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이들] [上] 전학 온 학생이 20%
1학년 4학급, 6학년 13학급… "기형 초등학교"
高학년생 전학 많기 때문, 지방서도 전학와 두집 살림
"좋다는 중학교 배정 쉽고 다양한 학원 시스템 장점" 강북은 전학가는 학생 많아
좋은 학군(學群)과 대한민국 최고의 '사교육 인프라'를 찾아 몰려드는 초등학생들의 '대치동 러시(rush)'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곡·대치·대현·도곡 등 대치동 내 4개 초등학교의 전입학생 수는 전교생의 20%에 달한다. 5명에 1명은 전학 왔다는 얘기다. 서울 평균(7.4%)의 세 배에 가깝다.
그 결과 대치동의 초등학교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역(逆)피라미드' 분포를 갖게 됐다. 올해 교육정보 공시에 따르면, 대치초교는 1학년이 4학급(126명)이지만 6학년은 13학급(413명)이나 된다. 1학년이 5학급(138명)인 대곡초교도 6학년은 11학급(362명)이고, 1학년이 7학급(243명)인 대도초교도 6학년은 11학급(435명)으로 부풀었다. '대치동 러시'가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낳은 것이다.
◆대치동 기러기
강원도 태백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박진희(가명·40)씨는 한 주는 서울 대치동의 집, 그다음 한 주는 태백의 약국, 이렇게 양쪽을 오가며 보낸다. 대치동엔 중학생 아들(15)과 초등학생 딸(10), 유치원에 다니는 딸(6)이 산다. 약국 일을 함께 하던 남편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박씨네가 '반(半)기러기 가족'이 된 것은 2년 전, 당시 초등 6학년이던 아들의 전학을 위해서였다. 태백의 초교에서 4학년을 마친 아들은 캐나다에서 1년 연수한 뒤 대치동의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박씨는 "한 주 걸러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초등학교에서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작년 대현초교의 전입학생 비율은 28.4%이다. 강남구 평균 전입학생 비율(12.7%)의 2배가 넘는다. 대치(19.6%)·대곡(16.9%)·도곡(16.1%) 등 대치동의 다른 초등학교들도 전입학생 비율이 높다. 대치동과 맞닿은 도곡동에 자리 잡은 대도초교 전입학생 비율도 15.9%로 서울 평균(7.4%)의 2배 이상이다.
반면 강북의 일부 학교들은 전학 가는 학생들이 많아 대비된다. 동대문구 전농초교 전출 학생 비율은 18.9%로, 서울 평균(7.6%)의 2배 이상이다. 이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긴 학생은 작년 163명이었다. 전입학생(39명)의 4배가 넘는 학생들이 전학 간 것이다. 같은 구에 있는 답십리초교도 작년 전출학생(180명)이 전입학생(50명)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생활여건은 힘들지만…
대치동으로 전학 오는 학생 중 대다수는 5~6학년 고학년생이다. 단대부중·대청중·대명중·역삼중·휘문중 등 대치동에서 배정 가능한 중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 학교 졸업생의 특목고 진학률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치동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됐다.
자녀들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를 얻은 부모들은 스스로 '대전(大傳·대치동 전세)살이'를 한다고 말한다. 대치동으로 이사 오는 순간 '시집살이' 못지않은 고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에서다. 대치동의 아파트 전세값은 30평대가 4억원에 달하고, 40평대는 8억원까지 되는 곳도 있다. 그만큼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생활물가도 비싸다. 큰딸이 초교 4학년, 아들이 1학년 때 서울 광장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온 이혜선(43)씨는 "과일도 채소도 비싸고, 예전에 살던 곳보다 생활비가 1.5배 이상 더 든다"고 말했다.
대치동 주민 김모(37)씨는 "눈에 보이는 건 온통 학원과 카페뿐이고 생활편의시설은 드물어 살기 편한 동네는 아니라는 느낌"이라며 "고시공부하는 셈 치고 애들 대학 갈 때까지만 버틴 뒤엔 바로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으로 전학 온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방에서 전학 온 아이들 중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고학년 때 전학 오면 또래 집단과 어울리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3~4학년 전학 사례도 느는 추세다.
반면 경기도 평택에 살다가 5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대치동으로 이사왔다는 장진희(47)씨는 "처음엔 애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망설였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대치동 커뮤니티(공동체)에 뿌리내리는 걸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이들] [下] 학원 뺑뺑이… "문제풀이 스킬(기술)만 배워" 지적도
2010.09.18 03:01
'대치동 불패 신화' 빛과 그림자
우수학생들 모여 선의 경쟁, 교사들도 자극받아 더 노력
명문대 합격 '서울지역 최강'…
"선행 학습 위해 학원 순회… 교과 소화하지 못하기도"
서울 강남 대치동과 인근 강남 지역에 입성하기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되는 길을 선택하거나 위장 전입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치동 학교들의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목고 입시기관 ㈜하늘교육에 따르면 대치동 소재 휘문고는 2010학년도 대입에서 졸업생의 3.2%(20명)가 서울대에 합격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서강대 등 5개 대학에 합격한 학생 수는 졸업생의 22.6%에 달했다.
대치동 단대부고도 서울대·연대·고대에 각각 합격자를 10명, 34명, 27명씩 배출했으며 주요 5개 대학에 입학한 학생 비율은 졸업생의 19.4%였다. 인근의 중산고·중동고·중대부고도 명문대 합격률에서 서울 시내 236개 일반계 고교 중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치동에 몰리게 만들고 그 결과 대학 진학 실적은 더 좋아지는 '대치동 신화의 확대재생산'을 낳고 있는 것이다.
◆'대치동 모델'의 성과
취재 중 만난 대치동의 대부분 학부모들은 '대치동 불패(不敗) 신화'를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6년 전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는 고2 학부모 김모(43)씨는 "대치동 교육이 좋은 것은 진학률이 증명해 주는데 부모 된 입장에서 어떻게 혹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생 학부모 이모(42)씨는 "친구들 모임에서 '아이가 대치동서 학교 다녀'라고 하면 다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이 같은 이미지를 만든 데는 '대한민국 최강'인 대치동의 사교육 환경이 한몫했다. 그러나 대치동 엄마들은 또 다른 요소를 강조한다. 주변에 술집·유흥가 등 유해 시설이 적고 학부모 교육열이 강해 자연스럽게 학구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생 딸을 둔 학부모 김모(39)씨는 대치동 교육의 강점은 학생들 학력수준이 고르게 우수한 점이라고 했다.
"다른 곳은 아이들 수준 차가 들쑥날쑥이잖아요. 구구단도 못 외는 아이와 토익 점수가 800이 넘는 아이가 뒤섞여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대치동은 기본적으로 아이들 실력이 다들 일정 수준 이상은 되니까, 학교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 ▲ 풍성한 사교육 혜택으로 대치동은 전국 최고의 명문대 합격률을 자랑하지만,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문제풀이 스킬(기술)’일 뿐, 진짜 학습능력을 습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14일 밤 10시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중·고교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교육이 강한 지역이라 학교 교사도 좀 더 분발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학부모는 "선행학습을 받은 아이들이라 실력 없는 교사는 무시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더 노력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짜 평준화 정책(실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현상)'으로 학생들이 학교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대치동은 비교적 우수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여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키는 '대치동 모델'을 만들어낸 셈이다.
◆대치동의 그늘
그러나 대치동 교육에도 '그림자'는 분명 있었다. 대치동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A군(15·중3)은 요즘 비(非)강남권 학교로 전학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서 살던 A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와 함께 캐나다에 조기 유학을 갔다가 지난해 귀국하면서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찼지만 '사교육 필수'라는 대치동의 불문율에 따라 프랜차이즈 학원에서 수학 선행 학습을 했고 "공인 외국어 점수를 미리 받아둬야 한다"는 주변 조언에 휩쓸려 토플 학원도 다녔다. 그럼에도 성적은 중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누구는 학원을 몇 개씩 더 다니고 있고 누구는 벌써 고교 수학 과정까지 다 끝냈다더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비교되는 분위기에 눌려 성격마저 위축됐다. 마침내 A군 부모는 이사를 결정했다.
대치동 한 고교의 자연계 2학년인 B군(17)은 주말 내내 학원에서 언어 영역 수업을 듣느라 보낸다. 그 생활이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내신 성적은 3~4등급이다. 그 이유는 B군이 학원 강사에게 상담을 할 때 바로 드러났다. B군은 "학원을 여러 개 돌아다니느라 배운 걸 복습하거나 학교 숙제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현인철 수도여고 윤리교사는 "대치동 학생들 상당수가 학원을 순회하느라 정작 스스로 교과 내용을 소화하지 못한다"며 "대치동 사교육은 문제 잘 푸는 '스킬(skill·기술)'을 알려주는 곳인데 기본 바탕이 없는 학생들이 스킬만 배운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사교육 전문가로 출제 문제를 잘 짚어내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서 '박 보살'이라고 불렸던 박재원 비상교육공부연구소장은 "대치동에 와서 성공한 아이들은 내 경험상 10%밖에 안 된다"며 "사실 그 학생들은 대치동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같은 결과를 냈을 학생들이다. 부풀려진 대치동 신화가 수많은 '들러리 학생'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가 때로는 '마음의 병'을 만들기도 한다. 강남 일대에는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신경 정신과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혹은 심리적 불안이 발병 요인이라 여겨지는 '틱 장애'(이유 없이 어깨나 목 등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른 속도로 반복해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는 어린 환자들이 많다.
경기도 고양 상탄초등학교 홍인기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와 자신감"이라며 "대치동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간 학생들 가운데 열등감에 빠져 공부도 성공하지 못하고 행복마저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이들] 학원앞 카페서 자녀 기다리는 '카페 맘'… 학원정보 인터넷에 올리는 '학부모 기자'
입력 : 2010.09.17 03:03
교육에 올인하는 대치동 엄마들은…
14일 밤 10시 무렵. 학원들이 밀집한 대치동 E아파트단지 사거리의 커피 전문점 안에는 30대 중·후반 나이의 여성 10여명이 각자 찻잔을 앞에 둔 채 앉아 있었다. 이따금 시계를 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핸드백 옆에 중학생용 영어·수학 참고서를 펼쳐둔 이도 있었다.
20여분 후, 근처 학원에서 수업을 끝낸 아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며 도로가 소란스러워지자, 그들도 하나둘씩 일어나 학원 쪽으로 향했다. 아이를 데려가려 나온 이들 '카페 맘'들로 대치동 학원가의 커피숍들은 밤늦게까지 성황을 이룬다. 사거리 앞 도로는 학부모들이 몰고 나온 차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고 학원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학부모도 보였다.
- ▲ 대치동 학원가 인근카페에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풍경이 일상화된 대치동에선‘카페맘’(학원간 자녀를 카페에서 기다리는 엄마)이란 말이 생겼다.
역시 지난해 5학년 딸을 데리고 대치동으로 왔다는 B씨는 "대치동의 치열한 분위기 덕택에 아이도 정신을 바짝 차린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전남 목포에서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떨어져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학원 관계자들은 대치동의 사교육이 강한 것은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치동엔 학원 수 자체가 많고, 대치동 학부모들은 학원정보 제공 홈페이지까지 직접 만들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들이 만든 온라인 D커뮤니티에서는 '학부모 기자'를 자처하는 엄마들이 "○○학원은 영역별로 치우치지 않게 고루 숙제를 내주고, ××학원은 강사들의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식으로 개별 학원 평가까지 올리고 있다.
한 사교육 업체 대표는 "대치동은 하룻밤 사이에도 문 닫는 학원이 나오는 전쟁터"라고 말했다. '대치동 러시'의 배경엔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사교육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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