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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천수만으로 떠나는 맛있는 겨울 별미기행 (조선일보 2011.01.14 12:35)

천수만으로 떠나는 맛있는 겨울 별미기행

동장군의 위세가 겨우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땐 산도 좋지만 겨울바다의 낭만 속에 젖어드는 것도 운치 있다. 호젓한 백사장을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조롱박만한 포구에 깃들어 황혼의 노을과도 마주할 수 있다. 겨울바다는 을씨년스러운 대지와는 달리 의외로 별미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안면도와 마주하며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고 있는 충남 홍성, 보령 등 천수만 일원은 이즈음 새조개, 뻘굴, 간재미 등 겨울 별미가 즐비하다. 특히 내륙으로 살짝 파고들면 흔히 맛볼 수 없는 건복국 등 토속 미각도 찾을 수 있어 발품이 아깝지 않을 '식도락(食道樂)' 기행을 즐길 수 있다.

◇서해안 겨울바다의 묘미는 해넘이 감상이다. 사진은 천수만 궁리포구의 낙조.

◆운치 있는 천수만의 해넘이 '궁리 포구'

국내 대표적 리아스식 해안을 꼽자면 단연 태안반도가 으뜸이다. 이곳은 풍광도 아름답지만 서해안 최고의 어장을 이룬다, 특히 태안반도의 아랫녘인 안면도와 충남 서해안이 만나 이루는 천수만은 생명의 원천인 기름진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맛난 어패류가 가득한 천혜의 어장으로 꼽힌다. 이맘때 천수만을 찾으면 다양한 겨울 별미를 만날 수 있다. 우선 가을철 대하로 유명한 남당항에서는 겨울별미 새조개가 제철이고, 살짝 내륙으로 파고들어 홍성 갈산면을 찾으면 시원한 건복국도 맛볼 수 있다. 또 남당항 아래 장은포구에서는 싱싱한 뻘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아랫녘 오천항은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간재미 찜을 맛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젓갈로 유명한 광천에서는 밥상 위의 감초격인 '광천 돌김'도 구할 수 있어 포만감 넘치는 겨울별미 기행을 즐길 수 있다.

별미기행을 후 서해 겨울바다 기행의 진수격인 해넘이 감상은 남당항 위쪽에 자리한 궁리포구가 분위기 있다. 장은포구, 남당리, 간월암 모두 일몰이 아름답지만 한적한 궁리 포구 또한 서해 일몰의 장관을 감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포구 아랫녘에 돌출한 작은 언덕과 소나무를 걸쳐 화각을 잡으면 멋진 낙조 사진도 한 컷 건질 수 있다.


◆천수만의 웅숭깊은 겨울 별미

▶건복어탕(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천수만 기행의 중심 충남 홍성에서 모처럼 깊은 손맛을 맛봤다. 어디에서나 쉽게 맛 볼 수 없는 '건복어탕'은 시원 구수한 국물과 쫄깃한 듯 부드러운 졸복맛이 일품이다.

흔히들 복국하면 생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천수만 기행에서는 마른 졸복으로 시원한 복국을 끓인 '건복어탕'을 맛볼 수 있었다.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시장 인근에 자리한 43년 전통의 삼삼복집이 그곳이다. 1968년 문을 연 이래 주인 이정옥 할머니(74)와 막내딸 김용주씨(38)가 수 십 년 동안 시원한 건복어국을 끓여내고 있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건복어국은 예전 이정옥 할머니의 시아버지가 집안 식솔들에게 보양식으로 끓여준 것이 유래로, 일종의 가양식인 셈이다.

생복의 육질은 부드럽지만 이 집의 건복은 쫄깃한 듯 부드럽다. 우럭젓국의 속살보다 더 보들보들하다. 특히 마른 생선 특유의 큼큼한 향이 살짝 배어 있어 미각을 더한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말리는 과정에서 발효의 효과가 더해져 음식에 깊은 풍미와 중독성을 지니게 된다. 건복어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식재료를 살펴보면 우선 건복어는 조막만한 졸복을 해풍에 시나브로 1달 이상 말려 사용한다. 마치 황태를 말리듯 눈과 찬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게 한다. 이를 다시 건조창고에서 1년에서 길게는 3~4년씩 숙성시켜 탕거리로 사용한다. 오래 숙성된 것일수록 깊은 국물맛을 낸다.

끓이는 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선 된장에 갖은 양념을 가미한 소스를 풀어 육수를 만든다. 이후 콩나물과 아욱, 마른 복을 넣은 후 고추 가루를 섞어 센 불에 한소끔(5분 가량)을 끓인다. 이후 불을 줄여 은근히 끓인다. 불을 줄인 후 야채를 먼저 건져 먹고, 촉촉해진 마른 졸복도 함께 맛본다. 밥은 남은 국물에 볶아 먹는다.

고기 맛은 어떨까? 생복은 부드럽지만 이 집의 건복은 쫄깃한 듯 부드럽다. 특히 마른 생선 특유의 미각이 배어 있어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맛이다.

국물 맛도 여느 복국과는 다르다. 된장과 고추 가루가 어우러져 일단 구수한 맛과 함께 복국 특유의 시원한 맛이 배어 있다. 특히 본래 시원한 졸복이 마른 생선 특유의 시원함까지 더해졌으니, 그 맛은 기대 이상이다. 이를테면 훈제 가스오브시 국물로 육수를 낸 복국과는 또다른 맛이다.

미나리 대신 아욱이 들어가는 것도 여느 복국과 다른 점이다. 아욱은 푹 삶지 않는다. 살짝 데쳐 먹다 보니 미끌 거리는 질감 대신 아삭해 또 다른 맛을 낸다. 특히 초록의 색깔이 선명해 싱싱한 야채를 곁들이는 느낌이 강하다. 굳이 아욱을 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복어 특유의 미각을 지키기 위함이다. 미나리는 특유의 향이 강하다. 따라서 복어 특유의 은은한 맛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아욱은 복어 고유의 맛과 향을 살려 국물이 더 시원구수하다.


졸복을 말린 건복어.

딸 김용주 씨는 "건복어국을 끓이는데 특별할 건 없다"고 말한다. 다만 "딸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어머니의 된장양념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귀띔한다.

밑반찬은 3가지로 단출하다. 이즈음엔 배추김치, 깍두기, 동치미, 봄이면 열무김치가 상에 오른다. 이 집은 복어를 뺀 배추, 무, 아욱 등 식재료는 직접 재배를 한다. 복어도 생졸복을 구입해 직접 건조해서 사용하니 절반은 만들어 쓰는 셈이다. 된장은 집 된장과 구입한 것을 반씩 섞어서 쓴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함이란다.

오랜 세월 복국을 끓여 오다보니 온 가족이 복요리 자격증을 지닌 복요리 전문가들이 다 됐다.

이 집의 단골들은 홍성 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도 상당수다. 건복어탕 1만5000원. 생복어탕 1만5000원. (041)633-2145