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역사학계 곤혹”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299통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그랬을 것이라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었던 일이 정말로 그랬다”는 것으로 드러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막후 정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막후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이번 정조어찰은 그런 점에서 핵폭탄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했으며,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비밀편지가 공개됨으로써 가장 크게 타격을 본 곳은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던 측이라기보다는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조실록 1797년 10월7일 기록을 보면 우참찬 심환지가 정리곡(整理穀.구휼기금 일종)을 돈으로 나눠 주고 쌀로 받아들이는 등의 폐단이 있으니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정조가 이를 칭찬하면서 표범 가죽 1장을 상으로 내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
이로써 본다면 정리곡 폐단의 시정은 심환지가 먼저 제안을 하고 정조가 받아들여 시행한 셈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어찰 중 1797년 10월5일자 편지에서 정조는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조만간 대차(次對.회의 일종)를 행할 생각이니 경(卿)이 곧바로 (이 문제를) 거조(擧條.발의)함이 어떠하시오”라는 제안을 했다.
심환지는 정조의 제안을 실행에 옮긴 데 지나지 않은 셈이다. 정조실록의 관련 기록이 오류는 아니지만, 그 진행과정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1798년 11월1일자 정조실록에는 심환지가 영조시절인 1760년에 사도세자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온양 온천에 행차했을 때 승지로서 그를 수행한 죽은 임위(任瑋)의 벼슬을 높여주자고 청하니, 정조가 임위에게 좌찬성을 추증하고 충열(忠烈)이란 시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번 정조어찰 1798년 10월14일자 편지를 보면 이것이 모두 정조 자신이 ’연출’한 작품으로 드러난다.
이 편지에서 정조는 임위를 추증하자는 제안을 심환지더러 하라고 시킨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제안을 할 적에 심환지가 해야 할 말까지 다음과 같이 자세히 적었다.
“죽은 승지 임위는 지난날 궁관(宮官)으로 (사도세자께서) 온천에 가실 때 어가를 모시고 가는 승지가 되어 남다른 은총을 받았으니 이에 대해서는 신이 (그 공로를) 이루 다 아뢸 수 없습니다. (중략) 천 년 뒤에도 뜻있는 선비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니 융숭하게 보답하는 도리에 따라 증직하는 은전을 베풀어야 합니다.”
정조가 시도하고 실행한 ’정치 쇼’의 압권은 실질적으로 자기가 쓴 상소를 심환지에게 올리도록 하고 자기가 재가한 일이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심환지는 1798년 7월14일에 예조판서에 임명되고 두 달 남짓 지난 뒤인 8월28일에는 우의정에 승진 발령된다. 이 과정에서 심환지는 여러 번 사직 상소를 올린다. 이런 행동을 액면 그대로 보면 심환지 개인이 정조에게 대단한 불만을 품은 ’정적’(政敵)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편지는 이런 일련의 사태가 모두 정조가 연출한 ’자작극’임을 보여준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사직상소를 낼 날짜를 일일이 지정해준 것은 물론, 아예 사직상소를 미리 받아보고는 그 문구까지 손질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내용은 정조실록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욱 분량이 방대하다는 승정원일기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비밀어찰들의 발굴과 분석에 깊이 관여한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실록은 물론이고 승정원일기조차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짐으로써 역사학계가 곤혹스러워졌다”고 한 말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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