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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마니아들이 평가한 진짜 평양냉면 맛집은? (조선일보 2013.06.11 09:00)

수퍼보이 2013. 7. 23. 01:33

냉면마니아들이 평가한 진짜 평양냉면 맛집은?

[여름철 냉국수 시리즈 3] 평양냉면의 强豪를 찾아서

 

빼어나게 잘 생기거나 예쁘지는 않지만, 내면에서 우러나는 온화한 성격이나 정감 있는 모습을 지닌 이들을 보고 우리는 흔히 ‘볼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첫눈에 호감을 사기 보다는 ‘볼수록 매력적이다’라는 뜻이다.

음식에서는 마치 평양냉면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평양식 냉면은 불필요한 감미료 넣을 것 없이 오랜 시간 푹 우려낸 육수(肉水)와 고루 잘 삶은 고기 몇 점, 투박하게 뽑아낸 순수 메밀 면의 삼박자만으로 맑고 담백한 맛이 난다. 첫맛은 싱겁다 못해 밍밍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두세 번 먹고 나면 나중에는 그 특유의 밍밍함이 자꾸만 생각나고 당긴다.

별 거 아닌 듯해도 육수와 면발, 고명의 밸런스가 잘 맞아야 ‘중독성 있는’ 밍밍함이 된다. 육향의 정도와 메밀 함유량에 따른 면의 촉감이 얼마만큼 조화를 잘 이루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냉면의 어느 요소도 허투루 생각해선 안 된다. 결국엔 본질이 중요하다.

맵거나 짠, 또는 지나치게 단 음식에 입맛을 고스란히 내준 요즘의 외식문화에서 그래도 평양식 냉면의 ‘無’에 가까운 맛은 순수하면서도 정직해서 고맙다. 냉면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양식의 담백한 냉면이 가장 핫한 메뉴로 손꼽힌다.

냉면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들과 함께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평양냉면 집들을 찾아다니며 각각의 냉면 맛을 비교, 분석했다. 냉면 자체의 맛은 물론 ‘선육후면’의 순서로 고기(수육, 만두 포함)를 먹고 난 후 냉면으로 마무리 했을 때의 맛까지도 골고루 평가했다. 개중에는 2대, 3대가 이어가고 있는 유서 깊은 곳들도 있고 앞서 설명했듯 육류와 심심한 평양냉면의 조합을 구성한 고깃집들도 있다.

평양냉면 로드 평가단
-건다운(박태순): 맛집 파워블로거이자 음식칼럼니스트. 쌀 한 톨도 못 삼킬 정도로 아픈 지독한 몸살감기 중에도 평양냉면은 한 그릇을 꼬박 비워야 낫는다는 진정한 냉면마니아다.
-아포리아(김인규): 맛집 파워블로거 김인규씨는 평소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평양냉면 로드를 기획해 다닐 정도로 냉면을 사랑한다.
-나나(서연지):요리전문 블로거로 만만치 않은 면요리 마니아. 주부인 나나 씨는 집에서 직접 담근 동치미 국물에 소면을 말아먹는 일이 일상이다.
-면장(최완재): 평양냉면 로드 당시 가는 집마다 국물 한 점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렸을 정도로 냉면을 사랑하는 남자. 앉은 자리에서 기본으로 국수 세 그릇을 쉬지 않고 먹는다.
-한식요리전문가 <더함>의 김인복 대표: 만만찮은 주당과인 김인복 대표는 평양냉면을 식사와 동시에 술안주로도 자주 즐긴다. 자극적이지 않은 육수와 담백한 메밀 면은 소주 안주로 최고라고.

	냉면마니아들이 평가한 진짜 평양냉면 맛집은?

은은하게 올라오는 육향과 터프한 식감의 면이 인상적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

서울시 장충동에 위치한 <평양면옥>은 유독 색이 맑은 육수와 은은하게 올라오는 육향이 매력적인 집이다. 면요리 전문 블로거인 면장은 “이 집의 냉면의 첫 맛은 마치 맹물에 면을 타 먹는 것처럼 육수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젓가락, 세 젓가락 이상 먹다 보면 탱글탱글한 면의 식감 속에 은은하게 올라오는 육향이 느껴져 전체적으로 깔끔하다”고 설명한다. 조미료를 최대한 배제하고 육수를 좀 더 우려내 깔끔한 육향을 더했고 고명으로 올린 소 편육과 돼지 제육의 삶김 정도로 훨씬 좋아졌다는 평이다. 면은 약간 아쉬웠다. 면 삶김 정도의 평균 수치가 ‘5’라고 가정했을 때 이날 <평양면옥>의 면은 7~8정도로 더 삶겼다. 약간 불어있는 듯하다는 평가였다.

제육 한 접시(2만3000원)와 만두(한 접시 1만원)도 주문해 맛을 봤다. 만두 속의 잘게 간 고기와 숙주나물의 식감의 조화가 훌륭하다. 이북식 손만두 특유의 심심한 맛이 냉면과 잘 어울린다. 제육의 경우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도 적당하고 부드럽게 잘 삶겼다. 냉면과 함께 먹었을 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무난한 느낌이다.

총평: 은은하게 올라오는 육향으로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정돈돼 있는 맛. 제육이나 만두의 퀄리티도 훌륭한 데 반해 ‘가격대비’를 생각한다면 글쎄올시다. 평양냉면 접시만두 각각1만원, 제육 2만3000원



	냉면마니아들이 평가한 진짜 평양냉면 맛집은?

짭짤한 풍미의 대중성 짙은 평양냉면 그러나 옛 명성은 어디에?
서울 입정동 <을지면옥>

<을지면옥>의 냉면은 비교적 대중화된 맛에 가깝다. 보통의 평양냉면의 공식은 ‘첫 맛은 밍밍하다’는 것인데 이집의 냉면은 육향이 진하게 올라오고 촘촘하게 뿌린 고춧가루와 파채의 알싸한 향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간이 돼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요리 전문 블로거인 나나는 “조미료의 맛이 강하다는 느낌도 든다.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우동이나 잔치국수의 국물 맛과 흡사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면은 비교적 가는 편이고 메밀 함유량도 높지 않다. ‘소면’처럼 부담 없이 후루룩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굵기와 맛이다. 건다운은 ‘예전의 명성을 찾을 길 없이 급락하고만 정통 평양냉면집’이라고 잘라 말했다. 통속적인 국물 맛의 냉면도 그렇지만 화학조미료의 풍미가 느껴지는 편육도 마찬가지라고.

‘선육후면’의 기준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돼지고기 편육은 잘 삶아서 식힌 고기라 여름에 먹기에 괜찮은 편. 차갑게 내는 편육에 짭짤한 물냉면을 먹는 조화로 봤을 때는 무난하다는 평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삶아 내는 편육과 차별성은 확실히 있다.

총평: 차갑게 식힌 편육과 비교적 짭짤한 냉면 육수의 조화는 괜찮은 편. 그러나 조미료 맛이 강하다. 간혹 육수나 면발의 질감에 있어 기복이 심한 집들도 있게 마련이니, 다시 괜찮아질 날을 기대해본다. 평양냉면 9000원 편육 1만4000원


	냉면마니아들이 평가한 진짜 평양냉면 맛집은?

시원한 얼갈이김치와 묵직하게 감기는 담백한 육수의 완벽한 밸런스
서울 방이동 <봉피양>

<봉피양>은 2대, 3대가 이어가고 있는 냉면집들에 비해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평양냉면 맛을 구현한 ‘고깃집’으로는 최초가 아닐까 싶다.

결과는 명불허전이다. 이집 냉면의 특징은 담백한 듯 하면서 구수한 맛이 깊게 우러난다는 점이다. 마치 우유를 먹을 때 느껴지는 구수함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집들에 비해 면을 굵게 뽑아내는 편이다. 그래서 면발이 투박하면서도 묵직하다. 구수한 육수와 함께 메밀 면 특유의 향과 터프한 식감을 제대로 맛보라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콤하게 무친 얼갈이김치와 부드러운 수육을 곁들여 먹으면 한 그릇 냉면에서 ‘요리’로 옷을 갈아입는 듯한 느낌이다.

돼지갈비의 가격은 비교적 비싼 편(270g 2만4000원)이다. 평가단 중 일부는 “냉면의 명성에 비해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하기도 했다. 과하게 짜거나 달지 않아 맛있는 양념에 비해 고기가 빨리 말라 쉽게 텁텁해진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냉면의 품질이 받쳐주기 때문에 ‘선육후면’의 구성에 맞게 돼지갈비와 냉면을 함께 맛본다면 훌륭한 수준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총평: 담백하면서도 깊게 우러나는 구수한 육수의 육향이 살아있다. 얼갈이김치는 이집 냉면의 확실한 트레이드마크다. ‘선육후면’ 키워드를 살리려면 돼지갈비에 더 신경 써야 할 듯. 평양냉면 1만2000원 돼지갈비 2만4000원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 냉면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

개운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국물, 변하지 않는 이 맛이 진리
경기도 의정부 <평양면옥>

냉면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 냉면 맛집의 계보는 세분류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파 송송 고춧가루 팍팍’ 들어간 스타일의 냉면이다. ‘파 송송 고춧가루 팍팍’ 스타일의 본가이기도 한 경기도 의정부의 <평양면옥>을 찾았다. 이집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꾸준한 맛으로 참가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적당하게 쫄깃한 면발에 차고 맑은 육수, 그리고 고춧가루와 파의 알싸하고 매운 향이 잘 어우러져 나름의 독특한 맛을 낸다. 간혹 고춧가루의 맛 때문에 육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의견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유향이나 여건에 휩쓸리지 않고 이집만의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칭찬할 만한 요소다.
맛집 파워블로거 아포리아는 이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차갑게 식힌 시원한 콩나물국을 먹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미묘한 육수 맛 때문에 자다가도 생각나는 집이라고 덧붙였다. 고명으로 돼지고기 제육과 소고기 수육을 골고루 올려준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은 부족하지만 찬 냉면에 곁들여 먹기에 충분히 고소하다.

평안도식 구수한 만두에 질 좋은 제육까지 곁들여 먹었다. 담백한 만두와 따뜻한 제육을 먹고 난 후 고춧가루의 매콤한 향이 감도는 시원한 냉면으로 마무리하니 입안이 개운하다.

총평: 시원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육수 맛이 포인트. 무엇보다 언제 방문하더라도 맛이 일정하다는 강점이 있다. 평양냉면 9000원 접시만두 8000원 제육 1만2000원



	서울 주교동 <우래옥> 냉면
서울 주교동 <우래옥>

60년 전통의 평양냉면 名價
서울 주교동 <우래옥>

<우래옥>은 서울·경기 지역을 비롯해 전국의 정통 평양냉면 집들 중에서도 꽤나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 중 하나다. <우래옥>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진하게 올라오는 육향이다. 그래서 다른 집들에 비해 싱겁거나 밋밋한 맛이 덜 한 편이다. 짙은 육수와 순면의 밸런스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잘 맞기 때문에 마니아도 마니아지만 평양냉면 초보자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겨울철에는 고명으로 오이지와 수육을, 그리고 배가 맛있는 계절에는 배를 채 썰어 올린다. 각 식재료가 지닌 고유의 향과 식감이 메밀 면과 개성 있게 잘 어울려 어느 계절에 먹어도 우래옥 스타일의 진한 냉면을 맛볼 수 있다. 기호에 따라 같이 나오는 동치미 국물을 섞어 좀 더 시원하고 맑게 먹어도 별미다.

냉면을 먹기 전 불고기(150g 2만9000원)를 먼저 주문해 맛을 봤다. 가격이나 명성에 비해 특별한 맛을 찾아내긴 힘들었다. 사실 어느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럭저럭’ 수준의 평이한 불고기다. 합리적인 가격에도 충분히 맛있는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실속 있는 집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가격대비 만족도’를 느끼기에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다. ‘선육후면’의 조화는 훌륭한 편이다. 야들야들한 불고기를 먹고 난 후 육향 짙은 우래옥 스타일의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적어도 입이 심심하지는 않다는 것이 절대적인 평.

총평: 밍밍하거나 싱겁기 보다는 짙은 육향으로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정통 평양냉면이다. 주머니가 두둑한 이들에겐 불고기와의 조화가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부담스러운 건 사실. 평양냉면 1만1000원 불고기 150g 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