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관으로 산다는 것은… (중앙일보 2014.09.10 11:12)
청와대 비서관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넘으면 체력도 아이디어도 고갈…행사보다 정책보좌에 충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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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여는 명절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진들은 제대로 된 연휴를 즐기지 못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대체 휴일제에 따라 대부분의 관공서가 10일 쉬지만, 청와대는 정상 근무 체제를 유지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연휴 기간 내내 출근했고, 수석비서관들이 교대로 출근하며 주요 국정 현안을 챙겼다.
이처럼 대한민국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다.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는 부러움을 사곤 하지만, 핵심에 가까이 갈수록 뜨거운 법이다. 자칫 긴장의 끈을 놓으면 크게 데기 십상인지라 각종 스트레스가 작용하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한 수석비서관은 "임명 받고 나서 축하 인사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정말 처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해주는 말"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각종 혜택을 누리던 국회의원 배지를 포기한 안종범 경제수석과 장관에서 차관급으로 급을 낮춘 조윤선 경제수석은 상대적으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더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정치적 무게감은 더 커졌지만, 기대 부응 부담은 물론 곁에 두다보면 안 보이던 티끌도 보이게 되는 법. 대선 캠프에서 보좌했지만, 청와대는 또 다른 곳이다. "잘해봤자 본전. 기회이자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서관들은 기밀 유출에 청탁에 얽히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적모임도 꺼리게 된다. 사실상 사생활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청와대 들어가더니 사람이 변했다"는 오해를 받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무는 공간도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의미의 위민관(爲民館)이다. 새벽 출근에 밤 늦은 퇴근, '화장실 가서 편히 일 볼 틈'도 없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면 건강을 잃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안고 휴일 없이 일하다 잇몸이 상해 몇 개의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 했던 전직 비서관들도 있다.
건강과 체력도 문제지만, 더 힘든 건 아이디어 고갈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전 수석비서관은 "1년 간은 에너지와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짠다. 바닥까지 긁어내다 보면 어느 새 방전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는 하루하루가 고역"이라고 말했다. 비서관은 크게 △대통령의 정책적 보좌 기능 △청와대와 부처의 연결 △대통령 관련 행사 주관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처음 1년간은 정책 보좌에 신경과 열정을 쏟아내지만, 갈수록 그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다.
정책 보좌는 대통령의 참모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쉽게 말해 내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간과한 것을 찾아내 대통령의 정책 구상에 담아내야 한다. 내각은 굉장히 실용적이다. 큰 그림을 보는 청와대보다 정무적 판단이 부족하다. 내각은 집행과 현장에 맞는 정책을 하고 청와대에서는 큰 흐름을 봐야 한다. 방전이 되면 이보다 부처와의 연결과 대통령 행사에 치중하게 된다.
비서관들은 "비서는 입이 없는 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어떤 현안이 발생해도 자신의 목소리를 절대 내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이런 참모로서의 역할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그런 탓에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통령의 지시가 워낙 구체적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 어설픈 대응책을 마련해 질책을 받기보다 대통령 지시를 기다리는 게 안전할 수 있으니…… 이를 그대로 부처에 전달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대통령 행사에도 공을 들이는 게 당연하다. 자칫 삐끗하면 말 그대로 '박살'이 난다. 문제는 에너지의 얼마를 이 기능에 할애하느냐다. 한 전직 수석비서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의 절반 이상을 행사에 집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 다음이 부처와의 연결 기능인데, 두 업무에 매몰되면 정책 보좌 기능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럴수록 비서관들이 궁궐 밖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내각을 뛰어넘는 뭔가를 던져야 한다.
유민봉 국정기획,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정부 출범과 함께 입성해 청와대 생활 1년을 훌쩍 넘겼고, 윤창번 미래전략,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1년이 됐다. 조윤선 정무, 안종범 경제, 윤두현 홍보, 김영환 민정,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은 위민관 밥을 100일 가량 먹었다. 모두 참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하려 할 건데, 과연 그 에너지를 어느 역할에 얼마만큼 나눠 쓰고 있을까.
청와대 근무기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것을 최대한 쏟아낼 기회라고 여기고 일하면 불만이 있을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자신 또한 새로운 빛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각오와 의사가 없는 자라면 굳이 청와대에 근무할 이유가 없지. 청와대 근무경력이란 게 그거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