보로 대치하고 제주도 동부와 남부 앞바다는 풍랑주의보를 발효했다. 이런 기상 단계는 발효되기에 앞서 기상청이 사전에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준비해 둔다. 실시간으로 태풍의 속도와 강도, 방향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업데이트한다. 때문에 태풍센터는 너구리가 한반도 근처를 지나가기 4, 5일 전부터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태풍주의보가 발효되기 30분 전인 이날 오후 2시30분, 국가태풍센터 통제실에선 화상회의가 열렸다. 다른 지역 기상청들도 화상회의에 참여하지만 기상청 본청, 국가기상위성센터, 국가태풍센터가 이날 회의의 중심이다. 태풍센터 통제실 대형 화면의 오른쪽 절반은 기상청 본청 상황을 중계하고 왼쪽 화면은 그때그때 회의 내용의 토대가 되는 각종 위성사진을 보여준다. 화상회의를 텔레비전 뉴스에 비유한다면 본청은 메인 앵커, 다른 지역은 리포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풍주의보 발효는 전날 정해진 기조였고, 태풍의 향후 진로가 이날 회의의 핵심 의제였다. 회의에서 정해진 내용이 오후 5시 예보에 반영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실시간 전해지는 기상 정보는 이렇게 생성된다. 화상회의에서 기상청은 태풍센터를 불렀다.

기상청 본청: 태풍센터!

태풍센터: 네, 자료 보여드리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전반적으로 콘센서스 자체가 전 예보보다 (태풍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 예보와 비교해보면 36시간까지는 진로를 유지하고 그 이후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시나리오를 택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남쪽으로 밀리고 있기는 한데 굳이 지금 시점에서는 좀 그런 것 같고 새로운 자료 나온 것을 보겠습니다. 따라서 36시간까지는 지난 진로대로 영향 범위를 유지한 후에 그 후부터 (태풍이) 중남부로 밀리면서, 남부 연안을 따라 올라가는 것으로 현재 시나리오 잡고 있습니다. 태풍센터 말씀드렸습니다.

기상청 본청: 위성센터!

위성센터: 네, 위성센터입니다.

20여분 만에 공식 화상회의는 종료됐지만 예보에 관한 이견이 있을 때 본청과 센터는 수시로 전화통화로 의견을 조율한다. 세계적 슈퍼컴퓨터가 분석한 예측 모델 10여개가 태풍의 향후 진로를 보여주지만 저마다 다르다. 태풍센터는 하루 몇 차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일본의 지역특별기상센터(RSMC), 미국 하와이의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등으로부터 기상 정보를 제공받는다. 예보관은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별하고 태풍의 진로를 예측해야 한다. 결국 예보관의 손끝에서 예보는 결정된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서도 태풍센터 예보관들은 태풍 진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너구리를 밀어올리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 경로가 북쪽으로 계속 향하지 못하고 남쪽인 일본 규슈 지역으로 꺾이고 있다는 게 이슈였다. 신중한 강남영 예보팀장은 일단 예상 시나리오대로 기조를 유지하고 2시간 뒤에 나오는 유럽중기예보센터 자료를 보고 판단하자고 했다. 다른 예보관은 지금 진로를 수정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보다 늦다는 의견을 내놨다. 신속성과 신중함, 예보관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나 때로 상충하기도 한다.

강 팀장: 아직 전향에 대한 추이가 뚜렷하지 않아. 지금 만약에 꺾잖아. 그럼 혹시라도 만약에 변동 상황에 다시 대처하기가 어려워. 한번 더 기조를 유지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예보관: 어차피 남쪽으로 치우치는 것으로 조금씩 반영을 하기로 했잖아요.

팀장: 꼭 지금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예보관: 전체적으로 밑으로 깔리고 있어요.

팀장: 그렇지. 경향이 그렇다는 것은 다 아는데. 그리로 가겠지. 그리 갈 가능성이 높지만 먼저 앞서 나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예보관: 다른 예보는 8시간 전에 선수 치고 있는데 우리도 반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조금만 반영을 한 것이거든요.

팀장: 실질적으로 아직 턴(전환)에 대한 시그널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직 유동적일 수도 있어.

예보관: 본청 과장님도 동의를 하셨어요. 남쪽으로 가는 걸 동의한다고. 그럼 특보도 좀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냐, 그 이야길 하셨어요.

팀장: 알았어. 이렇게 갈 거야. 그렇지만 한 타임만 더 보냐, 안 보냐 그 차이인데…. 일본 탭스(수치 모델 예측 자료), 어떻게 나왔어?

제8호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고 있는 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통제실에서 화상회의를 마친 예보관들이 태풍의 진로를 놓고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피곤에 지쳐 구토 증세 보인 직원도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하면 예보관들의 근무 강도도 높아진다. 비상근무 태세에 돌입한 4명의 예보관은 4교대에서 2교대 근무로 전환하고, 연구관들도 업무 지원에 나선다. 태풍의 중심이 12시간 이내에 비상구역(북위 28도, 동경 132도)으로 이동이 예상될 때는 경계근무, 태풍이 비상구역 또는 경계구역(북위 25도, 동경 135도) 내에 위치하고 12시간 이내에 해상 예보 구역에 태풍 특보가 예상되면 비상 2급, 태풍이 비상 또는 경계구역에 위치하고 12시간 이내 육상 예보 구역에 태풍 특보가 예상되면 비상 1급이 내려진다. 8일 비상 2급이던 근무 태세는 다음날 오전 5시 비상 1급으로 바뀌었다.

밤새 태풍과의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면 예보관들의 건강에도 악신호가 켜진다. 한 예보관은 아침 7시 화상회의 중에 구토 증세를 보여 통제실을 급히 나갔다. 한반도가 직간접적인 태풍의 영향권 아래 놓이면 비상에 걸린 센터 직원들은 근처 식당조차 나가기 빠듯하다. 센터는 다른 국가 예보관들을 위한 교육도 진행하는데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풍센터 예보관들이 두달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갈 날을 앞두고 있었다. 직원들은 “(교육생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지금 센터 분위기가 이래서…”라며 걱정을 했다. 센터에서 정류장까지 걸어서 20분, 버스 또한 1시간에 1대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늘 점심을 먹는다. 밥, 된장국, 김치, 멸치, 닭볶음탕. 윤원태 센터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직원은 비상 1급 근무가 떨어진 9일 점심, 지하 작은 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뜨고 반찬을 담았다.

국가태풍센터의 연간 예산은 거의 매년 9억원을 넘지 못한다. 태풍 루사로 2002년 5조1479억원, 이듬해 매미가 찾아와 단 이틀 동안 4조2225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을 고심했다. 태풍센터가 세워진 이유도 태풍 예측을 정교화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기상청은 해발 1950m의 한라산이 버티고 있는 제주도가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태풍의 최종 진로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최적지로 보고 국가태풍센터를 건립했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 한반도에 찾아온 태풍만 36개. 1년에 평균 2.6회꼴로 한반도는 태풍의 영향권에 놓인다. 그러나 태풍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올해 12월, 4년마다 한차례 열리는 국제태풍워크숍(IWTC)이 태풍센터에서 열린다. 이 워크숍에서 채택한 보고서가 세계기상기구에 전달되면, 회원국들은 태풍에 관한 연구의 기준을 삼게 된다.

5개월 뒤 제주에서 국제태풍워크숍이 열리지만 참여가 아닌, 연구 분과에서 각국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일 국내 연구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으로,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태풍은 지역에 따라 허리케인이나 사이클론 등으로 불리는데 세계적으로는 해마다 80여개가 발생한다. 한번 태풍이 휩쓸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태풍 정보를 나누는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성난 바다 앞에 나가 풍랑을 맞다

바다로 직접 나가 풍랑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센터의 일이다. 9일 오후 3시께 김지선 연구원 등 3명과 취재진은 센터에서 23㎞ 떨어진 법환포구로 향했다. 전날 공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화창하던 날씨는 다음날 험상궂게 변했다. 빗방울은 곧게 내리지 않고 강풍에 휩쓸려 차량 유리창을 가로질러 후두둑 떨어졌다. 법환포구에 도착해 차량 문을 열자 몸을 가누기 어려워졌다. 우비 모자는 써도 벗겨지기를 반복하고 우산은 펼 엄두를 못냈다. 힘껏 성난 바다는 파란빛을 한줌도 내지 않았다. 바다 위아래가 뒤집히며 허옇고 거대한 파도가 곧추선 채 달려들어 방파제를 삼켜버리기를 반복했다. 지평선은 보이지 않고 포효한 파도만 육지를 향해 질주했다. 태풍 연구가 하고 싶어 자원해서 제주로 내려온 김 연구원은 빗물과 포구를 때리는 파도로 금세 몸이 젖었다. 김 연구원은 “최전선에서 태풍을 연구하고 예보하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국가태풍센터 직원들에게 있다”고 했다.

법환포구에 부는 강풍으로 머리카락이 미역줄기처럼 얼굴에 뒤덮인 취재진은 태풍센터와 가장 가까운 한남리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보냈다. 태풍을 만난 제주의 관광객들은 돌아다니지 못하고 숙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센터와 불과 5분 거리의 이 숙소에서는 태풍 가운데서도 밤이 늦도록 웃음소리와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라산 기슭에서 쉬지 않고 태풍을 감시하는 파수꾼들이 있는 덕분일까. 다음날인 10일, 언제 그랬냐는듯 전날 결항됐던 비행기들이 제주의 푸른 하늘을 날았다. 태풍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