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멀쩡하면 지원 못 받아요" 장애딸 안고 죽은 아빠에게 냉정했던 정부 (노컷뉴스 2014-03-09 07:00)
"사지 멀쩡하면 지원 못 받아요" 장애딸 안고 죽은 아빠에게 냉정했던 정부
빈곤층 아니면 정부지원금 못 받는 장애아동 가정…적극적 정부 지원 절실
늦은 밤까지 TV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아빠는 그 날 장애 딸을 끌어안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지난 3일 경기도 광주시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이모(44)씨와 지적장애 2급인 딸(13), 아들(4)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일가족을 발견한 건 이 씨의 아내 A(37)씨였다. A 씨는 소주병과 타다 반 번개탄이 나뒹굴던 방 안에서 아이를 안고 급히 방을 빠져나왔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숨지기 전 이 씨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세 아이를 홀로 키우던 씩씩한 아버지였다.
지난 2010년 재혼 후 장애 딸의 교육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던 이 씨 부부가 지난해 9월 별거에 들어가면서 아내의 빈자리는 오롯이 이 씨의 몫이 됐다.
아내가 집을 나간 뒤로 이 씨는 지적장애 2급, 지체 장애 5급의 중복 장애를 가진 딸 외에도 고등학생인 큰아들(18)과 막내 아들(4)을 돌봤다.
큰아들이 "아빠 돈 없냐"고 물었을 때도 "일용 노동을 하지만 아빠 열심히 일 한다"며 씩씩하게 답하던 그였지만 장애아를 키우며 나머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이 씨의 고단함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안이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고 전했다.
이 씨가 장애인 딸과 함께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들 가족이 죽기 전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무상 교육으로 인한 보육료가 전부였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전국가구평균소득 100%이하(4인 기준 438만원)로 18세 미만의 중증장애아동은 연간 320시간 내에서 '장애아동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장애아동 돌봄서비스'란 장애아 가족의 양육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덜고 양육 부담으로 인한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한 서비스로, 이 씨의 딸은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장애아동수당'도 이 씨의 가족은 제외였다. 지원 자격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지자체는 장애등급에 따라 5인 가족 기준 월소득 환산액이 183만원 이하인 기초생활수급자일 경우 10~20만원, 월소득이 219만원 이하인 차상위계층은 10만~15만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관계자는 "장애아동수당이 현금 지원이다보니 생활이 어렵고 장애아가 있는 가정에 한해서만 지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엄마 아빠 두 명 모두 장애아 한 명을 보살필 필요는 없지 않냐"며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면 몰라도 사지 멀쩡하고 젊은 분들까지 지원하게 되면 일을 하지 않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 "소득에만 지원 기준 맞춘다면 안타까운 선택 이어질 수도"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 기준을 소득에만 맞추다보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애 가정들이 양육 부담과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복지시민연대 선지영 사무국장은 "삶을 비관한 자살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지금의 조건에서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재단을 해 버린다"며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으면서 사건이 터졌을 때만 도와주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장애 가족들은 보육료 지원과 같이 장애 아동 부양에 발생되는 비용을 소득 기준에 관계없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처장은 "장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 외에도 추가로 발생하는 금액이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장애아를 양육할 때 경제적 부담 없이 양육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 2011년 장애아동 복지지원법이 제정돼 현재 시행되고 있지만 장애아동에 대한 가족 지원이 현실에서는 시행이 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별도로 책정해 집행한다면 일가족 자살과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