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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힐링푸드

계룡산을 반찬 삼아 먹는 석쇠불고기와 콩국수 (조선일보 2013.06.21 09:00)

계룡산을 반찬 삼아 먹는 석쇠불고기와 콩국수

[맛난 집 맛난 얘기] 다미원

들판에서 들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는 기갈(飢渴)이 감식(甘食)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곤 말씀 끝에 ‘일이 보배’라고 덧붙이셨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육체적인 활동을 많이 해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면 우리 몸은 저절로 에너지원을 갈망한다. 고된 노동은 열량을 소진시키고, 에너지가 고갈된 몸은 배고프고 목이 마르게 마련이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등산도 웬만한 육체노동 못지 않은 열량이 소모된다. 그래서 등산로 아래에는 기갈에 지친 등산객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줄 각종 음식들이 즐비하다. 충남 계룡산 동쪽 끝자락 수통골의 <다미원>도 등산객에겐 참새가 그냥 못 지나갈 방앗간이다.

불판 대신 맥반석이 떠받치는 석쇠불고기

본래 이 집은 퍽 오래 전부터 촌두부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산을 내려온 굶주린 등산객들은 촌두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구운 고기도 먹고 싶어했다. 아마 고갈된 체력이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 듯 하다. 이들의 채근이 쌓여가자 주인장이 최근에 맥반석석쇠불고기(300g 1만2000원)와 한돈석쇠숯불구이(300g 9000원)를 선보였다.

	계룡산을 반찬 삼아 먹는 석쇠불고기와 콩국수

맥반석석쇠불고기는 언양불고기를 많이 닮았다. 숯불에 굽는 과정과 모양과 맛이 얼핏 흡사하다. 숯불 위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양념해서 다진 고기를 놓는다. 고기가 익어감에 따라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차츰 둥글고 넓게 펴가면서 골고루 굽는다. 고기 굽는 손놀림만 봐도 입 안에 군침이 돈다. 탁 트인 야외에 구이 시설이 있고, 굽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심심치 않다. 마치 예전 잔칫집 안마당에서 음식 장만하는 걸 보는 느낌도 든다. 열린 공간에서 조리를 하는 것은 업주 입장에선 음식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고객의 입장에선 안전한 조리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고기를 굽는 동안, 다른 화구에서는 맥반석이 달궈진다. 고기가 다 익으면 맥반석도 뜨겁다. 달궈진 맥반석을 담은 용기에 철망을 얹고 그 위에 구운 석쇠불고기를 담아 손님에게 내놓는다. 맥반석은 원적외선을 방사, 오염물질이나 세균을 빨아들여서 분해시킨다고 한다. 또한 구들장처럼 달궈진 맥반석 돌덩어리는 고기가 식지 않도록 보온 작용을 하여 직화구이의 장점인 불맛을 오래 유지시켜준다.

	계룡산을 반찬 삼아 먹는 석쇠불고기와 콩국수

맥반석석쇠불고기가 석쇠구이의 소고기버전이라면 한돈석쇠숯불구이는 돼지고기 버전이다. 얇게 썰어서 미리 양념에 잰 돼지고기를 역시 숯불에서 석쇠로 구워낸다. 곱게 다진 소고기와 달리 고기의 형태를 살려 육즙도 보존했다. 뜨겁게 달군 철제 접시에 부추와 양파 채를 깔고 구운 고기를 담아 손님에게 낸다. 두께가 얇은데다 숯불에 직화로 구워 뻣뻣한 것 같은데 의외로 부드럽다. 씹으면 달달한 듯 하면서 쫄깃하다. 맥반석석쇠불고기가 어린이나 가족 외식으로 인기가 있는데 한돈석쇠숯불구이는 남자 어른들이 술안주용으로 많이 주문한다. 텃밭에서 기른 상추를 비롯한 푸성귀들도 싱싱해, 고기맛을 한층 돋워준다. 특히 가격이 비싸 고깃집에서는 잘 쓰지 않는 명이나물도 눈길을 끈다.

국내산 콩만 그때그때 갈아 만든 신선한 콩국수

콩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만주가 원산지다. 바로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이다. 콩은 다른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먼저 접했던 식재료다. 먹어왔던 역사도 다른 식재료들보다 오래되었다. 서역이나 아메리카 원산지인 식재료들보다 그만큼 우리와 친숙하다. <다미원>이 위치한 대전과 계룡산 지역은 백제의 고토다. 백제 역시 고구려와 함께 만주 일대를 원적지로 한 부여계통의 혈통과 국가였다.

	계룡산을 반찬 삼아 먹는 석쇠불고기와 콩국수

이 집은 오랫동안 감칠맛 나는 시골 촌두부로 지역주민과 등산객에게 사랑 받아왔다. 이 일대에서 재배하는 국산 콩으로 만든 시골 촌두부를 매개로 주인장과 손님들은 서로 신뢰를 쌓아왔던 모양이다. 그 콩으로 요즘 서리태콩국수(7000원)를 만들었다.
국내산 서리태를 물에 불려 살짝 끓인 뒤 식기 전에 콩 껍질을 까서 보관해둔다. 이 콩을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주문량만큼 그때그때 갈아서 국수를 말아 내간다. 국물을 미리 만들어두지 않아 신선하다. 바로 간 콩이어서 고소한 콩 고유의 향과 맛도 한결 생생하다. 푸르스름한 국물 색깔은 이 국물이 조금 전까지도 서리태 콩알로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콩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면 삶는 시간에 동시에 갈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리 지루한 시간은 아니다.

콩국수의 면발은 생면을 쓴다. 생면은 쉬 불지 않으면서 쫀득하다. 그러면서 콩국물과 따로 겉돌지 않고 국물의 고소함과 진한 맛을 잘 머금었다. 고명으로는 오이채와 참깨가 전부다. 콩국수는 오직 콩국수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인장이 다른 재료를 최대한 억제했다. 가끔씩 씹히는 오이의 식물성 섬유질 식감과 적당히 쫄깃한 면과 콩 냄새 진한 차가운 국물이 계룡산 자락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두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한 국수 양은 배고픈 이에겐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입자가 가는 편은 아니어서 목 넘김이 다소 아쉽지만 걸쭉하고 신선함 감도는 촌스런 콩국 맛을 느끼기엔 오히려 부족함이 없다. 겉절이 김치와 깍두기, 무절임이 찬으로 함께 나온다. 촌두부 집을 오래 운영해서인지, 겉절이 김치 맛도 좋다. 배추의 고소한 맛이 살짝 매콤한 맛과 함께 아삭 씹힌다.

산을 타고 난 뒤에, 혹은 삶의 고된 능선을 넘은 뒤에 벗들과 더불어 마주하는 밥상은 흥겹고 편안하다. 더구나 지나온 산을 마주 보고 먹는 밥은 느낌이 남다를 것이다.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 그리고 삶의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하고 나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자.
<다미원> 대전시 유성구 덕명동 181-1, 042-822-3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