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법구 행렬 (순천=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무소유'의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된 13일 오전 전남 순천시 송광사에서 법정 스님의 영정을 앞세운 법구가 다비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0.3.13 |
추모객 2만5천여명..안전사고 1건 없어
송광사에서 봉행된 법정스님의 다비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 2만5천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했지만 단 1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순천경찰서는 지원 인원 등을 포함해 모두 200여명의 경찰력을 송광사 주변 도로와 진입로 입구 다비장 등에 집중 배치해 교통통제와 안내, 안전사고를 포함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크게 긴장했으나 모든 행사가 무사히 종료되자 안도했다.
= "마지막 가시는 길 보자" 절벽 비탈도 '감수'
0...법정스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는 추모객들은 경사가 70도에 가까운 산비탈을 오르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송광사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마지막 3배를 한 스님의 법구를 따라 산속 깊은 다비장까지 함께 올라온 추모객만 수천명.
30분간 산길을 걸었던 대규모 추모 행렬은 준비된 원형의 다비장이 협소해 보이자 다비장을 둘러싸고 있는 급경사의 산비탈을 올라타기 시작했다.
비탈 경사가 70도에 가까웠지만 젊은이는 물론 노인들까지도 "스님의 마지막길을 보고 싶다"며 나무와 풀에 의지해 위험천만한 비탈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비장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게 된 추모객들은 서 있기조차 불편한 상황에서도 거화(炬火) 의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참나무와 함께 법구가 활활 타오르자 추모객은 "아!"하며 탄성을 내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큰 스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 화창한 봄날씨..스님 가시는 길 큰 부조
0...다비식이 봉행되는 13일 기상이 전형적인 화창한 봄날씨를 보이자 추모객들은 날씨가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큰 부조를 했다고 반겼다.
이는 최근 지역의 날씨가 비나 눈이 오고 강풍이 부는 등 악천후가 수일째 계속되다 지난 10일부터 개기 시작, 큰스님 입적일과 다비식이 봉행되는 이틀 동안은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추모객들은 "사찰과 다비장이 산 속에 있어 길도 먼 데다 날씨까지 궂었다면 추모객들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문 정치인 갈수록 늘어나
0...다비식에는 많은 정치인이 참가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송광사 문수전에서 스님 법구가 출발할 때만 해도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한나라당 이계진, 민주당 주승용.서갑원.이용섭.김재균 의원 등과 노관규 순천시장 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비식장에는 민노당 강기갑 의원과 박준영 전남지사 모습도 보였다.
이들 정치인은 다비식을 간소하게 치르라는 법정 스님 유지에 따라 조사 등을 하지 않고 국화로 헌화하는 것으로 스님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 스님과 문도들 24시간 불지킴이
0...13일 낮 12시 거화한 스님의 다비장 불은 14일 오후까지 탈 예정인데, 이동안 송광사 스님들과 문도들이 밤낮으로 불지킴이를 하게 된다.
이는 거화후 24시간 정도 불이 타아만 유골 수습이 가능하고 특히 주변이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산이어서 자칫 산불이 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다란 대나무로 만든 거화(炬火)봉을 든 스님 9명이 인화대 주변에 둘러섰다.
굵직한 참나무 장작 위로 스님들이 일제히 거화봉을 대는 순간, 조계산 언덕에 모여든 1만5천여 추모객 사이에서는 "스님 나오세요, 불 들어갑니다", "스님 뜨겁습니다, 빨리 나오세요" 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점화되는 순간, 장작 위에서는 시뻘건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고 거화봉은 불길에 '탁, 탁'하는 큰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불자들은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경 등을 염송하며 눈물을 흘렸다.
인화대 주변에서 무념무상의 표정을 유지하던 스님들도 그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스님이 13일 오전 11시41분, 순천 송광사 전통다비장에서 거센 불길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송광사 문수전을 출발한 법정스님의 법구는 1시간여에 걸쳐 송광사 입구 가파른 조계산 산비탈에 자리잡은 전통다비장에 도착했다.
만장도, 꽃상여도 없는 행렬이었다. '비구 법정'이라고만 쓴 위패와 영정에 이어 학인 스님들이 법정스님의 법구를 한 발씩 다비장을 향해 옮겨갔다.
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행렬이었다. 법정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추모객들은 험한 비탈길에서 연방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긁히면서도 염불과 독경을 하면서 법구를 따랐다. 노스님들도 젊은 스님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험한 산길을 올랐다.
법구가 참나무와 장작더미로 이뤄진 인화대에 오르고, 그 위로 참나무 장작이 계속 더해지자 지켜보던 추모객들은 오열하며 눈을 감았다.
이날 거화봉은 조계종의 어른스님들과 상주격인 법정스님의 상좌들, 송광사 관계자 등이 잡았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법정스님과 동문수학한 송광사 법흥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법정스님의 맞상좌 덕조스님, 역시 법정스님의 상좌인 길상사 주지 덕현스님,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 회주 현호 스님, 송광사 전 주지 현고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보선스님등 9명이다.
한나라당 이계진, 김학송 의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서갑원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의 정치인도 다비식을 지켜봤다.
11시41분 마침내 거화가 이뤄진 이후 곧바로 세찬 불길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고, 추모객의 염불소리는 더욱 커졌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연기는 소나무 숲 사이로 하늘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치솟았다.
거화 의식을 마친 후 길상사 주지 덕현스님은 대중을 향해 "스님을 잘못 모시고 이렇게 보내드려서 죄송하다. 스님은 지금 불길 속에 계시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연꽃처럼 불길 속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며, 추모객들에게 '화중생연(火中生蓮)'을 같이 외치자고 말했다.
'화중생연'을 외친 후에도 추모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스님의 법구는 14일 오전 10시까지 약 24시간 동안 불길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다비준비위원회는 불길이 꺼진 후에는 곧바로 습골해 법정스님의 상좌들에게 넘긴다. 법정스님의 유지에 따라 사리도 수습하지 않고 타다 남은 뼈만 수습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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