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음식의 진수를 보여주마
서울 역삼동 가족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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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서울의 많은 식당들이 전라도 음식 전문점임을 내세우고 있다. 아예 상호에 광주니 전주니 하는 지명을 넣은 음식점들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동고서저 지세로 전라도에는 평야가 많아 곡창으로 발전했다. 쌀·보리 등의 곡식이 풍성한데다 바다로 둘러싸여 해산물도 넉넉하고, 날씨가 따뜻하며 염전이 많아 소금이 흔하니 젓갈 같은 밑반찬도 발달하였다. 이런 여건 덕분에 전라도 음식은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전라도식을 표방하는 식당엘 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 아쉬움을 느낀다. 현지의 맛깔스러운 음식에 비하면 많은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정식은 쓸데없이 반찬 가짓수만 많았지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있는 집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전라도 음식이 간만 세고 맛은 없는 음식으로 일반에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이 다 될 정도다.
역삼동의 가족회관은 그런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켜 줄 정도로 제대로 된 남도음식을 하는 집이다. 전라도 음식답게 적잖은 가짓수의 반찬이 나오지만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맛이 자별하다. 회는 전복·개불·멍게 등 먹을 만한 것만 줘서 입맛을 돋우고, 무를 듬뿍 넣고 끓인 세뱅이 찌개는 간간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속을 확 풀어준다. 삼합은 서울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조금 덜 삭힌 홍어와, 비계가 적당한 부위를 골라 잘 삶아 낸 제육이 푹 삭은 젓갈김치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훈감한 맛을 낸다. 이 집의 독특한 양파김치도 특별한 맛이고 뚝배기에 직화로 투박하게 끓인 달걀찜은 일본식 부드러운 달걀찜과는 다른 시골 맛을 느끼게 한다. 굴 무침이나 산 낙지, 낙지무침, 우족수육, 게장, 갈비찜 등도 여느 전문점을 능가하는 솜씨이고 어린아이 팔뚝만한 길이로 잘라서 구워주는 제주 은갈치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동국여지승람에 진상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장흥산 매생이로 끓인 국은 세월이 흘렀어도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서술한 것처럼 여전히 달고 향기롭다. 매생이는 환경오염에 민감한 대표적인 무공해 식품으로 숙취 해소에도 그저 그만이다. 이집 음식 행렬의 대미는 법성포산 보리굴비와 누룽지가 장식한다. 손 큰 이집 임경택 사장(62)이 매년 거액을 선금으로 주고 1년 쓸 것을 사온다는 보리굴비는 잘 건조시킨 참조기를 통보리 속에 묻어서 숙성시켜 육질이 단단하고, 싫지 않게 짭짤한 것이 끝없이 누룽지를 떠먹게 한다. 임 사장은 광주에서 같은 옥호를 가진 식당을 10여년 경영하다 서울로 올라온 지도 10여년이 넘었다. 미식가였던 남편 때문에 젊어서부터 모든 음식을 집에서 직접 다 만들어 먹었고, 그것이 식당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점심은 3만5000원이며 저녁에는 6만원, 7만원 코스가 있다. 테헤란로 선릉역 사거리 골목 안에 있으며 전화번호는 567-212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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