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박근혜 시대는 관료 출신, 올드보이 전성시대? (조선일보 2013.08.24 14:16)
[월간조선] 박근혜 시대는 관료 출신, 올드보이 전성시대?
"나이·출신 상관 없이 사람 쓴다"
⊙"망각의 세월에 산다"며 몸 사리는 7인회 멤버들
⊙정무감각, 포용력 약한 관료그룹? 박 대통령이 잘 판단해 써야
⊙ "고통 없이 털 뽑는다, 그게 말이 돼요?"(7인회 멤버 중 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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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8월 5일 청와대 비서진 개편에서 김기춘(오른쪽)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
요즘 국회 주변에서는 ‘박근혜 시대는 원로(元老) 전성시대, 올드보이 전성시대’라는 얘기가 나돈다. 3선(選) 국회의원 출신의 허태열(許泰烈) 대통령비서실장 후임으로 70대(代)인 김기춘(金淇春) 전 법무장관이 등장하면서 국회의원이나 보좌진 사이에는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대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며 사실상 현오석(玄旿錫) 경제팀을 질타하자, 80대인 김용환 전 재무장관(새누리당 상임고문)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발탁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김용환, 김기춘 두 원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이른바 ‘7인회’에 같이 속해 있다.
출범 6개월 된 박근혜 정부. 과거 같으면 집에서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소일할 것 같은 원로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관료 출신의 60~70대(代)가 적지 않다. 청와대에는 김기춘(74)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장수(金章洙·65·국방장관) 국가안보실장, 박흥렬(朴興烈·64·육군참모총장) 경호실장, 주철기(朱鐵基·67·駐프랑스 대사) 외교안보수석 등이 있다.
현직 기관장으로는 남재준(南在俊·69·육군참모총장) 국가정보원장, 현경대(玄敬大·74·검사 및 정치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경재(李敬在·72·언론 및 정치인) 방송통신위원장, 김동호(金東虎·76·문화부 차관) 문화융성위원장, 이원종(李元鐘·71·도지사)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장 등이 있다.
지난 대선(大選)에서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선거판을 주물렀던 김종인(金鍾仁·73·장관 및 정치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병호(金秉浩·70·언론 및 정치인) 전 새누리당 공보단장,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용준(金容俊·75·법조인)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홍사덕(洪思德·70·언론 및 정치인) 전 국회부의장 등도 눈에 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 소속의 김용환(金龍煥·81·관료) 새누리당 고문, 최병렬(崔秉烈·75·언론 및 정치인)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金容甲·77·군 및 정치인) 전 총무처 장관, 안병훈(安秉勳·75·언론인) 기파랑 대표, 강창희(姜昌熙·67·군 및 정치인) 국회의장 등의 정치적 중량감이 대단하다.
“80살이든 90살이든 나이 중요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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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용환 전 재무장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 |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이 많은 옛 인물들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언론사 간부 출신으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여성 지도자는 심리학적으로 나이 많은 참모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20대 초반부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따르는 참모들과 같이 호흡해 왔습니다. 퍼스트 레이디로 국정에 참여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고민도 같이 했어요. 그게 몸에 뱄습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가 80살이든 90살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물론 아직 인사(人事)에 자신감이 있어 보이진 않아요. 그렇다고 국정운영에 실수란 용납할 수 없지요. 그래서 경험 많고 믿을 만한 관료 출신 인사들을 선호해요. 국정운영에도 자신감이 생기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물을 고를 겁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9년 동안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했던 ‘대통령 전문가’ 김충남(金忠男) 박사도 “박 대통령에게 참모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기춘 실장이 박정희 시대에 일했다거나, 74세로 나이가 많다거나 하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자신이 일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뽑은 것에 불과해요. 70대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요.”
‘야인(野人) 박근혜’ 시절부터 옆에서 그를 지켜온 한 원로급 인사는 지난 3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용인술’과 관련해 “비서는 철저하게 비서다. 언론이 긁지 않는 한, 절대 튀지 않는 한 그와 함께 간다. 튀면 죽는다. 나이가 적고 많고도 관계없다. 70이 넘은 비서도 있고 어린 비서도 있다”고 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의사결정의 핵심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경험 많은 사람을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인선의 원칙은, 특정그룹에 의해 힘이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정권 출범 전후로 이른바 7인회로 알려진 사람 중에 몇 명이 정부 요직에 여러 사람을 추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정인의 이름이 거론되다가 잡음이 들리면 그 사람 이름은 쏙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옵디다. 박 대통령은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권력 분할정치’를 합니다. 김기춘 실장 본인이 2인자라고 생각하면 큰일 나요.”
‘박 대통령이 튀는 것을 싫어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과 관련해 한때 ‘정치인 박근혜’의 핵심참모 역할을 했던 윤여준(尹汝雋)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일종의 관리형 리더십이다. 그에겐 ‘실수는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경험 많은 김기춘 전 장관을 비서실장으로 골랐을까. 김 실장과 동년배인 박찬종(朴燦鍾) 변호사의 말이다.
“김기춘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것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아 당연히 들어갈 녀석이 들어갔구나’라고 봅니다. 김기춘이는 1960년 사법고시 최연소자 동기고 군대도 같이 갔다 왔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온 이후에는 줄곧 옆에서 보좌했고 7인회 때도 열심히 조언했지요. 서면보고나 구두(口頭)보고할 때 상관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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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병훈 기파랑 대표, 강창희 국회의장, 남재준 국정원장,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
지난 8월 5일 청와대 비서진 개편으로 김기춘 실장이 전면에 등장하자 7인회 같은 원로급 인사들은 언론 접촉을 꺼려 하고 있다. 권력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7인회 멤버로 알려진 몇몇 인사에게 연락했으나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사정을 하자 한 인사는 “나는 세상 일 잊고 사는,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니까 내 말에 의미를 절대 두지 말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귀찮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와요. 인터뷰 안 한다고 해도 또 전화해.”
—누구는 원로 전성시대라고 하고, 누구는 올드보이 전성시대라고 해요.
“아무튼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박근혜 대통령과는 가끔 연락하십니까.
“취임하기 전까지는 좀 했는데, 그 이후에는 뭐 할 이유가 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청와대 비서진을 생각보다 큰 폭으로 개편했습니다.
“김기춘이는 7인회하고 상관없이 발탁된 거요. 다른 사람도 대통령께서 필요하니까 자리를 맡긴 거고요. 괜히 7인회가 무슨 권력행사하는 사조직처럼 비쳐서는 안 돼요.”
—대통령의 인사(人事)스타일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죠.
“인사만큼 어려운 게 어디 있겠소. 사람 쓰는 것은 대통령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
—청와대나 장차관 자리에 관료 출신이 많다는 평가에 대해서는요.
이 인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관료라도 능력이 있어야지요. 공무원들요? 눈치 보는 거 잘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일 때는 슬쩍 빠지고…. 경력, 학력 좋더라도 어떤 정무적 상황에 부딪히면 판단력이 꽝인 사람이 많아요. 조원동 경제수석 그 사람 말이야, 세제개편안도 개편안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고통 없이 거위 털을 뽑는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청와대에 그런 의견 전달하셨습니까.
“뭐, 그런 걸 전달합니까. 혼자 중얼거릴 뿐이지. 이제 그만 합시다. 나는 망각의 세월에 사는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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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병호 전 새누리당 공보단장, 김용준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보다 행정 경험이 많은 관료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청와대 비서진과 정무직 자리에는 관료 출신이 두드러진다. 국무총리와 장차관 44명 중 관료 출신이 70.5%(31명)에 이른다.
현재 청와대 비서진에도 직업공무원들이 많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다가 지금은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으로 있는 한 인사의 말이다.
“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의 60~70%가 캠프(정치권) 출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정치권 출신이 30% 수준에 불과해요. 대부분의 자리를 관료, 직업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은 ‘관료들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료 중심’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핵심변수만 보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그것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지요. 그는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민심이 무섭다는 걸 알아요. 그 일을 관료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료를 중시하면 역동성을 잃을 수도 있어요.”
황주홍(黃柱洪) 민주당 의원은 관료 출신들이 장차관에 임명되는 것을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20~30년 동안 편하게 철밥통 자리에서 반질반질한 돌멩이처럼 처신하며 산 사람들이 관료들입니다. 그들은 윗사람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못해요.”
황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 기준은 이념적 동질성과 은원(恩怨), 즉 은혜와 원한 관계”라며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인재풀이 협소해 포용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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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박흥렬 경호실장. |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李源宗) 인하대 초빙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과 기준을 일단 믿어야 한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도 관료나 학자 중심으로 인사를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이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데는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관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관료가 많으면 창조적 사고가 힘들어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포용력, 관용이 있는 사회적 리더십이 필요한데 관료집단은 이 부분에 약합니다.”
‘대통령 전문가’ 김충남 박사도 비슷한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사회 여론도 인터넷, SNS를 통해 순식간에 바뀝니다. 관료사회는 급변하는 민심에 즉각 반응하고 대안을 내놓는 데 부족해요. 박근혜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을 잘해야 해요. 이번에 문제가 된 기재부의 세제개편안 번복 사례를 봐요. 발표하기 전에 청와대가 정부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사전에 조정했어야 해요. 관료적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계속 터질 겁니다.”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태(金容兌)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와 여당 간 의사소통이 안 되다 보니 청와대 비서진 개편 소식을 당에서 사전에 안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때 만기친람(萬機親覽·왕이 모든 일을 챙긴다는 의미)을 많이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정치권 문제는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 이런 식의 모습을 보여 걱정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재선(再選) 의원은 “외교관 출신을 국내 정치권에 투입했는데 여기에는 박 대통령의 결벽주의가 작용했다고 본다”며 “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존중하고 친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의 脫여의도 분위기
청와대의 탈(脫)여의도 분위기로 인해 청와대 행정관들이 국회를 찾는 일이 뜸하다고 한다. 국회를 오랫동안 담당해 온 정부기관 간부의 얘기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들을 비롯해 청와대 사람들을 국회에서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여의도에 안 나가는 게 청와대의 방침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당이나 국회 출신 행정관들이 여의도에 자주 나왔고, 심지어 의원총회 현장까지 들렀습니다. 이들이 보고하는 내용을 통해 청와대는 국정방향을 잡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행정관들은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며 전화로 일을 본다고 해요. 그래서 답답해하는 행정관들도 많다고 합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런 말도 했다.
“정부 출범 때 청와대 최고위층 인사가 국회 보좌관 출신 행정관들에게는 높은 직급을 주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국회에서 간 행정관들은 국회 상임위에서 활동했던 부서와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았다고 해요. 직급도 낮고 업무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 배치된 행정관들이 많아 지금의 청와대는 중앙부처에서 공무원들의 입김이 세다고 합니다.”
정치권은 주(駐)유럽연합·벨기에 대사 출신의 박준우(朴晙雨) 정무수석의 임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박 수석 발탁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분은 국내 정치는 모르지만 정무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다. 반기문(潘基文) UN사무총장 만들 때도 큰 역할을 했다. 언론사 고참 기자들도 많이 안다. 그분은 특히 민주당 인사들과 교분이 깊다.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부 때 외교부에서 잘나갔다. 야당과 조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정치에 대해 우려가 있는데 걱정 안 해도 된다. 대통령께서 스스로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고 새로 들어온 김기춘 실장이나 이정현 홍보수석, 김선동 정무비서관 등이 당내 핵심 인사들과 조율이 잘 된다.”
정권 출범 6개월이 지난 현재, 청와대와 정치권이 각종 현안으로 꼬여 있다. 김충남 박사는 “지금은 어렵지만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평가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달리 국회에서 15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탄탄한 기초를 닦은 분이죠. 5년 단임제 때문에 대단한 위업을 남기기는 어렵겠지만, 선진국형 민주주의에 입각한 국정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줄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쇼 같은 것은 안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