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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분서 王名 첫 발견 (매일경제 2013.07.04 00:58:35)

신라고분서 王名 첫 발견

금관총 출토 칼집서 `이사지왕` 글자 확인…피장자 연관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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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수습된 환두대도에 새겨진 명문이 3일 공개됐다. 신라 최고지배층 무덤에서 왕의 이름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칼자루 금속부(오른쪽)에 "이사지왕"이라는 한자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김재훈 기자>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왕명(王名)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발견됐다. 신라 최고지배층 무덤을 통틀어 발굴조사에서 왕의 이름이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산하 보존과학부가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글자는 칼집 금속 부분에 선으로 그려졌다. 칼집 하단 앞뒷면에 `이사지왕`과 `십(十)`, 칼집 상단에 `이()`가 각각 새겨져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또 다른 금관총 환두대도에서도 `이`, `팔(八)`, `십`이라는 명문이 확인됐다고 박물관은 덧붙였다. 송의정 고고역사부장은 "숫자는 부장한 대도의 일련번호일 수 있다"고 했다.

박물관은 `이사지왕`이 신라 금석문 등에 보이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이며, 이 명문과 다른 유물의 편년ㆍ규모를 감안할 때 실성왕과 눌지왕대인 5세기 중반부터 후반 사이에 무덤이 조성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고신라의 왕 중 누구에 해당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사지왕은 왕명이 아닐 수도 있다. 학계는 절거리라는 인물의 재산소유와 유산상속문제를 결정한 사실을 기록한 냉수리 신라비 문구에서의 왕을 `분` 또는 `님`으로 보고 있다.

이사지왕을 무덤의 주인공과 직접 연결하기에는 현단계에서 한계도 있다. 송 부장은 "금관총이 여자(왕비)의 무덤이라는 게 국내 고고학계의 정설"이라고 했다. 박물관 측은 여성용 태환이식(고리가 큰 귀고리)이 나온 것을 결정적 증거로 댔다. 대도를 허리에 차지 않은 것도 이를 선물로 받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박물관은 "천마총의 귀고리, 금녕총의 기마인물형토기도 피장자 쪽이 아닌 무덤 위쪽 적석에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금관총의 환두대도도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편 또는 가까운 친척이 헌납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금관총은 1921년 9월 건물 공사 중 신라 무덤에서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긴급 수습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처음으로 금관이 수습됐고 금동제 투구, 금ㆍ운제 허리띠장식 등 4만여 점의 화려한 유물이 출토됐다.

박물관은 "이번 명문 확인을 계기로 미공개 자료 조사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소장품에 대한 보존처리와 관리 방안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