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5.29 03:19
- ▲ 뉴질랜드 데이브 버제스 기자의 구걸 모습. / 도미니언 포스트
뉴질랜드·한국 '4시간 거지체험'… 情의 차이는
서울 신촌 지하철역 15명 2만5천원
뉴질랜드 웰링턴 길거리 32명 10만원
뉴질랜드 도미니언 포스트의 데이브 버제스 기자는 거지의 참담한 생활을 체험해보기 위해 거지 차림을 하고 웰링턴 길거리에 4시간 동안 앉아 있었더니 빵 등 먹을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앞에 던져진 동전도 126달러20센트(약 10만원)나 됐다고 16일 밝혔다. 연합뉴스 5월 16일
버제스는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채 'No Money, No Hope(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라고 쓴 피켓을 목에 걸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나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많은 이가 따뜻한 동정과 인심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 기자는 "특히 여성이 나이와 인종을 불문하고 남성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했다"고 했다. 데이브 버제스가 구걸하는 동안에 총 32명이 돈을 던져주었는데 이 중 남자가 5명이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24일 오후 서울역·신촌역에서 4시간 동안 거지 체험에 나섰다. 검은 고무줄 바지에, 기획취재부 옷걸이에 걸려 있던 20년 된 녹색 점퍼, 세탁 안 한 운동화를 신고 뉴질랜드 기자처럼 '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팻말을 만들었다.
4시간 동안 한 구걸의 결과는? 여자 6명과 남자 9명이 총 2만5000원을 '거지 기자'에게 줬다. 자장면을 사준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역 보안요원에게 쫓겨나고 몇몇 사람들은 비웃고 지나갔다.
오후 1시 서울역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거지를 본 사람들이 물결이 갈라지는 것처럼 피해갔다. 겨우 구걸장소를 찾아 앉으니 금세 보안요원이 다가와 반말을 해댔다.
"지금 누구 기다리려고 거기 앉아 있는 거야? 왜 차가운 데에 앉아 있고 그려?" 보안요원 입에서 '사무적인 존댓말'이 아니라 '친근하면서도 무시하는 듯한 반말'이 나오자 변화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팻말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더니 이 요원은 "여기서 이런 거 하면 안 돼. 빨리 일어나"라고 단호하게 타일렀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럼 어디서 구걸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합실에 가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 ▲ 신촌역 7번출구 계단에서 본지 한경진 기자가 구걸하고 있다. 4시간 동안 행인 15명이 총 2만5000원을 쥐여줬다.
오후 2시 28분 신촌역 7번 출구 계단 앞에 쭈그려 앉았다. 엉덩이에 냉기와 빗물이 스며들어 얼얼했다. 서울역에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신촌 젊은이들은 기자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고개를 묻고 팻말로 얼굴을 가렸다.
30분간 스쳐 지나가는 구두·운동화만 쳐다봐야 했다. 하이힐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따금 할머니·할아버지 구두가 멈칫하고 팻말 앞에 서서 관심을 보이다가 멀어졌다. 이 환경이 익숙해지면서 기자는 점점 고개를 들었다.
오후 3시쯤 양복을 입은 진창근(62)씨가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 몸을 숙였다. "학생, 점심은 먹었어? 젊은 사람이 왜 그러고 있어. 내가 점심 한 끼 사줄 테니까 여기서 이렇게 있지 말고 일어나자."
두 시간 만에 다가온 첫 손길이었다. "추어탕 한 그릇 사줄까? 젊은 사람이 가진 말 못할 사연이 뭔지 얘기를 들어주고 싶어 그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다 큰 처자가 이게 뭐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런 거 같은데…."
그는 '젊은 거지'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아가씨, 힘내야지." 오후 3시20분쯤 이임숙(여·58·목사)씨가 1000원을 쥐여주고 돌아가다 다시 왔다. 이씨는 계속 주변을 맴돌다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또 다른 행인 최은숙(여·50·영양사)씨가 다가와 앉았다. 이씨와 최씨가 기자의 손과 볼을 만지며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들었다.
"딸아. 여기 왜 이러고 있니. 널 이렇게 힘들게 한 게 뭐니. 네가 이렇게 나온 용기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해결방법을 찾자." 최씨가 기자의 운동화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씨는 기자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넌 보석 같은 존재야. 우리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얘기하자. 우리는 너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갈 수 없어"라고 했다. 최씨가 목에 걸린 팻말을 벗겨 구겼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이러고 있냐"고 야단쳤다. 이씨와 최씨가 할아버지를 말리더니 기자를 부축해 근처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이씨는 "지난 2일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별의 슬픔을 벗어나지 못해 며칠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아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래선지 당신을 두고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기자와 자장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오후 3시 50분 구걸 장소로 돌아왔다. 노트북 가방을 들고 목에 휴대전화를 매고 있던 40대 남성은 지갑에서 1만원을 턱 꺼내더니 한손으로 기자의 어깨를 꽉 잡으며 "힘내!"라고 했다.
20대 여성 두명은 조심스레 다가와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우리는 대학생 선교 단체회원인데 예배 드리러 꼭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근처 교회 위치 두 곳을 알려주는 아저씨, 돈을 주며 "정신 차려! 식당에 가서 일해!"라고 조언해 준 할아버지, "젊은 사람이 왜 이래?"라며 돈을 꺼내는 할머니, 5000원을 주며 "희망 가지고!"라고 말한 50대 신사, 손을 꼭 잡으며 "교회 다녀요? 교회 나가봐요"라던 20대 남성 모두 부유한 옷차림이 아니었다.
반면 40대 남성 둘은 "여기 젊은 아줌마가 돈도 없고 희망도 없댄다~"하며 놀렸다. 뉴질랜드 기자처럼 10여만원을 벌진 못했지만 기자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돈만 주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기자가 구걸해 얻은 2만5000원에 이씨와 최씨가 애초에 사려고 했던 중국집 밥값 1만1000원을 더해 총 3만6000원은 다음 날 노숙인 다시서기지원센터에 송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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