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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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노학자의 혼신의 역작『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이 책은 그 치욕스런 역사의 현장에서 전시수상(영의정)과 군 최고사령관 격인 도체찰사로서 조선 자강과 조선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전쟁을 치러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냉철하고 뜨겁게 재조명한다. 여든을 눈앞에 둔 이 책의 저자 송복은 저명한 정치사회학자답게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징비록》 1, 2권 외에 [진사록], [서애전서]에 나오는 보고서 형식의 상소문과 예하 기관에 전달한 공문의 일종인 문이 등 총 549건의 자료를 빠짐없이 분석하여 정치사에 매몰되어 가려진 임진왜란 당시 사회경제사의 실상을 아프도록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류성룡의 두 가지 전쟁을 중심으로 조명한다. 하
저자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징비懲毖하지 않은 자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머리말 왜 류성룡인가
제1부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1장 《징비록》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1. 조선은 나라인가
2. 역사의 조작 ‘10만 양병론’
3. 10만 양병론의 진위
4. 당대의 조선과 류성룡
5. 왜 《징비록》을 읽지 않았는가
2장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조선은 내 땅이 아니다
1. 전쟁터가 되어버린 나라
2. 압록강을 건너지 마라
3.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제2부 아! 조선, 그리고 류성룡의 대설계
1장 전쟁은 군량이다
1. 군량전쟁의 주역을 맡다
2. 곡식이 정병을 만든다
3. 군량조달 해결책을 내다
2장 조선군, 그 총체적 난맥상
1. 기이한 조선군
2. 녹봉 없는 장수
3. 무기 없는 병졸
4. 전쟁은 누가 맡는가
3장 대설계
1. 자위의 틀
2.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3. 정병을 만들어 나라를 살리자
제3부 하늘의 도움으로
1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평양 미스터리
1. 미스터리의 실마리는 어디에서부터
2. 왜 그랬을까
3. ‘역사의 가정’에서 진실을 보다
4. 류성룡의 외침 ‘하늘의 도움으로, 하늘의 도움으로’
2장 강화협상
1. 명은 왜 출병했는가
2. 명?왜, 왜 강화하려 했는가
3. 분할시도, 그리고 류성룡의 외로운 싸움
3장 명?왜 조선을 나누려 하다
1. 임진왜란은 조선분할전쟁
2. 왜, ‘조선 4도를 내놓아라’
3. 조선을 쪼개고 임금을 바꾸겠다
4. 목숨을 건 류성룡의 독립주의
5. 유능제강의 리더십으로 조선분할을 막다
제4부 끝내 자강하지 못했다
1장 또 하나의 싸움, 명의 조선직할통치 압박
1. 왜 직할통치인가
2. 직할통치 두둔하는 선조
3. 무소부지 막강 권력의 조선 총책 양호
2장 양호와 류성룡
1. 탄핵되는 양호
2. 정응태의 반격, 그리고 조선의 치욕
3장 휘몰아치는 후폭풍
1. 류성룡 물러나다
2. 그러나 ‘아무도 류성룡을 대신할 수 없다’
3. 같은 날 류성룡은 파직되고 이순신은 죽다
4. 지난 일을 ‘징계’하고 후일을 ‘경계’했지만
부록 서애 류성룡 연표
책 속으로
유교사회에서 ‘오직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 사상은 어느 군주나 어릴 때부터 배운다. 그러나 어느 군주도 ‘백성이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도 안정되고 튼튼해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유는 첫째로 백성과 너무 동떨어져 살아 백성이 실제로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 실감할 수가 없고, 둘째로 왜 민본이고, 왜 민본이 아니면 안 되는지를 특별히 깨우쳐주는 특별한 스승도, 백성의 실존을 가감 없이 말해주는 특별한 친구도, 모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_ [10만 양병론의 진위], 34쪽 역피라미드형인... 더보기
역피라미드형인 만큼 군중에는 계통이 서지 않고, 계통이 서지 않는 만큼 명령도 제멋대로다. 방어사?병사?순변사?순찰사?도원수 등 제장들이 각기 권한을 장악해서 제각각 결단과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따를 줄을 모른다. 오직 태만하고 안일한 생각만 되풀이해서, 전진하고 싶으면 전진하고 퇴각하고 싶으면 제 마음대로 퇴각해버린다. 기회를 만들어 미리 시일을 정하고 만나기로 약정해도 제 날짜를 지키지 않고, 핑계는 반드시 다른 장수들에게 갖다 댄다.
결과는 불을 보듯 번연해서 무엇보다 장수들이 힘을 합치지 못하고, 오로지 각자가 흩어져 피해 달아나는 것을 좋은 계책으로 삼는다. 진격할 때도 함께 진격하지 못하고, 패해서 물러갈 때도 서로 구원해주지 않는다. 거기에다 다른 사람이 공을 이룰까 시기해서 견제하기까지 한다. _ [기이한 조선군], 120쪽
장수가 녹봉이 없이 병졸들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 장수와 병졸의 군사 외적 상호관계는 어떤 유형이었을까. 이는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두 가지 유형의 ‘수탈형태’를 자행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병사들로 하여금 양민을 수탈하게 하는 행태이고, 다른 하나는 장수가 자기 병사를 직접 수탈하는 행태이다. 후자의 수탈은 국가가 녹봉을 지급하지 않는 만큼 ‘합법적’으로 용인된다. _ [녹봉 없는 장수], 123쪽
원군으로 온 남의 나라 군대가 전쟁의 주군主軍이 되고, 조선 백성은 자기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성패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어떤 계책도 세우지 않고, 어떤 조치도 취할 의사가 없다.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 적과 맞닿아 진을 치고 있는 장수와 사졸들 모두가 전쟁의 성패를 명나라 조정의 처치에 맡겨두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묵인하고 있다. 선조도 일찌감치 우리 군과 신하들의 생사여탈권을 명군 장수들에게 넘겨주었다. _ [전쟁은 누가 맡는가], 147쪽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언제나 급합니다. 어찌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허둥지둥하다가 그만 일을 그릇되게 처리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금방 해이해집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끝내지 못하고 내버려둡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큰 폐단입니다. 지금 왜적이 우리나라 중심부에 아직 있음에도 이러하다면, 만약 명나라 군대가 떠나버린다면 다시 믿을 곳이 없습니다.’ _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158쪽
예로부터 공론 없는 국가가 어찌 있겠습니까. 또 공론을 멸시하는 대신을 어찌 대신이라 하겠습니까. 이제 온 나라 사람이 그를 가리켜 권간이라 하는데도 그에게 나라 일을 맡기는 일이 또 어찌 있을 수 있겠나이까. 밝으신 임금님께서는 옳은 처분을 조속히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_ [류성룡 물러나다], 339쪽 닫기
출판사 서평
지난날의 교훈을 잊은 나라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여든 노학자의 혼신의 역작! 절체절명의 조선을 되살려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을 징계한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경술국치, 그리고 오늘 징비懲毖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왜 우리는 그토록 힘이 없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짓밟혀야 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극한 상황을 겪어야 했는가. 그 극한 상황에서도 왜 우리는 그토록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짓밟는 자들에게 말조차 할 수 없었는가 왜 우리는 그... 더보기
여든 노학자의 혼신의 역작!
절체절명의 조선을 되살려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을 징계한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경술국치, 그리고 오늘
징비懲毖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왜 우리는 그토록 힘이 없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짓밟혀야 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극한 상황을 겪어야 했는가. 그 극한 상황에서도
왜 우리는 그토록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짓밟는 자들에게 말조차 할 수 없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분노할 수도 없었는가
침략군에 맞설 힘이 없었던 나라, 자신의 땅을 전쟁마당으로 내줄 수밖에 없었던 나라, 왜와 명의 싸움에 제 나라 백성이 죽고, 제 나라 가축과 곡식이 강탈당하는데도, 도망가기 바쁜 왕과 신하들,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 장수와 무기조차 없는 병졸들,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율곡이 상소문에서 송곳처럼 지적한 대로 조선은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萬間大廈’로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그런 형국이었다. 그렇게 나라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였던 조선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분할’을 노리는 침략자 왜와 조선을 ‘요동방어 울타리’로 삼으려는 명으로부터 처절하게 유린당해야 했다. 뼈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이것은 가감 없는 임진왜란의 진실이다.
이 책은 그 치욕스런 역사의 현장에서 전시수상(영의정)과 군 최고사령관 격인 도체찰사로서 조선 자강과 조선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전쟁을 치러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냉철하고 뜨겁게 재조명한다.
전쟁이 끝나고 숭명파에 의해 재상에서 파직당한 그는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정황, 대안들을 기록해 동시대인에게는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는 ‘징계의 채찍’으로, 후손에게는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기 위해 앞날을 준비하라는 ‘경계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그것이 바로 《징비록》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임진왜란에 대해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생생한 체험적 고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망각증이 도져 오직 망한 명나라만 그리워하며 아느니 중국 인물이며 읽느니 중국 역사였다. 마치 제갈량의 출사표를 들먹여야 충신인 양 국가 개념도 역사의식도 없이 숭명 사상에 사로잡혀 자강하지 못했다. 당연히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적 체험인 《징비록》을 무슨 뜻인지 외면한 결과, 300년 후 역사는 재현된다. 임진왜란의 판박이처럼 조선을 놓고 흥정한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또다시 국토가 유린되고 나서, 마침내는 저항 한번 못해보고 송두리째 나라를 일본에 넘겨야 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그래도 류성룡이 있었고 이순신이 있었다. 그 둘이 없는 경술년은 짓밟힘을 넘어 노예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과거를 잊은 조선에게 역사는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경술국치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남북분단의 냉혹한 현실을 앞에 둔 우리에게 여든의 노학자는 오늘을 징비懲毖하며 묻고 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가 다시 류성룡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여든 노학자의 혼신의 역작!
절체절명의 조선을 되살려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을 징계한다.
여든을 눈앞에 둔 이 책의 저자 송복은 저명한 정치사회학자답게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징비록》 1, 2권 외에 [진사록], [서애전서]에 나오는 보고서 형식의 상소문과 예하 기관에 전달한 공문의 일종인 문이 등 총 549건의 자료를 빠짐없이 분석하여 정치사에 매몰되어 가려진 임진왜란 당시 사회경제사의 실상을 아프도록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류성룡의 두 가지 전쟁을 중심으로 조명한다. 하나는 명?왜의 4년에 걸친 강화협상을 통한 조선분할획책을 막아내는 ‘분할저지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식량을 모아 명군과 조선군에 군량을 대는 ‘군량전쟁’이 그것이다. 그 두 측면 속에서 당대 최고의 전략가이자 경세가였던 류성룡의 리더십을 재조명해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류성룡은 확실히 조선조 500년을 대표할 정치리더로서 손색이 없다. 조선 조정 신하들 중 문제의 실상과 실체를 날카롭게 분석한 사람은 더러 있었지만 당위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을 제시할 때 그는 어떤 상황과 문제에 대면해서도 알맞은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다. 명 황제의 명命으로 조선을 분할하겠다고 압박하는 횡포한 명군 장수들을 대할 때는 강직함보다 온유하고 부드러움으로 그들을 눌렀다. 군량과 군마의 먹이를 구할 수 없어 군량전쟁의 열세에 놓였을 때도 전쟁사에서 누구나 쓰던 가장 손쉬운 방법인 백성을 약탈하는 비인간적인 방법을 절대 쓰지 않았다. 또한 그는 최고의 권좌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이념으로 당파를 만들거나 개인화하지 않았다.
그는 경세가로서 지극히 실용적인 리더십의 진면목을 발휘한다. 그 탁월한 예가 모두가 군량조달을 위해 전통적인 방법인 ‘전세’ ‘작미’ ‘둔전’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류성룡은 재력 있는 중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군량을 바치도록 하는 ‘모속’과 실직 없는 관직을 팔아 충성심과 군량을 동시에 해결한 ‘공명첩’, 그리고 무역을 통해 곡식을 조달하는 ‘무속’이라는 세 가지 방법을 창안하여 군량문제를 해결해낸다. 여기에 군편제와 군기능을 혁신한 군개혁의 대설계 ‘기무10조’는 그를 왜 조선조 최고의 ‘재상’이자 전략가라 평가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절묘한 인사, 즉 문신인 권율을 육군 장군에 발탁한 것과 육군으로 경력을 쌓아 온 이순신을 수군에 천거하여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한 일화는 가히 류성룡 리더십의 압권이라 하겠다.
특히, 이순신의 7단계나 뛰어넘는 파격 인사는 이후 류성룡 자신을 탄핵하는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음으로써 무사안일·복지부동·적당주의 타성에 젖어 있는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백성이 즐겁게 따르게 해야 한다’는 그의 리더십 신념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백성은 온몸을 바치는 리더에게 감동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모습이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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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류성룡은 이순신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지만, 이순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은 역사적 인물이다. 하지만 류성룡은 이순신과 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구한 인물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하위 말단직인 종6품의 정읍 현감이었던 이순신을 발탁한 이가 바로 류성룡이다. 무려 7단계가 넘는 정3품 당상관 전라좌수사(수군절도사)로 만든 이가 류성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육군이 아닌 수군 장수로 발탁한 것은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기가막힌 조선을 살린 신의 한수라... 더보기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류성룡은 이순신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지만, 이순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은 역사적 인물이다. 하지만 류성룡은 이순신과 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구한 인물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하위 말단직인 종6품의 정읍 현감이었던 이순신을 발탁한 이가 바로 류성룡이다. 무려 7단계가 넘는 정3품 당상관 전라좌수사(수군절도사)로 만든 이가 류성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육군이 아닌 수군 장수로 발탁한 것은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기가막힌 조선을 살린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류성룡의 안목과 배려가 없었다면 이순신의 뛰어난 업적이 애초가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10만 양병설로 조선의 위기를 미리 파악하고 10만 양병을 길러 위기에 대비하자는 율곡 이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그것이 역사적 허구일 가능성이 농후함을 말한다. 여러 상소 등에서 율곡 이이가 왕의 눈치를 보지 않고, 냉철하게 나라의 위기에 대한 비판과 위기의식이 있었지만, 정작 방법론에 대해서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며, 류성룡과 대비됨을 보여준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는 류성룡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류성룡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의 훌륭한 인물이고, 임진왜란 당시 위기의 조선에 있어, 이순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선을 지키는 일등공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정에서 그(이순신)를 추천해주는 사람이 없어 무과에 오른 지 10여 년이 되도록 벼슬이 승진되지 않았다. 그러다 비로소 정읍 현감이 되었다. 내가 장수가 될 만한 인재로 이순신을 천거했더니, 정읍 현감에서 차례를 몇 개나 뛰어넘어 수사로 임명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기도 했다.’1)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는 2007년 10월에 나온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의 개정판이다. 김종대의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출간한 시루 출판사 대표의 제의로, 6년 6개월 만에 좀더 다듬워진 모습으로 다시 출간된 것이라 한다. 이순신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류성룡의 책을 제안했다는 것 자체가 이순신과 류성룡은 왠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듯 하다. 그렇다면 왜 류성룡인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두 가지 이유를 내세운다. 첫째 ‘한반도의 분할은 언제부터 시도 되었는가’이고, 둘째 ‘그 분할획책을 누가 어떻게 막았는가’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첫째는 한반도 분할의 원류를 캐는 것이고, 둘째는 그 분할획책을 최후까지 막아낸 인물의 능력과 리더십을 오늘날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분단이라 함은 2차대전 이후, 6.25 한국전쟁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 보지만, 그 원류는 1592년 임진왜란에 가 닿는다고 한다. 즉 왜와 명이 남의 나라 땅을 두고 갈라먹기를 할 위험에 처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막아낸 인물이 바로 류성룡이라는 것이다. 물론 류성룡이 큰 역할을 했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의 평양 미스터리를 포함해서, 운이라면 운이고, 하늘의 도움이라면 도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절묘하게 작용해서 당시 한반도가 분할되거나 분할통치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율곡 이이도 한탄했듯이 당시 조선은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조선은 고칠 수조차 없는 썩은 집이었다고 비유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의 성격을 머리말에서 밝힌다. 전체적으로 임진왜란사인 동시에, 각 장은 있는 힘을 다해 전쟁을 치르고 분할획책을 저지하는 류성룡이란 인물의 리더십애 대한 연구라는 것이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6년 7개월 중 만 5년을 정무 군무 겸직의 전시수상(영의정)과 4도 도체찰사직을 맡아 두 가지 전쟁을 모두 치러낸다. 하나는 명 왜의 4년에 걸친 물밑 강화협상을 통한 조선분할획책을 막아내는 ‘분할저지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으로 식량이 완전히 고갈된 나라에서 식량을 모아 명군과 조선군에 군량을 대는 ‘군량전쟁’이었다.2) 임진왜란 당시 바다가 이순신과 왜의 전쟁터였다면 육지는 왜와 명의 전쟁터였다. 조선 육군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류성룡은, 명을 이용해 왜를 방어한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서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했던 반면, 육지에서 명은 왜에게 계속 패배하다가 고작 2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선조의 인식은 실망스럽다. 명 덕분에 평정을 되찾았고, 이순신은 약간 두드러진 활약을 했을 뿐이라며, 공을 명에게 돌리고, 이순신은 곁가지 살짝 언급하는 수준이다.
“오늘날 왜적이 평정된 것은 오로지 명군 덕분이다. 우리 장군과 사졸들은 명군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요행히 적 패잔병들의 머리나 얻었을 뿐이다. 한 번도 우리 장군과 사졸들의 힘으로 적 우두머리 목 하나를 베거나 적진 하나를 함락시킨 일이 없다. 그 가운데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의 바다에서의 무찌름과 권율의 행주에서의 이김이 약간 두드러질 뿐이다.”3)
명도 조선땅에서 왜와 싸운 건, 조선을 돕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들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조선을 발판으로 명을 치려는 왜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던 명은, 넓은 벌판인 자기네 땅에서 전쟁을 치르기보다는 남의 땅 조선 땅에서 왜을 막고자 한 것이다. 그런 명의 속내를 알면서도 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왜와 맞설 수 밖에 없었던 류성룡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명의 속내는 조선을 갈라먹자는 왜의 제안에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류성룡은 결국 명이 위험해질 거라며 조선 분할획책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명에 의지하며 왕권만 지켜려 한 무능한 선조 왕 곁에서 류성룡이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다.
저자는 율곡의 ‘10만 양병론’이 조작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런 판단의 근거를 하나하나 제시하는 데, 저자의 판단은 충분히 일 리가 있다. 우선 율곡의 그 어떤 글에도 10만 양병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나 제자간에 격의 없이 속내를 드러내기 쉬운 서간문인, 명조 말(1565년)에서 선조 14년(1581년)까지 16년간 쓴 율곡의 경연일기에도 그런 얘기는 없다. 양병이란 얘기자체는 율곡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신하들도 많이 썼다고 한다. 작년 정부부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창조 경제’를 외쳤듯이, 왜와 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양병’이라는 말 자체는 당시 신하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사용할 만큼 흔하고, 큰 의미가 없는 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10만’이라는 숫자가 붙으면서 위기를 미리 간파하고 구체적인 대비책을 주장한 것처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10만 양병론이라는 거대 담론을 꺼내면서 그의 상소문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글에서도 10만 양병에 관한 글이 없는 건 이상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10만 양병론은 율곡의 글이 아니라 율곡 제자들이 쓴 <율곡비문>과 그 제자의 제자가 편찬한 <율곡연보>에만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양병론이 탄생되었다고 본다. 조선조 유학에서 율곡을 최고의 자리에 앉히고, 그 학통을 이어받은 율곡 후학들을 주류로 보려는 시각이 곁들여 있다는 것이다.4) 이어 1958년 서울대 문리과 3학년생이었던 저자가 들었던 이병도 교수의 강의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이병도 교수가 먼저 10만 양병설을 먼저 거론하며 임진왜란 10년 전에 미리 장래를 투사한 그의 선견지명을 높이 산다. 그에 대해 제자들의 신랄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저자도 임진왜란 당시 우리 인구를 물으며 10만을 양병하는 게 가능한지 질문했다. 하지만 이병도 교수는 그런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한다. 당시 인정받는 교수조차도 제대로 된 인식이나 비판없이 어쩌면 율곡 제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탄생한 10만 양병을 그대로 가르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6년 뒤 1964년 이병도 교수의 강의내용은 그의 책 <한국사대관>에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10만 양병이 당시 인구구성상 그리고 세입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며, 율곡의 10만 양병론은 제자들이 율곡은 성인으로 추앙하고 류성룡은 속류 정치인으로 떨어뜨리는 의도에 의해 탄생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율곡 제자들 말대로 10만 양병을 주장했다면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율곡은 실상과 방법론을 전혀 모르는 정치인으로 격하하고, 반대로 류성룡은 본질과 본체를 알고 방법론도 아는 현명한 정치인으로 추켜세운 꼴이 된다고 결론짓는다.5) 즉 실상에 비추어 보면 10만 양병은 율곡 제자의 의도와 반대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율곡의 10만 양병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율곡의 선견지명을 높이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실상에 비추어 예리하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율곡 제자들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고 할 만하다.
저자는 류성룡을 정확히 알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를 봐야 한다고 말하며 다섯 가지 관점에서 류성룡이 살았던 시대를 바라본다. 첫째 조선은 어떤 나라였는가, 국가로서 기능하고 기능할 수 있는 나라였는가, 둘째 조정 관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그들의 국가개념은 어떤 것이었는가, 셋째 국왕으로서의 선조는 어떤 군주였는가, 넷째 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이었고 이 전쟁을 일으킨 왜는 어떤 나라였는가, 다섯째 이 전쟁에서 명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 등이다.6) 이 다섯 가지는 류성룡을 기술하는 데 따라다니는 기본 논의며 기본 논제라고 말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류성룡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한다. 책은 다섯 가지 기본 논제를 차근차근 살펴보며 류성룡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준다.
‘오늘날 정승을 택하는데, 누구를 택해도 류성룡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류성룡이야말로 오로지 ’청개지수 혈성‘으로 나라를 근심하고 나라를 위해 왔습니다. 그가 퇴임한 마당에 신도 이제 물러가겠습니다.’7)
류성룡은 조선의 대설계를 시도한다. 군국기무는 군사의 국가정책의 근본으로 군사가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인다는 의미다. 이는 유교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국가안위를 걱정한 류성룡은 군국기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구체적인 4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안보해이 안보불감증에 대한 경고와 조치, 둘째 정병제 정병주의의 실현, 셋째 포 개발과 포대 설치의 절실성과 긴요성, 다섯째 누르하치 여진족의 발호와 그것이 몰고 올 위기에 대한 대책이었다. 류성룡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계획과 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했지만, 류성룡의 군국기무는 골간만 세운 채 끝난다. 진행과정에서 해임된 것이다.8) 당시 조선은 뛰어난 인재의 나라를 위한 구체적인 시도조차 막는 수준의 나라였던 것이다.
책은 류성룡이 위기에 처한 조선을 어떻게 살려냈는지 보여준다. 무능한 선조가 유일하게 잘한 것은 류성룡을 가까이 둔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중에는 희미해진다. 왜와 명의 분할통치를 막아내지만 직할통치라는 위험이 다가온다. 선조는 그런 직할통치를 오히려 두둔한다. 조선총책인 명의 양호가 탄핵되자, 그의 탄핵을 막기에 힘쓰는 선조는 도대체 조선의 왕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그런 선조의 무능함과 안일함으로 인한 뒷감당을 하기 위해 류성룡은 고군분투하지만 오히려 류성룡이 물러나는 상황이 된다. 책은 류성룡은 중심으로 당시 임진왜란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왜와 명의 조선의 분할획책 저지를 위해 힘쓴 류성룡의 리더십과 활약을 보여준다. 책을 통해 류성룡을 알면 알수록 그가 얼마나 큰 일을 했고, 대단한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느끼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과 이순신이 없는 조선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원으로 / 돌아가는 길 삼천리 // 벼슬살이 / 나라 깊은 은혜 사십 년 // 도미천에 / 발멈추고 바라보네 남산 // 그 남산 빛 / 옛모습 그대로이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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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91년 2월 13일, 임진왜란 일어나기 14개월 전, 류성룡의 <징비록> 일부 /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358
2)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12
3)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351 /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쟁 공로자의 녹훈을 거론하는 자리에서 나온 선조의 말
4)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22 / p. 22 각주 2)
5)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29
6)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36, 37
7)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342 / 이원익이 류성룡의 체임을 알고, 선조에게 간곡히 권하는 내용
8)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149, 151
9)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 368, 369 / 류성룡이 영의정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시 닫기 -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국가재조지운(國家再趙之運)/송복 지음/시루 출판 eo**rtnzl | 2014-06-18 | 추천: 0 |http://blog.daum.net/eoqkrtnzl/15427371 http://blog.naver.com/eoqkrtnzl/220034547646 나라를 다시 만들 때라... 비단 4백여 년 전뿐만의 일일까? 명을 치러 갈 길을 빌려 달라는 핑계로 조선을 침략했던 422년 전의 왜... 왜는 막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이 평정되고... 불만세력들을 누르는 일환으로 조선으로의 침략을 결정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우리로서는 임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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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시 만들 때라... 비단 4백여 년 전뿐만의 일일까?
명을 치러 갈 길을 빌려 달라는 핑계로 조선을 침략했던 422년 전의 왜...
왜는 막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이 평정되고...
불만세력들을 누르는 일환으로 조선으로의 침략을 결정하기로 한다.
말하자면 우리로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전란이 일어난 것.
명을 치러 간다는 왜 와... 왜의 침략을 막아준다는 명이 온 나라를 휘젓는 불행한 일이 생긴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교훈에서 보듯...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명과 왜가 나라를 두 동강을 내어 차지하겠노라는 야욕이 마치 오늘의 우리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한국동란... (곧 다가오는 전쟁발발일) 6.25전쟁에서 구 소련과 미국이 남북한을 나눠 가른 것과 무엇이 다를까?
서애 류성룡의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오늘에도 피에 맺힐 외침이다.
정말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요즈음의 세태에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할 듯싶다.
///간단한 책 소개 :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여든 노학자의 혼신의 역작!
절체절명의 조선을 되살려낸 류성룡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을 징계한다.
여든을 눈앞에 둔 이 책의 저자 송복은 저명한 정치사회 학자답게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징비록》 1, 2권 외에 [진사록], [서애전서]에 나오는 보고서 형식의 상소문과
예하 기관에 전달한 공문의 일종인 문이 등 총 549건의 자료를 빠짐없이 분석하여
정치사에 매몰되어 가려진 임진왜란 당시 사회경제사의 실상을 아프도록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류성룡의 두 가지 전쟁을 중심으로 조명한다.
하나는 명과 왜의 4년에 걸친 강화협상을 통한 조선 분할 획책을 막아내는 ‘분할 저지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식량을 모아 명군과 조선군에 군량을 대는 ‘군량 전쟁’이 그것이다.
그 두 측면 속에서 당대 최고의 전략가이자 경세가였던 류성룡의 리더십을 재조명해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간단한 저자 소개 : 송복///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정치학)과 신문 대학원(문학)을 졸업했다.
이어 하와이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사회학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2년 8월까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조직과 권력],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 [열린 사회와 보수], [일류의 논리]가 있다.
그 외 편저·역서·학술논문을 포함한 저술은 [성숙한 사회], [공식조직의 제도적 자율성의 결정 범위에 관한 연구] 등 80여 편이 있다.
미리 대비하여 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이 말은 비단 개인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는 반만 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세세히 그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과연 옳은 말일까란 의구심을 갖게 될 때가 많다.
주체적으로 독립된 상태를 가진 역사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나도 느끼게 된다.
끊임없는 주변 강국의 침략과 지배 간섭을 받아온 우리가 아닌가 싶다. (아프고 창피하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중국에, 대한제국 말기까지는 일본에... 그리고 현재는 미국이라는... ㅡ,ㅡ
진정으로 우리 민족, 우리나라 자체의 힘만으로 독립된 국가가 유지되었는가? 란...
정말 싫지만, 그런 의구심이 아니 생길 수가 없는 것이 현재까지의 사대하는 우리 현실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류성룡의 국가재조지운(國家再趙之運)...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다는 말이 절실하게 우리에게 와 닿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나 엉망이었으면 나라가 나라가 아니란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이 책은 국가란 무엇이며 주권이란 무엇인가를 역사의 관점을 달리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오죽 나라의 힘이 없었으면 남의 나라가 내 땅을 유린하며 진흙탕을 만들게 두었을까?
힘이 지배한다는 세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정이 무에 다를까 하여 읽는 내내 참담했다.
하긴 나라의 중대사, 심지어 왕의 자리와 후계자 자리마저 중국에 허락을 받았다니 말 다한 거겠지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란 것이 허용되지 않는 군주제란 그런 것인가란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아무튼... 얼마나 만만히 보였으면 내 나라 땅에서 전란이 일어나게 두었는가 한심하기만 하다.
그리고... 역시 사람은 책을 많이 아주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것을 옳다는 것을 느꼈다.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이 율곡의 제자들에 의한 허구였다니... 내겐 충격이기까지 한 일이다.
왜가 조선 땅을 상륙하여 평양까지 일사천리로 걸림 없이 나간 것은 왜일까?
나라와 나라 간의 차가 얼마나 컸길래 우리는 변변한 전투 한 번을 치르지 못한 것일까?
지금껏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조선이 이런 나라였던가란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왕을 비롯한 정부 신료들이란 사람이 여차하면 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난을 하다니...
그들에게는 국가란 개념이란 것이 없었다는 것에 또한 놀라움과 실망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중국의 변방, 중국의 한 자치구에 불과한 것이 조선이란 나라란 것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중국 말을 사용하는 중국의 자치구가 되었겠단 생각에 아찔해졌다.
어쩌면 왜의 땅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아닌 일본인이 되어 살고 있겠단 생각에도 아찔하기만 했다.
결국 일제에 강제병합이 되어 기나긴 세월 동안 착취와 수탈을 당하는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힘을 갖추지 못한 나라로서는 시간의 차이일 뿐 당해야 할 일을 당한 것이 아닐까? 란...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오늘의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기에... 언젠가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ㅡ,ㅡ
왜 와 명이 조선 땅에서 무려 7년이나 머무는 동안 과연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의 땅이 아니기에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조선의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만약 지금 이 땅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란 가정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이 있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겠지만...
나라의 사정이 이렇게 될 때까지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무엇을 했나란 생각이 들고...
작금 우리의 상황과는 얼마나 다를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저절로 무거워지기만 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사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 있게 보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고...
핵을 내세워 휴전선 이북에서의 북의 태도를 저지할 만한 힘이 우리 정부에게 있나 걱정스럽기도 했다.
임란 당시 조선을 지원하는 명을 우리가 먹여야 했고 우리도 먹고살아야만 했다.
난리 통에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였을 것이고... 생산마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져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명과 왜가 조선을 분할하여 전쟁을 끝내려는 야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조선은 그들을 제지할 능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적으나 위대한 인물들은 있었다.
육지에서는 조선의 군대가 힘을 제대로 쓰지 못 할 만큼 엉망진창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하늘이 우리를 위해 내려주었던 것이다.
바다에서 이순신이 적은 군사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적의 후방을 차단하는 동안...
내륙에서는 민간이 의병을 일으켜 목숨을 내놓고 전투를 벌이고... 류성룡과 같은 인물은...
조선을 위해 전략을 써 명과 왜를 진정시키고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의 힘을 다했다.
정유재란이라는 왜의 침입이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나라가 분할이 되는 것을 막긴 했기에 다행이었다.
선조란 인물에 대해 책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접할 수가 있었지만... 광해도 마찬가지이고...
예나 오늘에나 역사를 돌이켜보건데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가도 국가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리더에 대한 여러 책을 읽어봤지만 결론은 리더가 항상 문제의 시작과 끝이고...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을 주변에 두는가 역시도 커다란 화두가 되곤 했다.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를 심각히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과거는 어차피 흘러간 것이라 후회보다는 교훈을 삼아야만 한다고 본다.
오늘날의 우리네 사정도 그리 좋다고만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건 이념적으로 건... 경제적, 문화적으로 역사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만 할 것이다.
현재 나라를 이끌, 이끄는 리더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역사에서 배우라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일이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다시 세울 적당한 때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400여 년 전의 난세의 영웅, 류성룡의 외침이 귓가에서 쟁쟁히 맴도는 듯만 하다.
대통령이여 나라를 제대로 다시 세우소서, 우리가 당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라고...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지킨,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서애 류성룡이란 인물에는 그다지 주목을 하지 않고 살았던 내게...
이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배우면서 속에서부터 울분이 차올라 그 말을 들었다면... 하였었는데...
사실은 당시의 사정으로는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는 것과...
율곡 제자들에 의해 끼워 맞춰진, 역사서 중 어느 한 페이지에도 나오지 않은 말이란 것에 화가 났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힘을 제대로만 기른다면... 개개인이 사대하지 않는 주체적인 생각만 가진다면...
더 이상은 우리에게 과거의 비참했던 일들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시루 출판사에서 나온 노학자 송복의 국가재조지운(國家再趙之運)...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우리 모두... 특히 국가 지도자급의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만 하겠단 생각을 하게 한 그런 책이 되어 읽은 보람이 있었다.
힘을 갖추어야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므로 각자 힘을 길러야만 할 것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간에... :-)
◎ 네이버 대표 북카페, 북뉴스의 서평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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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pa**cci | 2014-06-18 | 추천: 0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 송복 저자 송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율곡 이이가 주창한 십만양병설의 허위성을 당시 인구 자료를 근거로 입증하고 있다. 징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정치적 이념적 우월성을 이어가기 위한 후대의 조작이라고....과거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그 시대의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교훈을 놔두고 오히려 중국의 역사를 위대하다고 받아드는 사대부 유교 학파 특히 ... 더보기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 송복
저자 송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율곡 이이가 주창한 십만양병설의 허위성을 당시 인구 자료를 근거로 입증하고 있다.
징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정치적 이념적 우월성을 이어가기 위한 후대의 조작이라고....과거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그 시대의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교훈을 놔두고 오히려 중국의 역사를 위대하다고 받아드는 사대부 유교 학파 특히 송시열과 이이 율곡의 후세 학파의 조선 잃어버리기가 결국 임진왜란 후 300년 만에 또다시 망국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었으며, 무능한 왕과 안위만을 쫓던 고관대작들은 차지하더라도 백성의 고통을 어찌 헤아리지 않을 수 없는가?
한 나라의 고통은 국민의 고통이지 지도층의 고통이 아니다. 현대 사회도 한 회사의 부실은 종업원들의 고통만 가중될 뿐 기업주는 그때만 벗어나면 그만이다. 육지전쟁은 명나라와 왜의 전쟁이고 바다 전쟁은 이순신과 왜의 전쟁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조선의 군주와 수뇌들은 무기력하였다.
선조가 피난 중 함경도 두만강으로 피신하자는 계책을 막아 세운 것도 류성룡이요 의주를 통해 명으로 피난이 아닌 종속되는 내부 즉 주권 포기를 하려는 선조를 막은 것도 류성룡이다.
조선 땅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조선은 조선 땅이 아니 오이다. (조선 비아 유아) 육이오 때 이승만이 자기만 먼저 서울을 몰래 빠져나간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군이 괴뢰군과 잘 싸우고 있어 서울은 이상 없다고 거짓 보도후 한강 다리를 폭파한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백성은 이렇게 군주의 처신에 의심 없이 즉 반응할 뿐이다. 당시 류성룡의 계책이 없었다면 조선왕이야 없어도 백성은 큰 차이 없을 것이나 한반도 백성은 일본 또는 중국으로 갈라져 정체성도 없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현재 쪽바리 말이나 중국말을 사용하고 있겠지…. 썩을~~ 류성룡은 전쟁 중 가장 필요한 군량미 확보에 총력을 다하면서도 군량 확보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상소를 올려 그 어려움과 중요성을 계속하여 언질 하였다.
명나라 군대를 먹여 살려야 조선을 구한다는 생각, 그런 명나라 군대를 살리기 위해서 조선의 군사는 징병 할 엄두도 못하고 백성 또한 굶주려야 하는 상황……. 류성룡은 말 그대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살아남은 이유는 찬찬 즉 하늘의 도움이라고 말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로부터 총리 지명을 받은 문창극이라는 작자가 과거 일본 식민통치와 분단은 자칭 그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하였다는데 류성룡이 알면 통탄할 일이다. 내가 보기엔 문씨가 믿는 하나님은 개망나니교회의 하나님일 뿐…….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최고의 인재로 추앙받던 율곡이 임진왜란 이전 10년에서 20년 사이 국정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선조에게 그저 문제점만을 이야기 했을 뿐 실질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성룡과 율곡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율곡은 만원봉사에서 선조에게 현실을 상세히 상소하면서도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군주인 선조가 스스로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인가? 이것이 군주 왕조체제의 한계인가? 오늘날의 정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이지만 오늘날의 경제 기업 활동은 과거 군주 일인 독재시대와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군사적 전권을 천군이라는 명나라에 의지한 채 무능했던 조선은 그로부터 3백 년 뒤 또다시 일본이란 왜 놈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마는데 이번에는 싸움도 전투도 없이 그냥 통틀어 넘겨주게 된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이없는 역사의 반복인가? 역사는 스스로 자기 역사를 주재하지 못하는 자에겐 언제나 불행이 되풀이될 뿐이다. 임진왜란중 영의정이라는 정치 업무와 도제찰사라는 군권 업무를 소화해낸 류성룡은 문관 출신 이지만 남다른 군사적 식견도 쌓고 있었다. 특히 임진란 1년 전 대설계를 통해 기무 10조 즉 군대로서 갖추어야 할 사항 열 가지 방책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임진란 이후 1년 뒤 훈련도감과 속오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군사 조직에 대한 중앙과 지방 수비 체계를 확립시켰다. 즉 류성룡 정병주의 국방체계로 말미암아 군에 대한 불모지나 다름없는 조선에 군사다운 군사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장 고니시 유기나와는 부산에서 평양까지 400km의 거리를 하루 평균 20km의 속도로 침략해 왔는데 왜 평양을 접수한 후 의주까지 내 달리지 않았는가? 역사 기록 어디에도 그 설명을 명쾌하게 해주는 곳이 없다.
다만 류성룡은 그러한 왜장의 결정은 하늘이 도와 조선 재건 기회를 맞은 것이라 표현한다. 이 시점에서 국무총리 지명자인 문창극은 식민시절과 남북분단이 그가 믿는 개망나니 교회의 하나님 뜻이라 하고 있다. 그는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고 볼 수 없는 왜의 피가 섞인 잡종 혈통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순신과 류성룡이 그를 대한다면 어찌할꼬. 바로 참수하여 저잣거리에 효시 밖에 다른 결정은 없었으리라. 명나라 참전 이유는 조선을 위함이 아니라 왜로부터 명나라 국토의 유린을 방지하고 그 유린 장소를 조선 땅으로 한정하여 조선에서 전쟁을 치르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오래 끌을 수 없는 명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조선땅을 분리하여 일본과 명이 강화하여 종결 시키는데 있다. 한때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말이 돌던 때가 있다.이것은 돌고 끝나는 말뿐이 아니라 현실이다. 백성은 어떠한가? 백성의 입장에선 꼭 조선의 백성일 이유도 없다. 그것은 유교의 교리 민심무상 유혜지회 가르침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은 세뇌되지 않는다. 세뇌되는 건 오히려 왕과 신하들이다. 요즘의 기업 경영자의 처지와 같은 상황이다. 직원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다. 잘 대우 받으면 그 회사가 좋은 회사요 힘들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바꿀 수 있다. 오로지 간부 경영진과 대표만 충성과 애사심을 강조한다. 명나라 사신이 들고온 역치하라는 내용은 선조를 바라보는 시각 하나는 무능함을 제대로 보았다. 하지만 선조가 세자에게 선양을 한다 한들 그 상황에서 뭐가 달라졌겠는가?
무능한 왕을 진작에 갈아치우지 못한 왕권의 절대적 유교 숭상 주의 때문일 것이다.
한편 왕실이라는 둥지에서만 살아온 선조는 진퇴양난을 치르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명군의 양호는 조선을 직접 통치하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순진하고 무능한 선조는 그런 양호를 절대적으로 신임했으며 오히려 충신 류성룡을 양호를 변호하지 않는다 하여 몰고 간 간신들 주장에 떠밀려 그를 해임한다.
무능한 선조는 그대 하나로 충분하였으나 그런 무능한 사람이 한나라의 중책임을 맡고 의사 결정의 핵심이 되는 것 자체가 역사의 불행이다. 선조는 숭명의 달인이다. 한 나라의 최고 군주가 국적 포기를 선택한 안현수 선수 같은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양호 변론을 거부한 것을 빌미로 그간 권력을 노려온 마수에 물든 신료들은 그를 탄핵하기 위해 상소를 올린다. 이에 공론을 따르는 것이 신하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판단한 류성룡은 사직하겠다는 상소를 선조에게 여러 차례 올린다. 그를 대신 할 마땅한 인물이 없음을 아는 선조는 계속해서 만류하지만, 이는 선조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국운을 위해 뛰어온 그리고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도래한 류성룡의 스스로의 최후 결심이리라. 무사심이 공직자에게 엄격히 요구되는 것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윤창중이나 문창극 같은 얼빠진 인물이 사심에 사로잡혀 국정을 핑계로 망국적 작태를 보이려한다. 닫기 -
<서평>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때가 되었나이다. ho**6082 | 2014-06-18 | 추천: 0 |이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알지 못했던 역사를 깊이 있게 해석하였습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에게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잘못되었던 점, 지금도 묵과할 수 없는 안일하고 그릇된 행동들과 시선들은 아무래도 교과 과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을 뿐더러 관심 밖이였던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고취시켰고, 좀 더 깊고 넓게 들어가 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승리를 거뒀던 임진왜란의 이면에 우리나라의 치욕스러웠던 현실과 자국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 보다는 이기주의적인 국민성과 안일함, 나태함 등으로 잃게될 수도... 더보기
이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알지 못했던 역사를 깊이 있게 해석하였습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에게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잘못되었던 점, 지금도 묵과할 수 없는 안일하고 그릇된 행동들과 시선들은 아무래도 교과 과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을 뿐더러 관심 밖이였던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다시 고취시켰고, 좀 더 깊고 넓게 들어가 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승리를 거뒀던 임진왜란의 이면에 우리나라의 치욕스러웠던 현실과 자국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 보다는 이기주의적인 국민성과 안일함, 나태함 등으로 잃게될 수도 있었던 나라를 어려운 여건의 현실속에서도 당당히 지켰던 류성룡의 행보는 우리들에게도 일침이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쪽으로는 명나라를 공격하려는 교두부로 삼으려는 왜의 계속되는 침략과 왜의 침략에서 우리나라 조선을 지켜 주겠다는 명분하에 군사를 보냈지만, 사실 남의 전쟁에 피를 흘린다는건 정말 그 이면에 딴 속셈이 있지 않고서는 가당키나 하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두 나라의 얄팍한 속내를 알면서도 전쟁의 당국인 조선은 너무도 약하디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꿋꿋히 나라를 위해 임금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 할 수 있도록 눈이 되었고, 귀가 되었던 류성룡은 당시 영의정으로 전란에서도 왕의 옆에서 지켜 보는 사대부들과는 달리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전쟁중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였고, 무엇보다 시무10조등 앞으로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위한 대책을 강구 하였고, 중요한 군량미와 군사를 확충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헌신적으로 몸과 마음을 받친 강한 애국정신과 현실적으로 고뇌하며 사소한 일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우리나라를 지키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선조가 명나라로 몸을 피신하거나 왜의 포로가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지를 새로운 각도의 만약이라는 역사로 되짚어본 우리역사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할 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던 대목이였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은 조상들 때부터 있었던 왜의 침략으로 조선의 자손이기 때문에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옛날 일을 들어 그냥 감정으로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못하여 뼈아픈 역사적 사건들을 거울삼아 남의 탓도 아닌 우리가 부족하였다는 것을 직시하고 반복되는 과오가 없도록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다시 재 정비하여 의존이 아닌 우리 뿌리를 깊이 박아 어떠한 강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뿌리 깊은 나무로 길이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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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의 현 대한민국에 대한 징비록 -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kj**70317 | 2014-06-17 | 추천: 0 | 류성룡의 이름을 들어본 것은 예전에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을 때였다. 이순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난중일기>가 바다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을 속속히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류성룡의 육지에서의 상황 분석 및 리더십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서애 류성룡이 다시 살아온다면, 지금 현재 상황의 대한민국을 보고 어떤 상소문을 올릴 지 걱정이 되었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