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시시각각] "해경 간부들 1계급 강등시켜야" (중앙일보 2014.05.20 00:02)
[이철호의 시시각각] "해경 간부들 1계급 강등시켜야"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한 원로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해양경찰이 경찰청에서 독립할 때 누가 제일 좋아했는지 아느냐”고 자문(自問)하듯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농림수산위 의원들이다. 어민 표 때문이다. 해경이 단속하면 안 걸리는 배가 없다. 예전에는 경찰청에 부탁해야 했는데, 이제 전화 한 통이면 끝이라며 다들 환호했다.”
세월호 참사를 복기해 보면 부처 간 명암이 엇갈린다. 사고 당일 오전 8시20분의 미스터리 신고 전화는 ‘해프닝’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그날 수학여행 관광버스 안전 점검을 지시받은 제주경찰 김모 순경은 제주항에 갔다. 세월호가 안 들어오자 단원고 당직교사, 세월호 인솔교사와 통화를 시도했고 결국 청해진해운 제주사무실까지 찾아가 출항 연기를 확인했다. 육지 경찰의 실핏줄은 그렇게 살아 있었다.
8시52분 고 최덕하군의 최초 신고도 마찬가지다. 119상황실은 곧바로 해경과 3자 통화를 연결했고, 발신지 위치까지 매끄럽게 전달했다. 반면에 해경은 최군에게 “위치, 위도와 경도가 어디냐”고 엉뚱하게 물으며 골든타임을 낭비했다. 침몰 현장에선 해경보다 민간 어선들과 어업지도선이 훨씬 용감했다.
해경의 헛발질은 계속됐다. 세월호 내부의 학생들은 카카오톡으로 참상을 전하는데, 해경은 느긋하게 38분 뒤에야 팩스로 청와대·안행부·합참에 상황을 전파했다. 하기야 해경의 32%가 수영을 전혀 못한다는 통계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해경은 해수부 장관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 때 날개를 달았다. 2006년 해양경찰청장은 치안정감에서 치안총감으로 올랐고, 4개의 지방해양경찰청이 생겨났다. 이후 해경 인력은 2200명 늘어났으며 경감 이상 간부는 79%가 폭증해 승진 파티가 벌어졌다. 2008년 중국 선원의 흉기에 박경조 경위가 희생된 뒤로는 3000t 이상 경비함 함장(총경 밑 경정)의 연봉이 1억원을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된 시스템과 대안을 마련해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안전처·새 시스템·새 매뉴얼로 우리 사회가 안전해질까. 오히려 번짓수를 잘못 짚은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우선 원하는 건 확실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신상필벌이다.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원로 국회의원은 이런 처방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배울 게 하나 있다. ‘구조 0명’의 책임을 물어 총경 이상 해경 간부 전원을 1계급 강등하고, 지방해양경찰청을 없애는 일이다. 수영도 못하는 간부들은 육지 경찰청 밑으로 돌려버리고…. 이 모든 게 대통령령으로 가능하다. 국회의원이나 관료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팔다리를 자르는 모습부터 기대한다. 부산 표를 의식한 해수부 재출범 공약도 원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심한 조직은 화끈하게 징벌해야 모든 부처가 긴장한다. 공무원 징계를 더 이상 공무원 손에 맡길 일도 아니다. 납세자인 민간인들이 징계위원회에 대거 참가해야 공무원들이 ‘윗분’보다 국민의 눈치를 살핀다.
반면에 생명을 걸고 고생한 잠수요원들과 제대로 움직인 119 요원, 육지 순경 등은 가려내 따로 포상했으면 한다. 이들이야말로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사명감과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또 언제까지 국민에게 위기의 종류에 따라 112·113·122같이 복잡한 특수 전화번호를 외우도록 강요할지 의문이다. 차라리 모든 신고를 119로 몰아주고, 정부도 팩스 대신 카톡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지 않을까. 이런 게 바로 피부로 느끼는 대안일 듯싶다.
지난 주말 해경의 교신 기록을 꼼꼼히 읽었다. 그나마 “배에 올라 무조건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게 유도하라”고 거듭 지시한 목포해양경찰서장이 눈에 띈다.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전남 진도 출신인 그는 86년 해경 순경으로 입문해 두 차례의 경비함장과 수색구조과장 등 밑바닥부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바다를 아는 프로가 없는 게 아니란 얘기다. 참고로 필자는 호남 출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