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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탐구] 래리 페이지, "인간 두뇌 복제 어렵지 않아 곧 완성" (조선일보 2013.06.02 09:56)

수퍼보이 2013. 6. 2. 11:25

[혁신가탐구] 래리 페이지, "인간 두뇌 복제 어렵지 않아 곧 완성"

 


	래리 페이지/ 일러스트=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래리 페이지/ 일러스트=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어느날 구글에 근무 중인 과학자가 CEO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에게 물었다.

구글 X의 목표가 무엇인가.연구소인가.
“아니다.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새 기업을 키우는 인큐베이터(창업보육기관)인가.
“그것도 아니다.”
 달 탐사하는 곳인가(Are we taking moonshot)?
“그래, 바로 그거다(Yes, that’s it). 그걸 목표로 하자.”

구글, 그것은 ‘괴물’의 탄생이었다. 인터넷 사용자 10명 중 9명이 구글을 검색엔진으로 쓴다. 스마트폰 10대 중 7대는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 운용체제(OS)가 탑재된다.  천하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벌벌 떤다. 덕분에 구글엔 돈이 넘친다. 지난해에만 53조원을 벌었고 13조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이제 공상(空想)을 현실로 만드는 비밀 연구소 ‘구글X’까지 운영하고 있다. 

◆ “빠른 성공이 두렵다”최고 인재만을 고집했던 래리 페이지

구글 출발은 논문 작성이었다. 1997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페이지는 친구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논문을 쓰기 위해 검색 엔진 ‘백럽(BackRub·구글의 전신)’을 만들었다. 그들은 검색엔진을 팔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아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브린의 여자친구 수잔 보이치키가 방 한 칸을 내줬다. 그 다음은 ‘승승장구’였다. 지난 5월 31일 기준으로 구글 시가총액은 3000억 달러(약 337조원)에 육박한다.

페이지는 성공하면 할수록 인재 확보에 매달렸다. 2003년부터 7년간 구글에서 근무한 크리스틴 사이 스타트업500 파트너는 “페이지는 정말 모든 지원자의 이력서를 일일이 검토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내신 성적 소수점 한자리까지 따져가며 웬만한 지원자는 떨어뜨리고 최고 실력자만 뽑으려고 했다. 당시 구글 면접은 독특하고 황당하기로 유명했다. ‘스쿨버스에는 골프공이 몇 개가 들어가나?’ ‘시애틀의 모든 건물의 창문을 닦아주면 얼마를 받아야 하나’는 식이다. 엔지니어들에게는 이론적인 질문도 많이 했다.

김진형 KAIST 교수도 “구글에 근무하는 빈트 서프(Vint Cerf)박사가 한번은 한국에 와서 그러더라. 구글이 너무 빨리 성공해 창업자들이 오히려 두려움이 있었다고. 그러다보니,인재를 뽑는 데 유난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2003년만 해도 구글 직원 수는 800명 정도였다. 지금은 5만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구글 채용 문턱은 다소 낮아진 편이다. 오래된 구글 직원들 사이에서는 ‘신입 직원들이 막 들어오는 것 아닌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세계 정보를 장악한 구글, 이제 인공 지능이다”

2005년 페이지는 스탠퍼드대 컴퓨터 과학자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urn) 교수를 만났다. 당시 스런 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들과 함께 무인(無人)자동차를 연구하는 팀을 이끌고 있었다. 스런 교수는 무인자동차로 모하비 사막에서 장애물을 뚫고 7마일을 운행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고 페이지는 큰 감명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로봇 공학이 결합하는 세상을 토론하며 친구가 됐다.

2010년 구글은 X연구소를 비밀리에 설립한다. 초대 소장은 스런 교수였다. 마치 미국 정보조직인 CIA처럼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구글X 내부 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SF 공상영화에 나올법한 황당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구글X에서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구글X는 ‘달탐사(moonshots) 공장’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세간을 화제를 모은 ‘구글글래스(안경처럼 쓰는 컴퓨터)’도 구글X의 작품이다.

페이지는 구글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특히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 이미 2000년에 페이지는 “인공 지능은 구글의 궁극적인 목표(the ulimate version of Googl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페이지는 “이런 목표에 근처도 가지도 못했다”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과 7년 뒤 페이지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2007년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연례 콘퍼런스 특강 자리에서 그는 “인간의 지능도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어서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구글X는 ‘인공 신경망’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구글X가 개발한 기계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해 1000만장 사진 중 고양이 이미지를 정확히 골라냈다.  무엇이 고양이인지 사전에 알려준 적은 없었다. 

스티브 첸 유튜브 창업자는 “페이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그저 그런 일과 돈을 벌지 못하지만 대단한 일이 있다면 후자를 택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를 창업하고 나서 구글에 매각하면서 페이지와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다.  

◆ 경영 전면 나선지 1년 만에 목소리를 잃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창업 멤버는 아니다. 대학원생이었던 창업가들을 도와 구글을 이끌 구원투수로 2001년 영입된 인물이었다. 슈미트 회장은 구글을 이끈 지 10년 만인 지난 2011년 “구글에 더는 ‘매일 챙겨주는 어른 감독(Day-to-day Adult Supervision)’은 필요없다. 리더가 되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구글 새 CEO로 등장한 사람은 페이지였다.

운명의 장난일까. CEO로 선임된 지 1년쯤 지난 지난해 6월 페이지는 목소리를 잃었다. 구글 연례 개발자 회의에 불참하고 실적 발표회에도 나가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다. 알고보니, 그의 양쪽 성대(聲帶) 모두 마비돼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달 15일 구글 개발자 연례 회의 첫날. 건강이상설이 나돌던 페이지가 깜짝 등장했다. 예고 없는 구글 창업자 등장에 6000여명 개발자의 환호소리도 컸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전치 않았다. 귓속 말을 하듯 부정확한 음색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미국을 가로질러 온 가족을 로봇 콘퍼런스에 데리고 갔습니다. 연소자가 입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한참이나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어린 아들도 콘퍼런스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지요.”

1년 만에 입을 연 그의 첫마디를 꼽씹으면, 구글의 성공 비결과 변함없는 목표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은 유대인 가정, 6살때부터 퍼스널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 있었던 환경(아버지는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 교수), 어릴 적 봤던 로봇에 대한 열정까지.

어찌보면 구글은 어릴 적 꿈을 향해 가는 페이지의 거대하고 집요한 여정일 수 있다. 이젠 고인이 된 부친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그는 “아직 우리는 1%밖에 이루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보자”고 말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