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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부 동 산

기획부동산의 진화… "수법보니 기가 막혀!" (조선일보 2013.01.03 14:05)

기획부동산의 진화… "수법보니 기가 막혀!"

 

  • 허성준 기

    입력 : 2013.01.03 14:05

    “처음엔 전화상담직이라고 했어요. 기본급 70만원에 판매에 성공하면 판 가격에 20%를 떼 준다고 하니까 얼른 취직했죠. 근데 그 회사가 기획부동산인지는 몰랐어요. 제 나이 또래 상담직들도 대단히 열심히 하니까 저도 따라서 하게 되더라고요. 알고 보니 뭘 지을 수도 없는 땅이어서 지인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어요.”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김영자(55·가명)씨는 최근까지 속칭 ‘기획부동산’에서 6개월간 근무하다 회사를 그만뒀다. 남편이 퇴직하면서 생활비가 부족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아무것도 지을 수 없는 땅인데다 공시지가보다 최소 10배 이상 가격을 부풀려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 욕심에 지인에게 팔았다가 소송까지 당할 뻔했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서범석(61·가명)씨는 부동산을 잘 안다는 지인의 소개로 지난해 초 강원도 춘천 소재 땅 330㎡(100평)을 샀다. 투자금액이 3.3㎡당 50만원 수준이어서 큰 부담이 없었고, 매도자가 각각 지적도를 가져와 땅의 위치와 개발계획까지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잔금을 치르고 보니 지적도는 가짜였고, 일대 5000㎡의 땅에 수십명이 공동 소유권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씨는 땅을 처분하지도, 이용하지도 못하고 500만원을 날렸다.

    2011년 3월 14일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역 뒷산의 모습이다. 기획부동산들은 최근 몇 년간 이 일대를 사들인 뒤“골프장과 리조트가 들어선다”며 일반 투자자들을 모집해 공시지가의 100배 이상으로 쪼개 팔았다. 그러나 실제 팔린 지역에 가보니 경사가 가파르고 나무가 우거져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다./조선일보DB
    기획부동산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통 수도권과 먼 지역의 토지를 개발계획이 많은 것처럼 꾸미고 분할해 팔던 수법이었지만, 최근 토지분할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토지 상담역을 구하는 것처럼 꾸며 지인에게 땅을 팔게 하도록 하거나 펀드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돈을 받고 잠적하는 등의 새로운 수법이 나오고 있다.

    최근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다단계 판매식 기획부동산이다. 일반 텔레마케팅직보다 높은 급여(기본급)와 근무조건을 제시해 고용한 뒤 토지를 매입하게 하고 그 토지를 다시 판매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강원도 춘천 소재의 ‘O’ 컨설팅 사장은 “무작위로 전화해 땅을 소개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자 최근에는 지인들에게 땅을 소개하고 팔 수 있도록 아예 사람들을 고용하는 형태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특히 50~60대 은퇴한 사람이나 가정주부는 아는 지인이 많기 때문에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소재 기획부동산에서 근무했던 박성준(32·가명)은 “최근에는 젊고 잘생긴 30대 초반 남성을 매니저로 채용하고, 40~50대 아주머니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데려오게 하는 수법도 유행”이라고 말했다.

    실제 땅이 분할돼 있지 않으면서도 가짜 지적도를 보여주며 땅을 파는 사기사례도 왕왕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지자체별로 토지분할을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나온 신종 수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기획부동산은 신문광고까지 할 정도로 대담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며 “지자체별로 다르긴 하지만 일정 규모 토지를 3필지 이상 쪼개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먼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밖에 해당 토지에 대해 매매계약만 체결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폭리를 취해 되판 뒤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수법, 부동산 투자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소액 투자자를 모집하는 수법 등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토지를 매입할 시에는 해당 토지의 번지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개발계획 등도 지자체의 도시계획·도로 담당 부서의 공무원에게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